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마케팅 나무 ep.10 - USP
누구나 번듯한 삶을 상상한다. 번듯한 집, 번듯한 직장, 번듯한 일.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잘 떠오르지 않아도, 번듯한 외양은 언제나 욕망의 목록에 있다. 그 열망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일 뿐.
마케팅이라는 일도 그런 번듯한 직업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마케팅 팀으로 옮겨오기 전,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전 대학생 때 과목으로 배웠던 그 당시에,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서 세상이 이 일을 어떻게 보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미지는 담고 있었다. 팔을 살짝 걷은 셔츠를 입고 투명한 칠판에 무언가를 적으면서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는 모습, 컴퓨터, 회의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서로 악수를 하는 비즈니스맨들의 모습을.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교실에서 알 수는 없었다.
마케팅팀에 속해 일한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이 일은, 사실 그런 장면으로는 설명이 어렵다는 것을. 그래프, 돈, 열정, 이성, 감성, 언어. 사람이 사회를 이루고 경제활동을 하면서 필요한 모든 말랑하거나 단단한 존재들이 이 일을 감싸고 있다는 것을. 늘 신나고 경쾌한 사건이 아니라, 때로는 지루한, 때로는 묵직한, 때로는 가늘지만 길게 이어진 밑바탕의 노력들이 이 일을 지지한다는 것을.
아직 잘 모르면서도 새삼 다시 철학소녀가 되어 그런 생각을, 이 날의 회의 이후에 하게 됐다.
팀장님의 초대로 영업팀 인바운드 담당 허은지 매니저와 김민석 선임 매니저, 그리고 내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 회의 전에 팀장님은 브로슈어를 보다가, 궁금한 것이 있어서 꼭 알아봐야겠다고 했다. 판매 중인 상품이나 솔루션의 종류를 알고, 우리 제품의 차별점을 실무자에게 물어봐야겠다고.
"개발 부서와 영업 부서에서 알 수 있는 정보가 달라요. 우선 우리 제품이 세상에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지 파악해 보려고요."
팀장님은 출근하고 며칠간은 자주 자리를 비웠었다. 대체로 미팅을 다녀오는 듯 보였다. 다른 부서와의 미팅에 내가 함께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영업 분들은 지방에 내려가 있어서 우선 이렇게만 함께 본다며,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몰라요. 너무 사람 많으면 오히려 복잡해."라고도 했다.
먼저, 팀장님이 시작했다.
"저희 제품들을 쭉 살펴봤거든요. 영업 경쟁구도와 저희 제품 특장점을 영업관점에서 좀 파악하고 싶어서요. 아무래도 현장 경험이 많으시니까, 선임매니저께서 전반적으로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민석 선임매니저. 부산 출신으로 약간 사투리가 섞인 말투가 특징이다. 그냥 느낌에, 좀 세심한 편인 것 같았다. 책상이 늘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는 다른 업계에서 영업을 하다가 우리 회사로 왔다고 들었다.
"저희는 주로 공공기관이나 회사들에 영업을 해요. 장비 하나가 비싸다 보니까 그냥 아무 데나 가서 영업은 못 하고요, 지역에 파트너들이 있어서 그분들 통해서 보통 영업이 이루어져요."
"채널 영업 말씀이죠? 지역 총판이나 대리점?"
"맞습니다."
"경쟁사는 몇이나 있어요?"
"흔한 기술은 아니에요. 국내 업체 하나가 있고, 외국 업체 제품을 수입해서 파는 국내 총판이 하나 있어요. 일단 국내 유통 제품은..."
김 매니저는 제품의 종류를 하나하나 설명해 줬다. 팀장님은 미리 준비한 제품 소개자료를 두고, 사인펜으로 무언가 적기도 하고, 밑줄을 긋기도 하며 질문을 이어갔다.
"주로 영업은 인바운드가 많다고 하던데, 은지 매니저님은 우리 제품에 대해 문의가 오면 응대를 하시는 거죠?"
