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꺼질 틈이 없는 시장 여행
밀가루 반죽 튀김. 시장표 도넛이죠. 중국에서는 요우티야오라고 하죠. 두유(또우장)랑 같이 먹죠. 동남아시아는 화교들이 많이 사니까요. 동남아식으로 변형된 요우티야오를 어디서든 만날 수 있어요. 태국에선 빠똥꼬라고 해요. 판단 커스터드 크림, 상카야에 찍어먹죠. 두유도 같이 팔고요. 상카야는 싱가포르에서는 카야잼이라고 하죠. 사무치게 부드러운 크림이죠. 쳐다도 안 봤어요. 밀가루 소화력이 급 떨어지기도 했고요. 탄수화물이 백해무익하다니까요. 흰 설탕, 흰쌀, 흰 밀가루가 독이라면서요. 저는 다 귀담아 들어요. 아침 시장 가면 빠똥꼬 가게가 제일 북적북적하더라고요. 쉴 새 없이 튀기는데 즉시즉시 사라지죠. 요즘 좀 소화력이 향상됐어요. 운동이 최고인 것 같아요. 아령을 들고, 양쪽 날갯죽지 위까지 들어 올려요. 들어 올릴 때 숨을 내쉬고요. 이걸 하루에 천 개씩 했어요. 한 번엔 당연히 못하죠. 오십 개, 백 개씩 하면서 천 개를 채워요. 그랬더니요. 식욕이 돌아와요. 소화가 잘 되네요. 체질인 줄 알았어요. 타고난 위가 약한 줄 알았죠. 운동으로 먹었던 만큼 칼로리를 소모하면 되는 거였어요. 소화불량인 분들은요. 유튜브에 <자바라 호흡법>을 한 번 참고해 보세요. 장길성 유투버의 이런저런 건강 정보인데요. 저는 많은 도움이 됐어요.
빠똥꼬가 개당 얼마인 줄 아시나요? 2밧입니다. 2밧. 환율 계산기로 쳐보니까요. 77원이네요. 요즘 태국 돈 밧 엄청 올랐죠. 태국 물가도 많이 올랐어요. 여행자에게도 비싼 물가지만, 현지인들에게도 팍팍한 현실이죠. 쌀국수 30밧짜리가 이젠 방콕에서 찾기 힘들어졌어요. 그런데 2밧이라뇨. 다섯 개에 십 밧이네요. 사백 원 정도요. 커스터드 크림도 10밧, 두유도 10밧. 총 삼십 밧. 천 이백 원 조금 안 되는 돈으로 아침상이 차려졌네요. 장사가 잘 되는 집이니까요. 늘 튀김이 뜨끈뜨근해요. 참깨 오돌토돌 박힌 빠똥꼬를 달콤한 커스터드 크림에 찍어 먹어요. 그리고 담백한 두유까지 곁들이죠. 소화력만 받쳐준다면요 매일 먹고 싶네요. 백해무익 밀가루, 흰 설탕 다 아는데도요, 그냥 닥치고 먹을래요. 따끈따끈 튀김 맛이 입에 싹 퍼지니까요. 운동을 미친 듯이 해야겠단 생각만 해요. 이걸 이제야 먹어보다니요.
