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한다’는 말은 당연히 의미가 명확하다. 뭘 한다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지 않음을 함’이라는 말을 하면 무슨 말인지 모른다. 이 말을 쓰는 나조차도 이게 말인지 뭔지 혼동된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현역 의원이 이번 총선에서 불출마하기로 했다’는 문장이다. 불출마라는 말은 출마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불출마하기로 했다고 하면 앞 문단에서 말한 ‘뭘 하지 않는다는 것을 한다’는 말이 된다. 이런 비슷한 말은 또 있다. ‘미실시 했다’는 말이다. ‘뭘 하지 않은 것을 했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하라고 한 건강검진을 했는지 안했는지 조사한다고 치자. 하지 않은 사람은 사유서를 제출하라고 했다고 치자. 사유서에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건강검진을 미실시했습니다’라고 쓸 가능성이 크다.
이런 말을 어떻게 바꿔 써야 자연스러울까? 이미 자연스러운데 나만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자연스럽게 쓰려면 ‘현역 의원이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하고, ‘건강검진을 실시하지 않았다’라고 쓰는 게 낫지 않을까?
나이가 들어가니 사소한 것에 신경이 거슬리는 꼰대가 되어 가는 것 같다. 불출마하기로 해도, 건강검진을 미실시해도 무슨 말인지는 안다. 그 동안 살아 온 세월이 얼만데 이걸 모르랴. 그냥 넘어가면 되는데 왜 이런게 눈에 들어오는지 나는 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