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는 일주동로, 일주서로가 있습니다. 일주동로로 가면 함덕, 월정, 세화, 성산 등 제주 동쪽을 빙 돌아가고 일주서로 가면 애월, 곽지, 협재 등 서쪽을 빙 돌아가죠. 제주시를 양분하는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길이지만... 빙 도는 만큼 비효율적이죠. 아니 비효율적이라고들하죠.
그래서인지 카카오맵에선 목적지까지 가는 더 빠른 버스 편이 있다면 일주동로(201번), 일주서로(202번)를 도는 버스는 안내도 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더 효율적인 동선을 따를 거라는 전략적인 판단이겠죠.
하지만, J보단 P에 치우치고 효율을 따지는 건 일할 때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저 같은 사람에겐 그런 효율적인 안내가 그다지 편하지도 와닿지도 않습니다. 누군가는 효율적인 여행 동선,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시간표로 여행지를 누빌 테지만, 저 같은 사람은 정해진 목적지로 향하다가도 얼핏 비치는 바다빛에 맘을 뺏기고 덜컥 내리기도 하거든요.
애초에 일주동로나 일주서로가 해안도로로 달리는 수준은 아니라서 바다가 잘 보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는 함덕, 월정, 세화, 협재, 금릉의 바다는 버스창으로 조금만 보여도 여기서 내릴까를 망설이게 되는 저 같은 사람. 아마 많지는 않겠죠.
빨리빨리의 민족, 효율의 민족답게 느린 대중교통으로 다니는 뚜벅이에게 더 느린 걸음을 안내했으면 좋겠다는 푸념은 묻히기 딱 좋은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가끔은 한참 돌아간 거 같아도 나중에 보면 나름의 궤적으로 그럴듯하게 살았다고 자평할 수 있는 게 우리 인생이니. 여행에서 좀 더 여유로우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