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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역사의 문이 닫혔다

by 이종범

예고된 변화가 '오늘'이 된 순간


11월 초순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오랜만에 후배들과 오는 11월 27일 저녁 식사 약속을 잡아둔 상태였죠. 퇴직한 선배로서, 함께 고생했던 후배들에게 "올해도 정말 잘 버텼다" 한마디 건네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자리를 마련했던 약속이었죠.


11월 14일 금요일 오후,

휴대폰에 짧은 메시지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송구의 말씀 올립니다~ 27일로 예정했던 식사 약속을 추후로 연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이하 생략) "


문장 끝의 익숙한 말투와 달리 그 뒤에 매달린 무게는 너무 분명했습니다.


저는 지체 없이 전화를 걸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후배의 첫마디가 제 마음을 조용히 내려앉게 만들더군요


"선배님… 12월 1일 자 인소싱 명단이 발표됐습니다."


여러 해 동안 예고만 되던 변화가 '오늘'이라는 이름을 달고 갑자기 찾아온 것입니다. 후배는 최대한 담담하게 설명하려 했지만 중간중간 숨을 고르는 떨림이 들렸습니다.


사무실은 정적에 잠겼고, 누군가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긴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비웠다고 하더군요.


그런 분위기에서 퇴직한 선배와 밥을 먹는다는 게

후배들에게도, 저에게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휴대폰을 내려놓았습니다. 멍한 상태였지만, 마음속에 스치는 생각은 분명했습니다.


"그래… 결국 그날이 왔구나."


예고된 변화라 마음이 덜 흔들릴 줄 알았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마음 한쪽이 비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허전함, 막막함, 알 수 없는 불안감…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고 한동안 가만히 앉아만 있었습니다.


그 짧은 약속 취소 메시지 하나가 후배들이 지금 어떤 현실을 견디고 있는지 말보다 더 또렷하게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16년 전, 28명이 함께 만든 첫 심장 박동


저는 2009년 10월 1일을 잊지 못합니다. 메이저 보험사인 H손보에서 교육 전문가 28명이 선발되어 '하이인재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업계 최초로 출범한 날이었으니까요.


그때 저는 유일한 62년생이었고 조직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배 연구원이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이 설레면서도 '내가 여기서 잘할 수 있을까…' 조금은 긴장도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바로 아래엔 7년 어린 후배가 있었고, 그 아래로는 대부분 30대 후반의 젊은 연구원들이었습니다. 그 친구들이 하이인재원의 실제 움직임을 이끌었고 현장의 변화를 만들어낸 주역들이었죠.


시간이 흐르면서 조직은 80여 명 규모로 성장했고

세대도 훨씬 다양해졌습니다. 그 변화의 과정들은 지금도 제 기억 속에 생생합니다.



치열함으로 채운 16년의 기록


하이인재원의 성과는 문서나 교안으로 정리된 결과가 아니라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고, 의견이 맞부딪히고,

끝없이 수정했던 치열한 여정에서 만들어진 고민의 흔적들입니다


며칠 동안 공들인 교안을 과감히 버리던 순간들,

새 강의안을 들고 와 "이게 진짜 현장답습니다"라며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던 연구원들, 여러 생각들이 부딪혀 뜨겁던 회의실 공기… 그 치열함이 차곡차곡 쌓여 '하이인재원만의 전문성'을 만들었습니다.


퇴직 3년 차가 된 지금도 그 시간들은 여전히 제 안에 살아 있습니다.



2022년 10월 31일, '하이인재원' 1호 정년퇴직자


28명 창립 멤버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저는 정년의 문을 제일 먼저 통과했습니다.


"처음을 함께했고, 가장 먼저 정년을 채운 사람. 시작도 끝도 영원한 1번으로 남아야 하는 나."


이 말에는 자부심도 있었지만, 쓸쓸함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기쁨과 허전함이 늘 함께 따라다녔으니까요.



코앞으로 다가온 2025년 11월 30일


12월 1일이 오면 하이인재원은 추억 속의 기록으로 남게 됩니다. 16년 만에 다시 친정으로 인소싱되어야 하니까요.


80여 명 중 인소싱 대상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명단에서 빠진 연구원들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각자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현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후배들과 통화를 하면 말보다 먼저 깊은 침묵이 흘러옵니다.


"지금은 어떤 선택도 쉽지 않습니다…"


짧게 털어놓는 말 뒤에 숨겨진 마음들을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감정은 과거의 저에게도 있었던 것이니까요.


16년 전, 우리는 미래를 장밋빛으로만 그렸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그 조직이 소멸되는 과정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오래 다닌 모교가 갑자기 폐교된다는 통보를 받는 것처럼 묘한 상실감이 밀려옵니다.


2009년 10월 1일, 처음 뛰기 시작했던 심장 박동이 2025년 11월 30일을 끝으로 멈춘다니…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허전함이 가슴 한쪽에 오래 남습니다.


조직의 폐쇄는 문서 몇 줄로 끝납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시간을 살아낸 연구원들의 마음은 그 문서에 담기지 않는 깊이와 떨림이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조직은 결국 사람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 기록의 처음이자 마지막 정년퇴직자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제 후배들에게 바라는 마음은 하나뿐입니다. 남는 사람도, 떠나는 사람도 각자의 자리에서 다음 삶으로 무사히 건너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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