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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세계 속으로

미지의 마케팅 나무 ep.9 - ATL과 BTL

by 케니스트리


블라인드 사이로 스미는 빛이 참 편한 시간이 있다. 시스템 커서, 전화벨 소리, 사람이 누르는 키보드 소리마저 정형화된 일상의 패턴에 익숙해서일까, 조금씩 흔들리는 빛의 물결이 마치 윤슬 같다고 느낀다. 그래서 회사에 제일 먼저 도착한 날에는 한동안 사무실 불을 켜지 않는다. 차분히 즐기는 최소한의 빛, 최대한의 평화. 고요가 깨지는 데에는 10분 남짓이 채 걸리지 않는다.


"불 왜 안 키고 있어요?"


오자마자 부산스러운, 영업 팀 1등 출근자는 오승우 매니저였다. 그는 영업 2년 차 사원으로, 서글서글한 이미지와 대조되는 바쁜 잔걸음으로 다닌다. 그다음에 한동안 적막이 흐르다가, 허은지 매니저, 영업 팀장, 선임 매니저 순으로 보통 출근을 했다. 우리 팀장님은 거의 9시 다 돼서 회사에 왔다. 그가 출근할 무렵, 영업 팀은 오전 회의를 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9시 30분. 조사한 내용 보고


"매니저님이 작성한 것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우선 산업안전 세미나요. 거기에서 기회가 올 것 같아요. 주요 고객 앞에서 우리 기술을 소개하는 자리니까, 기회를 얻을 확률이 클 것 같아요."


"그럴 것 같네요. 전시회도 적으셨네요?"


"네. 조만간 저희가 국제안전대전에 참가한다고 하던데요. 고객을 만나고, 기술을 보여주고 설명할 수 있으니까 좋은 홍보가 될 것 같아요."


"네, 잘 봤어요. 둘의 공통점은 뭘까요?"


"글쎄요, 우리가 직접 가서 고객을 만난다는 것 아닐까요?"


"맞아요. 보통 온라인 광고나 캠페인, 영상광고 같은 활동은 ATL, 즉 대중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 해당하고, 방금 이야기한 전시회나 세미나, 포럼 같은 건 좀 더 관심 높은 고객층을 대상으로 집중 설명하는 자리죠. 이런 걸 BTL, 직접 마케팅이라고 불러요."



ATL과 BTL


ATL, BTL. 어떤 기준선을 두고 그 위쪽과 아래쪽에 각각 above the line, below the line이라고 활동을 모아놓고, 특히 아래쪽에 위치한 직접 마케팅에 세미나와 전시회가 포함된다는 팀장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근데 왜 위와 아래지? 문득 궁금해졌다.


"팀장님, ATL과 BTL로 구분지은 게, 그냥 기억하기 편하라고 한 건가요? 왜 위와 아래로 이름 지은 거예요?"


"음, 처음에 누가 그렇게 불렀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중요한 건, 다양한 마케팅 활동들을 특성에 따라 구분하고, 목적과 방식을 이해하는 거예요."


팀장님은 보드마카를 들더니 선을 가로로 하나 쭉 그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마카 지우개로 살짝 지우니, 선이 둘로 나누어졌다.


"이 위쪽과 아래쪽을 가르는 선명한 선이 보이죠? 그 가운데를 지우니까 뭐가 생겼나요?"


"선 두 개요."


팀장은 웃으면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아, 그렇게도 보이네요. 저는 구분이 약해진 공간이 보여요. 아마 중력 없이 아래위 공기가 흐른다면, 위와 아래가 섞이겠죠?"


단지 두 개의 선이 나란히 그어진 하얀 면 위와 아래에, 조금 전 팀장님이 말한 활동들이 있는 것일까.

"명확한 구분은 사실 실무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죠. 매니저님이 말한 대로, 이건 아주 오래전에 누군가가 이해하기 편하도록 구분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현실 마케팅은, 그걸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려워요. 가령 우리가 전시회에 참가한다고 하면, 그냥 제품을 가지고 전시회에 마련된 자리에 가서 전시만 하고, 누가 오길 기다려서 설명을 하면 그걸로 좋은 마케팅 활동일까요?"


"음, 지나는 사람들이 우리 부스에 오도록 호객을 해야 하나요?"


팀장님은 앞에 있는 노트를 집어 들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저기, 여기 오셔서 저희 제품 좀 보고 가세요."


조금 어정쩡한 손짓에 굳은 표정을 한 팀장님이 조금 웃기다고 생각했다. 팀장님은 다시 표정을 풀더니 이어 말했다.


"이러면 와서 보고 갈 거예요?"


"음, … 저라면 그냥 지나칠 것 같은데요. 그렇게 불쑥 다가오면요."


예상한 답이었는지 흡족한 표정으로 팀장님은 말했다.


"그렇죠. 조금 더 효과적이면서, 회사 브랜드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아마도 현장에서 하는 노력이 전부는 아닐 거예요. 호객을 하더라도 매력적인 방법이 분명 있을 거예요."

마케팅 활동 구분 - ATL과 BTL (예시)


마케팅 믹스


팀장님은 아까 그어놓은 화이트보드 위 선 가운데를 지워 생긴 구멍을 더 지워 크게 만들었다.


"마케팅 믹스. 보통은 미디어 믹스라고 하는데, 그 표현을 제가 좀 변형한 거예요. 전시회와 온라인 홍보, 언론 홍보와 프로모션 같은 활동을 결합하는 거죠."


팀장님은 전시회 현장에서 방문객이 관심 가질 만한 프로모션을 기획하고, 전시회와 프로모션 소식을 멋진 그림과 함께 우리 홈페이지 게시판에 게재하고, 그걸 소셜 네트워크 계정에 올려 홍보하고, 언론사가 참고할 보도자료를 작성해서 공유하는 일련의 과정을 이야기했다.


"ATL이니 BTL이니 하는 이론으로 마케팅 활동들을 각각 떼어내서 이야기하는 건 강의실에서 하는 거고, 현장에서는 쓸 수 있는 도구들을 따로도, 또 같이도 활용하면서 결국 최종 목적, 그러니까 기회를 최대화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에요. 매니저님이 찾아온 기회가 오는 곳들은 결국 여러 마케팅 활동들 중 하나이고, 또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래요."


팀장님은 마치 미리 써둔 대본을 읽는 듯 유려하게 말했다. 중간에 음, 어 같은 머뭇말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일까, 명료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전히 조금 어렵다고도 느꼈다. 그럼에도 분명히, 나는 팀장님이 초대한 마케팅의 세계 안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가끔은 주객이 전도돼요. 활동 단위로만 이해하고 실행하다보면 조화가 부족해지죠. 어떤 건 선후를 잘 따져서 하고, 또 강약도 조절하면서 하고, 때로는 조금 비틀어 보기도 해야 해요. 활동보다, 그걸 통해 이루려는 목적을 먼저 생각한다면, 아마 활동의 이유도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을 거예요."


팀장님은 회의를 마치기 전에, 한 가지 요구를 더 했다.


"고객이 우리 제품을 인지하고 최종 구매단계에 이르기까지, 그 일련의 과정을 최대한 자세히 고민해서 나열해 보겠어요?"


여정. 참 예쁜 말인데, 연관 이미지는 왜 깔때기 모양인 걸까?


팀장님이 이야기한 퍼널이라는 단어와 그 연관된 이미지는 흥미로웠다. 이제, 소비자가 제품을 알고, 구매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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