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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인간과 전쟁

by 혜운

전쟁이 무엇이냐라는 물음에 대한 답에 우리는 보통 클라우제비츠의 명제를 갖다 붙인다.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자 '정치의 다른 수단'이라고 말이다. 전쟁이 국가의 인명과 재산을 건 행위이고, 자칫하면 국가가 소멸될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손자의 말에 비하자면 클라우제비츠의 명제는 좀 약하다. 전쟁이 정치적 수단의 하나라고 하면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왜 굳이 사람이 죽어 나가는 잔인한 방법을 택해야 하는지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전쟁은 '정치의 실패'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인류가 생긴 이래 전쟁은 한 시도 멈추었던 적이 없다. 전쟁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내가 전쟁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지구상의 어느 한쪽에서는 내가 모르는 전쟁이 항상 있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학자는 전쟁이 일정 규모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일정 기간 이상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기준에 맞는 전쟁이 얼마나 있었을지는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전쟁의 의미에 규모와 기간을 정하는 것 자체가 전쟁을 부정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전쟁의 횟수가 줄어들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나는 인류가 생긴 이래 전쟁은 멈추었던 적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본성에 전쟁 본능이 내재되어 있다고 하는 학자가 있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와 남을 구분하는 관념은 '나'가 '우리'라는 개념으로 확대되면서 영역을 넓혀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족, 마을, 민족, 국가 등의 개념이 생겨났고, 이런 개념은 '나'와 '너'의 개념을 공고히 했다. 의식주가 풍부하지 않았을 원시시대에는 그걸로 싸웠다. 나중에는 땅을 더 많이 차지하려고 싸웠고, 자원을 차지하려고 싸웠다. 더 잘 싸우려고 좋은 무기를 만들었고, 기발한 방법으로 '너'를 속여 넘겨 이겨야 했다. 개인적 차원의 이런 노력이 집단으로 발전하면서 군대가 만들어졌고, 사회라는 조직도 만들어졌다. 가만 보면 전쟁이 사회를 만들고, 사회가 또 전쟁을 만들었던 순환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 전쟁을 안 할 수 있을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데, 사촌이 땅을 사도 아픈 배가 나와 경쟁적인 위치에 있는 사촌보다 한참 먼 민족, 혹은 국가가 좋은 일이 있다고 하면 안 아플 수 있을까? 다행히 센 놈이 큰 소리를 치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세계이다 보니, 약한 놈은 살 길을 찾아 적당히 굽혀야 하니 함부로 전쟁이 나지는 않을 것이라 기대되기는 한다.


전쟁은 불구경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말이 있다. 내가 하면 지옥이지만 남이 하는 것은 흥미롭다는 것이다. 남들이 싸울 때 구경하고 거들면서 만족감을 충족하는, 대부분의 인간은 이런 고약한 심보를 가지고 있다. 전쟁도 이런 고약한 심보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전쟁은 하면 안 된다. 인간이 합리적일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제도가 국가정책일 것이다. 개인과 지역 사회, 정부 등 모든 제도의 합리성의 총체가 곧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런 국가가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전쟁이다. 그런데 과연 합리적인가? 내가 합리적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은 그래서 아주 흥미로운 주제이다. 전쟁 자체도 흥미롭지만 전쟁에서 어떻게 해야 이길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도 흥미롭다. 오죽하면 운동 경기가 '전쟁'으로 비유될까? 올림픽이 사실 전투 기술을 겨루는 것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생각하면 국가 간의 대항전은 전쟁의 일종이라고 봐도 될 법하다.


다음 호에서는 전쟁이 무엇인가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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