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착한 사람이 되기를 포기했다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있을 것 같다

by 혜운


착한 사람을 나는 이렇게 정의한다. 타인으로부터 좋지 않은 말을 듣기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착한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마찰이 생기는 것을 피한다. 그래서 행동이 무척 조심스럽고, 타인의 기분을 잘 헤아린다. 그래서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때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었다. 누구한테든지 욕을 먹는 것이 그렇게 두려웠다. 그래서 행여 나에 대한 나쁜 말이 나올까 봐 매 사 행동을 조심했던 것 같다. 나는 남의 평가에 민감했다. 나의 행동과 말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까 한 번 생각해 본 다음 행동하고 말을 꺼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게 굉장히 피곤했나 보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보고 과묵하다고 했다. 지금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는 의식적으로 말을 잘하지 않았다. 내성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냥 내성적인 성격으로는 버텨 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어울려서 지내야 하는데, 그 어울림이라는 것이 일단 대화로 시작하니 어렸을 때처럼 과묵한 성격을 유지하면 안 되었다. 아쉬운 소리도 해야 하고, 의사 표현을 정확히 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남 앞에서 나서기도 싫어하고 말하기를 싫어하고 자신 없이 살았던 것 때문인지 과거에 있었던 말 더듬 증상은 언제부터인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걸 어느 날 깨닫고 어처구니가 없어했던 기억이 난다. 중고등학교 때 일어서서 책 읽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기억 때문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한참 동안은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높은 사람은 그만큼 인격이 갖춰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 어리고 직급도 낮으니 이 모양이고 저 사람은 그만큼의 품격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항상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여겼던 것이 사람 나름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 대부분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왜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대답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착한 사람 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았고, 착한 사람이라고 해야 조직에서 살아남기가 수월하겠구나라는 생각도 했었다. 모난 돌은 정을 맞는다는 말도 있고 하니. 이런 나의 생각을 바꾼 것은 외국 생활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어쩌다 외국에서 살 기회가 있었다. 6개월짜리 한 번, 1년짜리 한 번인데,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나의 가치관에 매우 큰 영향을 준 계기였다. 가장 큰 이유는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야 했다. 업무차 외국에 갔으므로 일을 해야 했던 것이다. 한국에서였다면 “굳이 왜"라고 했을 일도 열심히 했다. 이런 마인드로 산다면 한국에서는 못 할 일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한국에서 보고 듣고 배웠던 것이 적용되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왜 안될까 궁금해 보기도 하고, 나름대로 답을 내려고 노력하면서 관점이 달라졌던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그런 경험을 하고 한국에 돌아왔더니 본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드러나지 않았던 내 모습을 인식했다고 해야 하나.

이제 착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를 포기했다. 나는 원래 착하니까. 앞의 착하다와 뒤의 착하다는 좀 다른 의미일 수도 있겠다. 착한 사람이 되는 대신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착한 건 그냥 있으면 되는데 좋은 사람이 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배짱도 있어야 하고, 생각도 많이 해야 한다. 나는 착하진 않지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어느 정도는 된 것 같다. 뭐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내 생각이 바르고 공정한 한.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건방과 소신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