날치알 올라간 에그롤 40밧(천 오백 원), 왼쪽의 비빔면 역시 40밧. 베트남 비빔면과 롤을 파는 가게인데요. 대중없어요. 어떤 날엔 팔고, 어떤 날엔 안 팔아요. 비빔면은 소스에 돼지고기, 달걀 고명까지 충실해요. 베트남 비빔 국숫집에서 파는 에그롤은 어느 나라 음식일까요? 베트남 음식일까요? 태국 음식일까요? 일본 음식일까요? 당당한 혼종이 태국 음식의 또 다른 특징이죠. 요즘 시장에선 파스타도 팔더군요. 태국 재래시장에서 파스타를 담아 파는 시대입니다. 그 파스타는 이탈리아 음식인가요? 태국 음식인가요? 아이고, 의미 없다아아 아
그래서 태국 시장은 지루할 틈이 없죠. 옆 동네만 가도, 못 봤던 메뉴, 아이템들이 즐비하니까요. 전통도 중요하지만,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 물렁물렁, 설렁설렁 오픈 마인드도 태국인에겐 중요해요. 성룡 영화 취권 기억하시나요? 1979년 영화로군요. 마흔 살이 넘은 영화가 됐네요. 취권은 이게 권법인가 싶죠. 허허실실 술에 취해 흐느적, 흐느적. 적을 방심하게 하고, 급소를 팍 찌르죠. 태국은 취권 같은 나라예요. 맺힌 것도 없고, 엄격함도 덜하죠. 그런 나라의 시장은, 매일 용틀임하는 생물이에요. 운동감을 느낄 수 있는 나라죠. 그게 태국의 매력이에요. 저, 에그롤이 웬만한 일식집 에그롤보다 맛나더라고요. 땡잡은 날이죠.
이건 밥인데요. 그냥 밥이 아니라 새우 페이스트로 볶은밥입니다. 태국말로는 카오크룩카피. 비릴 것 같다고요? 절대 비리지 않아요. 새우깡도 비리시다면 할 말 없습니다만, 궁극의 꼬소함이 여기에 있죠. 고명을 어찌나 푸짐하게 올려주는지 몰라요. 생망고(다디단 그 망고 아니고요. 상큼상큼 푸른 망고를 채 썬 거요), 달걀 부침, 돼지고기 조림, 쥐똥고추 등이 추가로 올라가요. 역시 40밧입니다. 언제까지 팟타이(볶음국수)만 드실 건가요? 이제 태국 국민 볶음밥도 한 번 드셔 보셔야죠. 여기서 잠깐. 미리 요리가 끝난 거라요. 뜨거운 맛으로 먹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무조건 뜨거운 밥만 먹어왔잖아요. 미지근함이 불만일 수도 있어요. 아니에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맛있어요. 한국 태국 식당에선 눈 부릅뜨고 찾아도 없는 메뉴죠. 이런 걸 여행 와서 드셔야죠.
오늘은 이렇게 녹색 가지를 구워서 파네요. 채소 가게는 일주일에 서너 번만 열더군요. 채소만 팔더니, 또 오늘은 이렇게 가지를 구워 팔아요. 녹색 가지는 우리나라에는 없죠? 이걸 구워서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요.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어요. 밥반찬으로 정말 최고죠. 채식주의자들에게도 솔깃한 메뉴 아닌가요?
이건 저는 아직 극복 못한 맛. 구운 바나나. 이거 맛있나요? 바나나를 구운 맛인데요. 저는 그냥 바나나 먹겠습니다. 구워진 혼돈의 바나나는,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맛입니다. 아니 이해하기 싫어요. 끔찍한 맛은 아니죠. 원래 바나나 맛이니까요. 구워지는 순간 절묘하게 비호감이 돼요. 물론 저한테만 그런 거겠죠. 주 무지막지한 양이 다 팔린다는 거 아닙니까. 동네 아침 시장 나들이 좀 해보세요. 방콕의 큰 재미랍니다. 시장 구경은 낮엔 하시면 아니 되고요. 땡볕 없는 아침과 저녁이 딱입니다. 그때 이것저것 집어 오세요. 배는 좀 고픈 상태로 가시고요. 시장에만 눈 떠도요. 방콕은, 아니 태국은 끝도 없이 즐거워집니다. 태국은 요물 맞다니끼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쟁이의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세상 끝까지 닿기 위해, 매일 조금씩 다가가겠습니다. 학교, 도서관에 박민우의 책을 신청해 주시면, 저의 오체투지는 훨씬 더 즐거워지겠죠? ^^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열심히 알리고 있어요. 방콕이 인생 여행지가 되려면, 이 책이 꼭 있어야 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