"네, 홈페이지 문의하기가 오면 전화를 드리기도 해요. 대체로 전화로 견적을 물어보거나 하면, 매니저님께 전달해 드려요."
김 선임이 그 말을 받아 말했다.
"보통 채널 파트너 유통에 관한 건은 은지 매니저가 응대하고요, 큰 기업이나 공공기관은 팀장님이나 제가 넘겨받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네..."
팀장님에게는 동의의 제스처와,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도 같이 있었다.
"저희 제품의 차별점을, 뭐라고 정의하면 좋을까요? 보니까 조금씩 다르긴 해도, 근로자 안전 모니터링 솔루션이랑 공공장소 위기관리 플랫폼은 정확히 우리랑 겹치더라고요. 보통 우리 제품을 이야기할 때, 차별화 포인트를 어떻게 설명해요?"
"음,... 어..."
쓰던 펜을 내려놓고, 몸을 뒤로 젖히며 묻는 질문에 김 선임은 쉽게 답을 이어하지 못했다.
잠시 기다리던 팀장님은 웃으며 덧붙였다.
"아, 너무 자세히는 아니어도 돼요. 어차피 R&D 팀장님도 뵙고 여쭐 것들이 있어서 그전에 셀링 포인트를 대략 파악할 목적이에요."
뒷머리를 긁적이던 김 선임이 말했다.
"일단 국내 회사니까 우리는 서비스가 촘촘하게 잘 지원되는 편이고요, 관리자 대시보드도 상대적으로 깔끔하게 잘 구성되어 있고, 현장에 설치하는 센서 제품 디자인도 괜찮다는 분들이 많고요."
은지 매니저도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입을 떼려다가, 틈을 찾지 못해 다시 삼키는 것 같았다. 팀장님은 그걸 알았던 걸까.
"아, 은지 매니저님도 고객분들 문의 많이 받으실 텐데, '현장 안전 감시봇이 실제 효과가 있나요? 사례를 좀 얻고 싶은데요.'라고 물어보면 바로 얘기해 주세요?"
은지 매니저는 특유의 나긋한 듯, 그러나 또렷한 목소리로 답했다.
"국가 우선구매 품목으로 지정되고, 군이나 기관 현장까지 테스트 사용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환경에 최적화된 솔루션은 우리가 거의 유일하다고 들었어요. 유럽산 제품은 화면 인터페이스가 너무 단순하고 변경이 안돼 우리 환경에 맞춰 적용하는 게 어려운 경우도 있다더라고요. 실제로 어떤 고객분은 전화 하셔서 '예전에 세이프콘 제품을 도입했는데 어플도 사용이 불편하고, 공정상 동선을 잘못 이해하는지 자꾸 잘못된 경보가 울려서 불편했다'라고 불만을 얘기하신 적이 있어요."
팀장님은 경청했다. 나도 열심히 키워드를 적었다. 중요하고 유익한 시간일 거라고, 사전에 팀장님이 말했듯, 얻은 정보가 많았다.
"현장에 있다고 다 아는 게 아니에요. 이건, 내가 파악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잘 모를 수 있어요. USP를 파악하는 건 제품 마케팅의 시작이 될 수 있거든요."
USP, 곧 'unique selling point는 제품의 경쟁력이자 특장점'이라고, 팀장님은 설명했다.
"은지 매니저는 아는 고객도, 모르는 고객도 상대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USP를 잘 이해하게 된 걸지도 몰라요. 마케팅은 그걸 명확히 정의하고, 이후에 여러 전략이나 메시지에 반영해야죠. 그러려면 우선..."
잠시 머뭇한 팀장님은 노트북을 쓱 내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이 카탈로그에는 그런 메시지가 보이지 않아요. 홈페이지도 마찬가지고요. 고객 입장에서는 '왜 이게 필요한가'도 중요하지만, '왜 이 제품이어야 하는가'도 선택에 중요한 기준이예요. B2B에서 충동구매는 우리도 반갑지 않거든요“
충동구매는 드물다. 그래서 필요한 제품 각각의 경쟁력을 드러내서, 조금 더 친절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라고 팀장님은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