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옛날 사람들은 귀엽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나는 항상 “귀엽다”라는 우리말 표현에 불만이 많았다. 한 단어에 너무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나물을 한 그릇에 담아서 고추장과 참기름에 비며 먹으면 간편하면서 맛있는 비빔밥이 되지만 각각의 나물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풍미와 향은 가려지기 마련이다. 나는 귀여움이라는 표현이 여러 종류의 섬세한 감수성들을 뒤범벅해 놓았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섬세하고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 감성들이 하나의 표현 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이런 불만을 처음 갖게 된 것은 우리가 “귀엽다”라는 표현을 상당히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였다. 어린아이, 강아지, 고양이뿐만 아니라 식물과 무생물에도 우리는 귀여움을 느낀다. 이를테면 겨울 동안 새로 돋아난 새싹, 가지런히 벗어 놓은 양말, 캔음료를 따고 나서 보이는 얼굴 모양 같은 것 말이다. 최근에는 귀마개를 낀 대통령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온 국민의 귀여움을 받은 적도 있다. 한 국가의 최고 권위자까지 귀여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불과 3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귀여움에는 몇 가지 종류의 감수성들이 뒤섞여 있는 것일까? 나는 귀여움을 수집해서 분석해보기로 했다. 귀여움의 종류는 무척 다양했다. 연약한 귀여움, 엉뚱한 귀여움, 무지함에서 발생하는 귀여움, 아기자기한 귀여움, 큰 머리 사이즈에서 오는 귀여움, 부드러운 감촉에서 오는 귀여움, 귀여운 냄새 등등. 하지만 이 다양한 귀여움들은 서로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이를테면 이른 아침에 공원에서 모여서 진지한 표정으로 태극권을 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귀엽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귀여움은 어떤 귀여움에 해당되는 것일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외국인들이 인터넷 상에 올려놓은 귀여움을 수집하다 보니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cute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상황’에서 사용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Don’t try to be cute”라는 표현을 한번 살펴보자. 우리말로 직역하면 “귀여운 척하지 마”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영미권 국가에서 이 표현은 귀여움과 무관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사용된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한 중학교 수업시간을 상상해보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문제를 내주셨다.
‘아동 학대를 방지하기 위해 <부모 자격증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의 의견을 짧게 적어보세요.’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옆자리 짝꿍과 잠시 의논해본 후 의견을 적어보라고 하셨다. 교실은 순식간에 아이들 목소리로 가득 찼고 토론이 끝난 아이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생각을 적어 나가기 시작하면서 다시 조용해졌다.
갑자기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물었다. (편의상 이 학생을 마이클이라고 부르자.)
“선생님! 짝꿍하고 저랑 의견이 똑같은데 답변도 똑같이 적어도 되나요?”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글쓰기 연습을 시키고 싶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마이클, 똑같은 의견이라고 해도 다양한 표현방법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창의력을 발휘해서 자신만의 답변을 작성해보세요.”
수업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은 아이들이 제출한 답변은 확인하는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마이클과 그 학생의 옆자리에 앉은 짝꿍(이 학생은 에릭이라고 부르자)의 답변이 똑같았던 것이었다. 선생님은 화가 나서 두 아이를 교무실로 불러서 이렇게 물으셨다.
“아까 선생님이 한 말 못 들었어요?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도 다른 방식으로 답변을 써보라고 했잖아요.”
마이클은 억울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 저랑 에릭이 쓴 답변은 똑같지 않아요. 자세히 한 번 읽어보세요.”
선생님은 두 답변을 다시 읽어보았다.
에릭 7학년
저는 부모에게 자격증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은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보아주는 것이지 자격증 같은 능력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동학대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아이들의 몸에 상처나 멍이 들어있지 않은 지 확인하는 방법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마이클 7학년
저는 부모에게 자격증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엄마 아빠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보아주는 것이지 자격증 같은 능력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아이들의 몸에 상처나 멍이 들어있지 않은 지 확인하는 방법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두 학생의 답변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따위” 대신 “같은”이 들어갔고 “부모님” 대신 “엄마 아빠”가 사용되었으며 “아동학대를 방지하기 위해서는”이라는 표현은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서는”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어 있었다.
선생님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마이클과 에릭에게 물으셨다.
“너희들 정말로 이게 다르게 쓴 답변이라고 생각하니?”
마이클과 에릭은 얄미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선생님… 분명 다른 표현들이 들어갔잖아요…”
선생님은 잔뜩 화가 나서 마이클과 에릭을 향해 소리쳤다. “마이클 에릭! 귀여운 척하지 마(Don’t try to be cute)! 너희들 지금 선생님을 우습게 보고 요령껏 넘어가려고 하는 거지? 두 명 다 제대로 된 답변을 쓰기 전까지 오늘 점심은 못 먹을 줄 알아!”
