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분류가 얼마나 다양한지 당신들은 모를 것이다. 대부분 의사나 간호사만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안엔 너무나 다양한 직종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과 유기적으로 관계하며 일을 협력하는 것이 간호사들의 일이기도 하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 즉, 함께 해야 하는 일이기에 더욱 힘이 들 수밖에 없다. 협력이 어려운 나에겐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래서 간호사의 일이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에 타인의 배려와 시너지가 발휘해야 하는 일이기에 그렇다.
어떤 일이든 혼자서만 잘한다고 되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유명한 가수가 콘서트를 한다고 해도 노래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기에 콘서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 의료진 역시 커다란 공연 즉, 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여려 명의 인원이 총동원된다. 큰 수술을 할 수도 있고 입원을 하거나 가벼운 외래 진료를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간호사의 일이 도대체 어떤 부분이 스트레스를 주는 것인지 내가 경험한 일들을 토대로 써 내려가려고 한다.
수술실에서 환자와의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다만 같이 일하는 동료와의 마찰 그리고 수술실에 들어오는 의사들과의 거리감 등 말로 할 수 없는 불편함들이 나를 괴롭혔다. 매일 긴장 속에서 서투른 일을 다루는 것은 외줄 타기와 같았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그 긴장 속을 나는 매일 걸어가야 했다.
특히 외과의사들의 특유문화로 꼰대보다 더 심하게 사람 취급을 안 하는 안하무인들이 많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시절 뭐를 도와주고 싶어도 몰라서 그리고 소독과 멸균을 철저히 해야 하는 수술실 특성상 무엇도 만지거나 건드려서는 안 되기에 항상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정형외과 인공관절 수술 도중 석션(흡입) 기계가 작동이 안 되어 의사가 소리를 쳤고, 욕설이 난무했다.
그때 나도 모르게 석션기 작동버튼을 눌러야겠다는 생각에 버튼을 만지는 순간 불호령이 떨어졌다. 누가 지금 기계를 작동했냐며 저 물건 당장 밖으로 내보내라고 말이다. 물건은 나를 가리켰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수술방에서 쫓겨나야 했다.
또 한 번은 수술 보조 역할로 위절제술 환자의 수술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때 나이프(수술도구인 칼)가 나의 글러브(소독된 장갑)를 찢었고 소독의 개념과 멸균의 개념이 중요한 수술실에서 컨타(오염이 되었다는 의학용어를 줄여서 이렇게 불렀다.)되었다며 나를 내보내는데, 그때 나의 모습은 마치 인형 뽑기의 갈고리에 걸린 인형 같았다. 뒤에 수술복 끈을 잡고 나를 끌고 내려오게 하더니 수술실 문을 열고는 나가란다. 무슨 벌레 보듯 눈초리가 매서웠다.
정말 여러 가지 일들이 참 많았지만 결정적으로 수술실은 대기 콜이 존재해서 응급 상황이 생기면 언제든 불려 가야 했다. 그만큼 페이가 많기도 했지만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큰 수술이 많았던 터라 밤새도록 응급 수술을 할 때면 다음 날까지 컨디션이 돌아오기가 힘들었다. 체력도 약했지만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멘털이었다. 정신이 매번 들락날락하는 통에 제대로 붙들고 있을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는 수술실 근무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내가 얻은 건 매일 소독업무를 같이 하느라 무거운 수술실 물품을 들고 나르느라 견갑골에 뭉친 담과 어깨 통증 그리고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였다. 그것도 20대 초반의 나이에 말이다.
하루 종일 서서 몇 시간 동안 수술실에서 거의 부동자세로 일하다 보니 목과 어깨, 허리와 다리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수술실이야 환자분들이 마취가 되면 말을 할 수 없기에 또 수술이 끝나고 회복될 때까지 잠들어 있기 때문에 환자와의 트러블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외래 근무나 병동처럼 환자와 밀접하게 접하는 곳은 사뭇 달랐다. 무엇보다 제일 환자들에게 시달림을 당한 곳은 전화상담 부서였다. 아무래도 얼굴을 보지 않는다는 장점을 자신들이 막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언행들과 고집을 넘은 아집으로 매번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외래에서는 얼굴이라도 보며 말을 하니까 어느 정도 알아듣고 이해를 하는데, 전화 상담은 안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계속되는 요구들을 멈추지 않고 전화를 절대 끊지 않는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내 멘털은 깨진 지 오래고, 나의 능력은 저 바닥을 향해 있다.
진상고객을 상대하면 심장이 튀어나올 듯 마구 뛰고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손이 벌벌 떨렸다. 식은땀이 줄줄 나고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유체이탈 되듯 내가 어디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정신을 못 차릴 때가 많았다. 특히나 가장 심한 건 극심한 폭언들 그리고 듣기 싫은 모욕스러운 말들이었다. 지금이야 상담원 분들에 대한 고충과 여러 가지 보완정책이 생겨서 심한 폭언을 덜한다지만 내가 근무하던 시절엔 고객이 왕이라는 이상한 슬로건 때문에 그 상대가 나에게 아무리 심한 욕설을 퍼부어도 절대 먼저 전화를 끊어서는 안 되었다.
그렇게 근무하던 나는 스트레스가 과중되었고 내 몸엔 암세포가 자라서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다행히 내가 좀 예민한 탓인지 금방 발견하게 되어 간단한 수술로 암을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몸 곳곳엔 무수히 많은 암세포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나 역시 제거는 했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매번 정기 검진때마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기도하지만 며칠 전 검사에서 음영이 비친다며 6개월 뒤에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들었다. 제발 아무 일도 아니기를 빌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면 하루하루 아등바등 거리며 살아가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다. 어쩌면 몸뚱이는 죽으면 그만인데 다들 뭐가 그리도 조급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는 건지
그렇게 살아가다 어느 날
너무 힘들고 괴로운 날에
몸은 피곤하고 면역력이 바닥을 치던 날에는
우리 몸 어딘가에서 자라나고있을 것이다.
그 누군가가 던진 돌덩이가 만들어낸 파편의 한 조각
아니었을까?
요즘 많이 보이는 상점마다 붙여있는 문구처럼
" 지금 앞에 계신 직원분은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가나 가족일 수 있습니다." 폭언이나 폭행을 하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