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주인공이다. 내 인생에서.
은퇴할 날이 가까워졌다는 것은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또 일을 많이 했다는 것이고, 경험도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험과 세월만큼 지혜도 자랐으면 좋으련만 지혜는 그리 쉽게 자라지 않는다. 오히려 나의 인간성을 이루는 여러 분야가 고착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꼰대라고 불릴 수도 있다.
젊은이들의 섣부른 행동을 보면 위험해 보인다. 물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 같다. 저렇게 하다가는 언젠가 큰 코를 다칠텐데 말이다. 술도 많이 마시고, 놀기도 많이 놀았던 것 같다. 지금은 그렇게 하라고 돈을 줘도 하지 않을텐데 그 때는 내 돈을 흥청망청 써 가며 바람직하지 않은 짓을 하곤 했다. 시간이 많고 그만큼 기회도 많다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그런 젊음 자체가 내게 안도감을 주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좀 미뤄도 되는 걸로 생각했다. 아직 20대인데, 30대인데. 효도도 미뤘고, 아빠의 역할도 미뤘고, 오롯한 나의 발전도, 취미도 미뤘다. 그러다 40대가 넘어가니 아직 몇 살인데라는 생각은 못했다. 나이가 적지 않음을 은연중에 느꼈으리라. 미뤘던 것들이 한꺼번에 닥치니 정신적 소화불량이 됐다. 사십춘기니 오춘기니 하는 웃기는 말이 그래서 나왔을 거라 생각된다. 그러고 보면 젊을 때는 너무 자신감이 넘쳤다. 세상을 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 줄 알았다. 모르는 것도 없었고 무서운 것도 없었다. 지나고 보니 그 때 내 세상은 주먹만했고, 그만한 세상에서는 모를 것도 무서울 것도 없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한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조심스러워진다. 보여도 안 본척 하고 알아도 모르는 척 한다. 잔소리라고 하면 끔찍하게 싫어할 젊은이들에게는 물론이고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에게도 말을 조심하게 된다. 말을 함부로 하는 대상은 아마도 부부가 아닐까? 아내가 내게 함부로 말하면 내가 과거에 그래서 업보를 받고 있으려니 하고, 내가 그렇게 말하면 아까 아내가 내게 그런 식으로 대했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이라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살얼음판을 걷듯이 살아야 한다는 말이 이제서야 와 닿는다. 숙제를 미루지 마라, 이부자리를 정리해라, 고운 말을 써라 등등 자주 들었던 잔소리가 왜 중요한지 이제 이해된다. 그런 태도가 삶의 질을 좌우한다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어른들은 그런 지혜를 가지고 잔소리를 했을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에게 그런 지혜를 나눠주는 일을 하고 싶다. 젊음은 특권이 아니며 나이듦은 벼슬이 아니다. 노인은 젊어 본 적 있지만 젊은이는 늙어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젊음은 특권이 아니다. 젊은이는 시간과 함께 노인이 되므로 나이듦은 벼슬이 아니다. 은퇴한 사람으로서 젊은이와 노인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른바 지혜의 전달자이다. 은퇴하면 내가 하던 일을 다른 사람이 하게 된다. 나보다 한참 어린 후배가 하든지 내 자식이 내가 있던 위치에 있을 것이다. 은퇴는 세대가 바뀌고 내가 주인공이었던 시절이 가고 후배가 주인공이 되는 시절이 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극을 전반적으로 받쳐주는 역할도 주인공일 수 있다. 내 세상에서는 내가 주인공이니 비교의 기준만 바꾸면 어디서나 주인공일 수 있다. 그러려면 책임감이나 사명감, 때로는 멍청해 보이는 고집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隨處作主면 立處皆眞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