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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덕중 Dec 26. 2023

마음 속의 강

2023

오렌지 사이를 걸어다녔지, 껍질을 벗기다 노랗게 물든 손톱, 석양아래 뛰어오르는 공들, 심장에서 흘러나온 빨강, 돌 사이를 굽이쳐 흘러 이제 아무 색도 남지 않을 때가 온다, 모든 색이 옅어져서는, 식초 냄새 나는 강물, 거기서 가볍게 물살을 헤집는 숨결과 새들, 바람을 경계하며 자기 그림자를 따라 검은 곡선을 그리다 닿을 수 없이, 멀어지면, 세월이 만든 검은 강, 귀 기울이면 들리는 강 섬진강


강변 매운탕집에서 일생을 산 여인에게 소주를 따른 적이 있지, 말했지 어떤 사람들은 평생 골목의 모퉁이 하나를 떠나지 않는다고, 겨울날 하얼빈의 허름한 골목집, 부산으로 들어서는 기차에서 내려보았던 파란 지붕, 그리고 어떤 사람은 너무 많이 떠났다고, 강으로 부터 멀어지기 위해 강변을 따라 떠나고 또 떠나던 밤, 매운탕 고추 냄새에 눈을 질끈 감고 잔을 털어 놓았다, 그녀는 강물 같은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민물고기 목을 딴다, 입술은 시원한 담뱃잎 같아, 피 묻은 칼을 닦지도 않고 그 빨강은 흘러흘러 굽이쳐 강이 되곤 했다


나무 위에서 죽는 새들, 고속도로 위에 뿌려지는 이름들과 헤드라이트, 그 곁에 누워 강물 소리를 듣고 싶었다 떨고 있는 그녀의 등에 가슴을 붙인다, 여생동안 그녀의 숨을 따라 쉬겠지, 하고 생각했다, 떠나지 않겠냐고 속삭이면 어디를 가겠냐고 되물을까, 그래 여수에서 배를 타고 굽이치는 바다를 돌아 러시아로 가자, 강물 위로 스케이트를 타면, 90년초 어느 겨울에 버려진, 거의 사람 같은 동상들, 살아있는 듯한 눈동자들,이제는 인간이 되어버린 신들, 나는 눈을 감고 비행기가 땅에 떨어지길 기다리고 기다렸다, 노래방에서 올라오는 뚱뚱한 취객, 포주의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 그게 하고 싶으면 여길 찾아가라고 나는 너의 신도 구원도 아니다


강의 곁에 누웠지 자갈 위에 귀를 붙이고, 거기서 몸을 돌려 잠들었냐고 꿈꾸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소리를 들으려 했지만 강은 느린 진동 뿐이었어, 그래 언제나 이런 리듬의 진동 뿐이었다,흐르는 강물 사이에 섬이 있지 않을까 들떠있던 어린애가 있었다 거기에도 낮은 나무들이 자라지 않을까 사람이 살진 않을까 하고, 배란다에 널어 놓은 빨래들이 은빛 물고기가 되어 떠날 때, 여기에는 쉼 없는 움직임, 예고되지 않은 비, 불어나는 강물이 바지단을 적실 때, 손가락으로 가늠할 수 없는 적막, 색깔, 움켜쥐어도 잡을 수 없는 여백의 시간, 11월의 회색 아침 모텔에서 깨어나 그 강의 무릎에 누워 그 배를 만져도 그 마음에 어떤 강이 흐르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 너는 너무 많이 떠났다고, 너는 강으로 부터 멀어지기 위해 떠나고 또 떠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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