선생님이 마지막에 한 말에서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 마이클과 에릭은 귀여운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데 선생님은 귀여운 척하지 말라고 하셨다. 마이클과 에릭이 선생님께 한 번만 봐 달라고 애교라도 부렸으면 모를까, 둘의 자세는 귀엽다고 하기엔 너무 뻔뻔하고 얄미웠다. 선생님을 속여 넘기려고 하는 태도가 교활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목소리까지 키워가며 “귀여운 척하려고 하지 마”라고 소리치셨다. 왜일까?
“Don’t try to be cute”라는 표현에서 cute는 우리가 아는 ‘귀여움’이라는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먼저 cute의 어원을 살펴봐야 한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따르면 cute가 사용된 가장 오래된 문헌은 1731년에 나탄 베일리(Nathan Bailey)라는 사람이 발행한 사전이라고 한다. 그 사전에 cute의 뜻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
Cute= sharp(예리한), quick-witted(상황판단이 빠른), shrewd(약삭빠른).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cute의 의미와는 사뭇 다른 뜻풀이가 적혀 있다. 심지어 비슷한 뜻도 아니고, 완전히 정반대의 뜻이다. 왜 이렇게 상반되는 의미가 적혀 있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당시에는 Cute가 acute라는 단어의 축약형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예리한, 상황판단이 빠른, 약삭빠른” 은 acute의 의미인 것이다. 처음에 사람들은 acute를 축약했다는 표시로 작은따옴표(‘)를 붙여서 ‘cute로 사용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따옴표가 사라지고 cute로 쓰이게 되었다. (뒤에서 자세히 다룰 테지만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면, 1830년대에 미국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귀엽다는 의미로 cute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cute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는 변화했지만 여전히 일부 표현에서는 cute의 원래 어원인 acute의 흔적이 남아있다. 위에서 살펴본 상황에서 선생님이 마이클과 에릭에게 “don’t try to be cute”라고 했을 때 사용된 cute가 바로 acute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말로 선생님의 말을 의역한다면 “잔머리 굴리지 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지리 문화적 조건이나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귀여움이라는 감수성의 역사적 배경과 사용되는 맥락은 매우 상이하다. 나중에 살펴볼 테지만, 일본에서 사용되는 '카와이'라는 표현 역시 우리말의 '귀엽다'는 의미와 완벽하게 1대1 대응하지 않는다. 카와이는 귀엽다는 표현부터 예쁘다는 표현까지 포괄하는 매우 폭넓은 감수성이다.
나는 귀여움과 관련된 책을 읽어보려고 광화문에 있는 대형 서점에 들렀다. 도서 검색 컴퓨터에 ‘귀여움,’ ‘귀엽다,’ ‘귀여운,’ ‘큐트’ 같은 단어를 검색해보았다. 내가 원하는 책은 찾을 수 없었다. <귀여움이 넘치는 만화 그리기>, <귀여운 일본 선물 고르기>,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클레이 만들기>, <성인 만화 큐 큐 큐-트> 같은 책들만 몇 권 나올 뿐이었다.
혹시 도서 검색이 제대로 안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사랑’을 검색해보았다. 그러자 2만3천398권이나 되는 책이 나왔다. <사랑의 기술>, <현대 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와 같은 인문 철학 서적뿐 아니라, <사랑의 몽타주> 같은 에세이와 <연애백서>, <바른연애 길잡이>와 같은 가벼운 실용서도 많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와 같이 사랑을 주제로 한 수만 가지의 소설까지 더한다면 이보다 더 많은 책들이 사랑에 대해 다루고 있을 것이다. 스크롤을 좀 내려보니 종교 서적도 몇 권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기독교에서 매우 핵심적으로 다뤄지는 덕목이 바로 ‘사랑’ 아니었던가? 신학자들과 사상가들은 ‘사랑’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담은 책을 펴냈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자서전이나 에세이에서 사랑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다.
서점을 나와서 광화문 광장 쪽으로 걸어갔다. 광화문 처마 위에 놓인 ‘어처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어처구니는 궁궐 처마 위에 올려놓는 흙으로 만든 조각물을 일컫는다. 악운과 귀신을 쫓아준다 해서 조각물들은 신화 속 동물들로 만들어졌다. 작은 뿔과 모자를 쓴 어처구니들이 오늘따라 더 귀엽게 느껴졌다.
순간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쳤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처구니를 보며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그 당시에도 ‘귀엽다’라는 표현이 존재했을까?’
만약 우리말 ‘귀여움’도 생겨난 지 얼마 안 된 단어라면….
‘귀여움이라는 단어가 없었을 때 사람들은 귀여움이라는 감정을 느꼈을까? 아니, 귀여움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갖고 있었을까?’
다른 질문들도 연달아 떠오르기 시작했다.
‘왜 하필 21세기에 귀여움이 이토록 보편적인 감수성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일까?
