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드 바이블 2-4, '성혼' 이야기
결혼은 이별이다.
오롯이 혼자 걷던 길과의 이별이고,
혼자 꾸려가던 일상과의 이별이고,
자신만을 위하던 이기와의 이별이다.
결혼은 만남이다.
듬직한 내 편과의 만남이고,
내 것을 주저 없이 나눌 이와의 만남이고,
함께 걸어갈 새로운 길과의 만남이다.
이별과 만남이 함께인 결혼은,
상반된 두 의미를 모두 담은 한 글자
맺을 '결(結)'로 시작한다.
약 한 해 전 가을, 오랜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곧 결혼을 한다며, 청첩장을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몇몇 함께 알던 이들을 초대하여 만날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멋과 맛이 남다른 한 레스토랑에서 오랜만의 재회를 했습니다.
"저 내년 초에 결혼해요."
수줍게 웃으며 청첩장을 건네는 그의 손은 아주 가느다란 떨림으로 설렘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나와 같이 밝고 열정 넘치는 모습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행복한 표정이 그 모든 것의 앞에 있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예쁜 손글씨로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쓴 초대의 편지글이 담긴 청첩장을 보았습니다. 장소는 명동성당.
"아마 저도 그때쯤이면, 성체를 모실 수 있을 거예요."
그는 가톨릭 신자였고, 저는 당시 예비 신자였습니다.
“저는 꿈을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늘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고, 편한 것에 머무르지 않던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반려자를 비로소 만났다고 했습니다. 제가 5-6년 차 회사원일 때, 사회 초년생이던 그를 회사에서 만나 접한 것은 저보다 더 많은 생각과 경험을 하며 채워온 그의 여행과도 같은 삶이었습니다. 그중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난 일과, 그 길 위에서 경험한 그의 이야기는 지금도 제 노트 한 편을 채웁니다.
"...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없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없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되게 축복받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 감사하다, 아 그러면 절대 가만있을 수가 없겠다, 뭔가 해야겠다. 분명히 이 모든 축복에 이유가 있을 텐데... 하면서, 게으름을 버리고 누군가를 도우러 막 다녔던 것 같아요."
언젠가 사보(社報)에 소개할 목적으로, 힘든 순례길을 스스로 떠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선하게, 또 부지런하게 살아가던 그에게 자신에 대해 소개해 달라고 하자 해준 이야기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꿈을 사랑하고, 또 하루하루 의미 있는 일들로 채우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해준 이야기는, 무의미한 것들에 집착하며 그것이 진정한 고통인지 모르고 나태하게 살던 내게 작은 불씨로 남았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는 이들이 적다." -마태 7,13-14
지금은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는 일을 하고자 다시 좁은 문을 연 그와, 비좁은 길을 함께 걷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반려자를 만나 행복한 여정을 떠나기로 약속한 두 사람. 그들은 이듬해 초 아직 찬 바람이 매서울 때 서울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처음에는 일어서고 앉는 게 좀 어색했는데,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몸이 맡겨지더라. 의미는 몰라도 왠지 성스러운 느낌이었어."
가톨릭에서는 결혼식을 성혼성사라고 부릅니다. 성혼성사는 주일 미사와 비슷하게 진행되며, 참여한 이들은 전례의 절차에 따라야 합니다. 갈수록 그 형태가 자유로워지고 화려함과 재미를 추구하는 요즘 결혼식에 비해 다소 분위기가 엄숙한 데다 일어서고 앉는 행위가 많아 가톨릭을 잘 모른다면 조금 불편할 수 있습니다.
신자가 아닐 때도, 신자가 되고 나서도 성당 결혼식은 경험이 없었습니다. 평소에도 성당에서는 왠지 들뜬 마음이 차분하게 되어 좋은 쉼이라 여겼는데, 당사자도, 축하를 전하는 이들도 어떤 뜻으로는 지속되는 텐션에 지칠 만도 한 결혼식이 마음의 쉼이었다는 점에서 그날은 좋은 휴일이었습니다.
"평화를 빕니다."
성당 중간에 서로에게 하는 평화의 인사도, 배운 적이 없는 비신자분들도 쉽게 따라 하며 스스로와 그들 주위 사람들과의 유대감을 느낀 좋은 경험이라고 했습니다. 함께한 동행이 "가본 결혼식 중 제일 편안하고 좋았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무엇이 그들에게, 또 내게 다른 의미로 남았을까요?
결혼식이란 대체로 한 쌍의 주인공을 위한 무대처럼 여겨집니다. 꽃으로 장식된 통로, 그 위를 걷는 두 사람, 앞에 선 주례자와 뒤에 선 하객들까지, 모든 시선은 신랑과 신부를 향합니다. 사진도, 음악도, 축사도 결국은 그들을 위한 것이고, 그래서 이 결혼이, 두 사람이 얼마나 특별한지 강조합니다.
하지만 성당에서 하는 혼인성사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교회 공간에서, 사제와 신랑 신부, 그리고 하객 모두가 함께 하는 축하 이상의 기도, 응원 이상의 약속을 통해 이 결혼은 단지 둘만의 시작이 아니라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됩니다.
'결혼(結婚)'이라는 한자를 살펴보면, '맺을 결(結)'과 '혼인할 혼(婚)'이 만나 두 사람이 인연을 맺어 하나의 삶을 이루어가는 약속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영어의 'wedding' 역시 고대 영어 'wedd', 즉 '서약'에서 비롯된 말로, 역시 서로에게 신중히 맹세하는 행위임을 보여줍니다.
가톨릭의 혼인성사는 바로 이 '서약'의 의미를 과정 안에 온전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그 언약을 공동체와 함께 지켜나가는 신성한 계약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당에서의 결혼은 단지 의식이 아니라, 평생의 여정을 하느님의 축복과 함께 시작하는 거룩한 출발점이 됩니다.
즉, 가톨릭 문화에서 혼인은 성스러운 일이고, 기반인 사랑은 단지 감정의 결실이 아니라 하느님의 축복과 공동체의 기도가 겹쳐 들려오는 신비한 응답인 셈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요한 2,12
예수님께서 첫 기적을 행한 자리는 바로 혼인 잔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