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마케팅 나무 ep.13 - 전시회 사전 답사
일요일. 팀장님을 만난 곳은 시내에 위치한 박람회장 입구였다. 전날 밤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맑은 하늘 아래 서늘한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고 있었다.
"이거 쓰세요"
팀장님은 입구로 들어가며 내게 마스크를 하나 건넸다.
"마스크네요?"
"네, KF94예요. 쓰시는 게 좋아요"
살짝 웃으며 말하는 팀장님. 마스크 포장을 뜯고 우선 손에 들었다. 그리고 입구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출입구가 어디지? 아, 여기인가 봐요."
한쪽에 'B홀 입구'라고 쓰인 표지를 발견하고 그리로 향했다. 그는 다른 쪽을 가리켰다.
"이쪽이에요. 메인 출입구는 지금은 닫혀 있을 거예요."
팀장님이 이끄는 곳은 건물 반대편 출구였다. '다시 나가는 건가?'. 의아해하며 앞선 그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곧 다른 광경을 마주했다.
그곳은 조용한 박람회장 로비와는 딴 세상이었다. '삑-삑' 하는 중장비 경고음이 들리고,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는 트럭과 장비들, 경광봉을 휘두르며 수신호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좋게 말하면 활기, 다소 부정적으로는 혼잡. 그래도 나름의 질서가 있는 바삐 돌아가는 현장 속으로, 우리는 들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고함치듯 묻는, 'STAFF'라고 쓰인 노란 조끼를 입은 현장 관리자에게 팀장님이 답했다.
"참가사예요. 공정 확인하려고 왔어요."
"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닌 듯 능숙하게 말하는 팀장님. 관리자는 한쪽 문을 가리키고는 곧바로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와, 설치 중인 전시장이 이런 분위기였네요."
문을 지나 만난 전시장 공간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큰 건설현장을 방불케 하는 전시장에는 이미 가건물 같은 구조물이 잔뜩 세워져 있었고, 이곳저곳에서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작업하는 인부들이 많이 있었다. 간혹 리프트카 같은 중장비도 눈에 띄었다.
"바닥 조심하세요."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은 크게 위험해 보이지 않았지만, 바닥에는 전선이며 자르고 남은 피복 같은 것들이 늘어져 있어서 피해 다니던 참이었다.
A4용지에 인쇄된 구조도를 보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팀장님은 멈춰 섰다.
"여기인가 봐요."
팀장님이 가리킨 곳에는 벽체가 세워진, 아직은 미완성인 구조물이 둘러싼 빈 공간이 있었다.
우리는 마치 아무도 없는 빈집을 들르듯 조심스럽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위는 여전히 다른 부스의 공사로 부산스러웠지만, 우리 부스는 아직 형태만 띄고 있었고 작업자들이 없어서 휑한 느낌이었다. 한쪽에 달린 작은 간판에는 '지온테크'라고 선명하게 우리 회사 이름이 쓰여 있어, 이곳이 우리 부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들 어디 갔나 봐요."
팀장님은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별로 볼 것도 없는데, 쓱 둘러보며 때때로 사진도 찍는 팀장님. 나도 그런 그의 뒤를 의미 없이 졸졸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우리 부스 작업자로 보이는 사람 둘이 나타났다. 그중 한 명이 우리를 흘깃 보고는, 한쪽에 쌓아둔 자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아트팩토리 대표님은 오늘 안 나오셨나요?"
"... 잘 모르겠는데요."
팀장의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한 인부는 바쁘다는 듯 몸을 돌려 멀어졌다.
작업하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팀장님이 말했다.
"대표님이 아니면 설계 담당자라도 현장에 나와서 감리를 해야 할 텐데... 연락 안 하고 오니..."
주위 소음에 끝 말이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다. "연락 안 하고 와보길 잘했네"였을까.
월요일에 시작하는 행사라서 그런지 다른 부스는 이미 설치가 끝나고, 업체 담당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와서 이런저런 작업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의류 업체인가는 마네킹 진열이 한창인 곳도 있었고, 아직은 모습을 알 수 없는, 나무 상자에 담긴 커다란 장치 같은 것들도 크레인에 실려 부스 안쪽으로 옮겨지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사람과 장비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복잡하면서도 묘하게 질서를 잡아가는 모습은 마치 도시 건설의 풍경과도 같았다. 늘 완성된 모습만 보던 내게는 다소 이질적인 장면이었다.