‘우리는 왜 귀여운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귀여움도 일종의 본능일까? 귀여움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까?’
‘귀여운 것을 보면 왜 무엇인가를 깨물고 싶거나 강하게 쥐어짜고 싶은 충동이 드는 걸까?’
생각에 잠긴 채 걷다 보니 세종대왕 동상 앞이었다. 음각으로 깊게 파인 한글이 동상 아랫부분에 새겨져 있었다. 세계적인 언어학자가 한글에 대해 썼던 글이 떠올랐다. 한글의 위대함은 단순히 한 나라의 독자적인 문자 체계를 만들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한글 창제가 인류 역사상 전래가 없었던 ‘소리의 시각화’ 작업이었다고 말한다. 인간의 언어체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시각적인 구조로 표현해낸 유일한 사례가 바로 한글이라는 것이다. 소리와 문자의 관계를 집약적인 연구와 실험을 통해 처음으로 밝혀낸 것이다.
한글을 창제하고 난 후 조선 사람들은 그동안 실체도 알지 못한 채 사용해왔던 우리말의 구조와 특징들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조선은 점진적인 혁명을 겪게 된다. 읽고 쓸 수 있는 특권층이 확대되는 계층적 혁명뿐만 아니라 우리말의 감수성을 문자에 담을 수 있는 감성의 혁명 또한 일어났다. 의성어나 의태어와 같이 한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순 우리말 표현들을 글에 담아 냄으로써 우리 민족의 고유한 감성을 시각화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귀여움은 우리가 거의 매일 느끼고 표현할 뿐 아니라 소비하고 생산해내는 감수성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익숙한 것일수록 객관적으로 관찰하기가 어렵다. 애당초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관찰해야겠다’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말을 매일 쓰면서 그것을 시각 정보로 담아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세종 이전의 선조들처럼 우리는 매일 느끼는 귀여움이라는 감수성의 실체를 알고자 했던 적이 없다.
나는 세종대왕이 언어를 탐구하고 시각화한 것처럼 귀여움이라는 감수성을 분석해서 체계화하고 싶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매일 사용하고 듣고 느끼는 것을 구체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여움은 인간의 감성 중에서 가장 지속적이고 강력한 것들 중 하나다. 좀처럼 질리지도 않지만 우리의 마음과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이다. 이를테면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핸드폰 케이스를 볼 때마다 계속 구매하게 되는 심리나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가 나오는 영상을 끊임없이 돌려보는 행동처럼 말이다. 만약 이 브런치북이 귀여운 표지와 함께 출간돼서 서점에 나왔다면, 이 책 역시 귀여움으로 소비자의 몸과 마음을 조종한 사례가 된다. 귀여운 표지와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집어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살펴볼 테지만 귀여움이 가진 이러한 매력 때문에 귀여움은 수많은 마케팅 사례에 매우 빈번하게 등장해왔다.)
독자 중에서 나처럼 귀여움과 관련된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실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질문을 해본 적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 나도 자료를 조사하면서 새롭게 마주했던 질문들이 수두룩했으니 말이다. 여러분은 이제 나와 함께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의 답을 함께 찾아갈 것이다.
사랑을 많이 해본 사람이 사랑의 밝고 아름다운 면뿐만 아니라 어둡고 고통스러운 면까지 아는 법이다. 첫사랑은 서툴기 마련이고, 반대로 경험이 쌓인 후의 사랑은 더욱 깊고 안정적이다. 물론 경험이 쌓인 후의 사랑은 좀처럼 불이 붙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불이 붙더라도 활활 타오르기보다는 은은하게 불빛을 내기 때문에 이것이 사랑인지 헷갈릴 수도 있다. 귀여움도 이와 비슷하다. 이 브런치북을 다 읽고 나면 여러분은 나름의 귀여움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친구와 길을 걷다가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핸드폰 케이스를 보고 살지 말지를 고민하는 친구에게 당신은 귀여움이 우리의 소비 패턴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있는지 일침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귀여움에 대한 감도 역시 바뀔 수도 있다. 책을 읽기 전처럼 귀여움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반대로 그동안 귀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들을 귀여워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귀여움의 내막을 아는 것이 두렵다면 여기서 이 브런치북을 멈춰도 좋다. 하지만 당신은 귀여움에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감성이 종합되어 있는지 모른 채 뭉툭한 감수성을 갖고 세계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귀여움에는 어떤 권력적 비대칭이 존재하는지, 마케터들이 당신의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 귀여움을 이용하는지 당신은 모른 채 살아갈 것이다. 그래도 좋다면 지금 책을 덮어도 괜찮다.
귀여움의 내막이 궁금하다면 책장을 넘기고 나와 함께 ‘귀여움 목욕탕’에 풍덩 빠져보자. 첫 번째 탕은 ‘아기 팬더’다.
* 매주 목요일 1회씩 업로드 됩니다. 다음 업로드 날짜는 9월 23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