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군인에서 신입생으로
나는 강원도 태백에서 8년간 부사관으로 군 생활을 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2009년 1월 6일, 지금은 사라진 춘천 102보충대에 현역 병사로 입대해 군 생활을 하다가 2010년 5월 1일 하사로 임관.
2017년 4월 30일 중사로 전역했다.
길고 긴 군 생활을 끝내게 된 계기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모든 일을 적당히 그저 욕 안 먹을 정도만 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 더 잘할 수 있으면서도 이 정도면 됐다고 안주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 그때였던 것 같다.
20대 중반인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는 건지.
대답은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아니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게 있는지. 그 일이 뭔지에 대해 생각했지만 이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놀랍게도 나는 그때까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산 거였다.
그러다 친구에게 받은 전화 한 통.
그 친구는 중학교 때 뉴질랜드로 유학을 갔던 놈이었다. 유학 갔다가 한국에 돌아왔다는 내용, 언제 한번 보고 소주 한잔하자는 의례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서로가 하는 일까지 이어졌다.
나는 군인이라고 했고, 그놈은 그 말에 상당히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중학교 시절 책도 많이 보고, 특활도 도서부만 내리 3년이나 하고 나중엔 부장까지 하면서 나중엔 아예 도서관 키까지 받아 관리하지 않았냐는 말부터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글과 관련된 대회에서 입상한 기억까지 줄줄이 꺼내놓았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뭘 좋아하는지 깨달았다.
아, 맞아.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했지.
의외로 나를 가장 잘 모르는 것도 나고
나를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나일 것이다.
글 쓰는 걸 좋아했다는 걸 알게 된 이후 내가 한 행동은 안타깝게도 전역 지원서를 내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아니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기 위해 공부를 한 건 더더욱 아니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가 글쓰기를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찾는 거였다.
글쓰기 그거 뭐 아무나 하나, 이미 늦었지 뭐….
글 써서 어떻게 먹고 사냐, 굶어 죽기 딱 좋은 직업이지.
나는 내가 왜 글 쓰는 일을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 열정적으로 찾아냈고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주변에도 열심히 알렸다.
병사들은 물론, 부사관 선후배, 소대장님, 중대장님들. 행정보급관님과 주임원사님에 이르기까지….
감사하게도 대부분 미쳤냐고 물었고 나는 자주 아니라고 대답했다.
개중엔 간혹 정말 멋지다며 내 꿈을 응원해주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도리어 내가 물었다.
미쳤냐고.
결국, 나는 전역과 연장의 갈림길에서 연장 신청을 넣었고, 스스로 군대라는 족쇄를 채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일단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끊긴다는 건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 두렵기 짝이 없다.
거기다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으니 전역하겠다고 했을 때 예상되는 부모님의 반응.
그건 어떻게 보면 공포 영화 그 자체일지도 몰랐다.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글을 쓰지 않기 위해 주변에 알린 것처럼 부모님께도 넌지시 얘기를 꺼내봤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나 어머니는 내 머릿속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씀하셨다.
“굶어 죽기 딱 좋지, 글은 뭐 아무나 쓰는 줄 아냐?”
나는 그 말에 얼른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았는데, 45도로 기울어지는 게 느껴졌다.
‘끄덕’이 아니라 ‘갸웃’이렸다?
최 씨 고집 발동 내지는
청개구리 심보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아, 글 쓰는 일을 해야겠다. 전역해야겠다. 남몰래 결의를 다졌다.
아마 그때 아버지나 어머니 두 분 중 한 분이라도 해보라고 부추겼으면 오히려 계속 군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두 분껜 죄송한 말씀이지만, 감사하고 한편으론 고소하기 짝이 없다.
덕분에 나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