그리고, 왜 팀장님이 마스크를 쓰라고 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먼지가 좀 많기는 해도..., 진짜 현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마스크로 가려져 표정을 전부 알 수는 없었지만, 내 쪽을 바라보는 팀장님은 살짝 웃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주변의 소음을 뚫고 선명히 내 귀에 들어왔다.
팀장님은 어느 정도 공사가 끝난 다른 회사 부스들 사이사이로 걸어가며 이곳저곳을 짚어 내게 설명했다.
"아마 어제부터일 거예요. 매번 다른 테마의 박람회가 열리는 전시장에 부스가 만들어지는 시간은 단 이틀에 불과한데, 그전에 회사들은 목적에 따라 최대한 효과적으로 설명하려고 기획하거든요. 기획에는 뭐가 포함될까요?"
"부스를 예쁘게 보이도록 하는 디자인?"
"그것도 중요하지만, 사전 마케팅, 전시회 설계와 디자인, 전시회 운영, 사후 마케팅, 총 네 가지 과정 모두가 중요해요. 매니저님, 진정한 여행은 여행을 떠나기 전과 여행 중, 여행을 다녀온 후 모두라는 말 알아요?"
"네!"
'여행'이라는 말이 반가웠을까. 조금 과하게 반응한 것은, 팀장님이 하는 말의 의미를 곧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객의 여정 전부에 정성을 들이는 거죠. 아마 다음 전시회부터는 우리가 직접 그 일들을 해야 할 거예요. 이번에 짧은 시간에 파악한 게 전부지만, 우리 회사 전시회 준비 과정에서 부족한 것들이 눈에 띄네요."
'고객의 여정!'
어느 날 팀장님이 알려준 퍼널(funnel)에 대한 개념이 연결되었다. 제품과 동일하게, 사전에 알리고, 정성껏 준비하고, 맞이하고, 관심 있는 고객들과 관계를 맺고, 기회로 만드는 일들은, 좋은 여행이거나 즐거운 파티의 과정과도 같다고 팀장님은 설명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전시회 전날은, 사실 가장 치밀하고 활기차게 그 일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계속 무언가를 핸드폰에 기록하는 팀장님의 시선을 따라가며 전시회를 이루는 많은 물리적 요소들을 알아가는 기회이기도 했다. 팀장님의 노트가 그저 다른 좋은 것들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음을, 돌아오는 월요일에 알 수 있었다.
월요일 아침
"오늘은 영업팀 전원이 행사장에 나가 있으니 사무실이 한산하네요."
책상에 앉아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던 팀장님이 말했다.
"그러게요. 오늘 저희 회의는 없는 건가요?"
"영업팀하고 하는 주간회의는 취소됐어요. 그나저나 매니저님, 이거 한번 보시겠어요?"
팀장님은 내 쪽으로 모니터를 돌려 보여주었다. 기업 정보 조회 사이트의 검색 결과였다. 굵은 글씨로 '아트팩토리 주식회사'라고 쓰여 있었다.
"여기 저희 전시회 부스 설치업체 아닌가요?"
"맞아요, 매니저님. 이상한 게 눈에 띄지 않나요?"
스크롤을 천천히 내리던 팀장님은 어느 부분에 마우스 커서로 블록을 지정했다.
"사원 수 2명이네요. 그 회사 맞나요?"
"네, 대표이사 이름이 같아요"
팀장님은 전 주 회의 이후에 영업팀 매니저로부터 업체 대표 명함을 전달받아 확인했었다.
"그렇네요. 그렇게도 운영이 되나..."
"부스 디자인 업체는 소규모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요. 설계만 하고, 설치는 용역을 고용하는 게 일반적이에요. 그래도 2명은,... 아무튼 이 회사 설립일이 3년 전이네요. 직전 연도 신고된 매출도 적고,... 우리 회사가 전시회를 총 네 번 했고, 아직 견적을 다 보지는 않았지만, 우리 회사가 이 회사 매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아 보이네요."
팀장님은 머리를 갸우뚱하며 낮은 목소리로,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음, 대대행으로 대부분 운영하는 것 같은데..."
"대대행이요?"
"네, 전문적인 인력을 갖추지 않고 우리한테 프로젝트만 수주해서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거죠. 이쪽 업계에서 종종 하는 운영 방식이기는 해요. 영업 수주만 하고, 전부 다 하청으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면 여러 문제가 발생되죠."
"문제라면..."
잠시 말을 멈춘 팀장님은, 다시 모니터를 본인 쪽으로 돌리며 덧붙였다.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어요."
나는 그때는 그게 영업팀에게 꽤 불편한 주제의 대화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