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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폴라리스 Oct 17. 2016

노는 엄마가 좋은 엄마다

월간 폴라리스 '놀이를 찾아서'

글 송채경화  에디터 박은아  포토그래퍼 강봉형



며칠 전 남편과 사소한 일로 다투고 집을 나왔다. 싸우는 소리에 낮잠에서 깬 아이가 울었지만 ‘에라, 모르겠다’며 무작정 현관문을 나섰다. 시간을 보니 오후 4시. 집 앞을 배회하며 마음이 가라앉길 기다렸다. 그러나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감정이 폭발해 일단 남편과 함께 있는 자리를 피하고자 나왔지만 아이가 걱정됐다. 언젠가 들었던 육아 팟캐스트에 출연한 한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는 부부 싸움을 하고서도 집을 나갈 수 없는 존재잖아요. 남자들은 쉽게 나가버릴 수 있지만 엄마는 아이 때문에 못 그러죠.”  
난 나쁜 엄마일까. 죄책감이 들었지만 다시 집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왜 아빠는 되고 엄마는 안 되냐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이대로 들어가 억지로 웃으면서 아이의 눈을 들여다볼 자신이 없었다. 발길은 집 근처 영화관으로 향했다. 이 기회에 평소에 보고 싶었던 영화를 봐야지. 영화표를 끊고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당신 저녁 약속 시간 전까지 들어갈테니 그때까지는 아이를 책임져.’ 할 일이 많다는 남편의 답장이 왔지만 무시했다. 찜찜했던 마음은 영화가 시작되면서 사라졌다. 영화가 끝나자 마음이 많이 풀어져 있었다. 너무 사소한 일로 화를 냈나 싶어 눈치를 보며 들어갔더니 의외로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나를 맞았다. 남편과 교대를 하고 아이를 쳐다보니 그제야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우울하거나 내 마음의 동요와 관계없이 아이 곁에 24시간 붙어 있는 일은 일종의 고행이다. 장하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활동을 하는 동안 육아를 전담했던 그의 남편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독박육아를 이렇게 표현했다. “혼자 애를 보는 건 초처럼 자기를 태우는 것 같아요.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죠. 그런데 이런 점들이 남성들이 겪는 고충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각이 안 됐다는 게 이상한 일이죠.” 이 글을 보고 눈물이 날 뻔했다. 이런 이야기를 여성이 아닌 남성의 입으로 듣는다는 것이 카타르시스를 더욱 극대화해주는 것 같았다.



그나마 나는 독박육아로 영혼이 완전히 빠져나가기 직전, 남편과의 협상을 통해 나 자신을 구제할 수 있었다. 아이가 8개월이 됐을 무렵이었다. 온종일 혼자 아이를 돌보느라 마음이 말라 비틀어져 가고 있었다. 남편에게 이대로는 못 살겠으니 2주에 한 번 하루 종일 아이를 전담해달라고 말했다.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차용한 거였다. 남편은 의외로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8개월 만에 처음 맞게 된 ‘24시간 프리데이’의 감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상쾌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탔고, (정말 날아갈 것 같았다!) 전쟁 같았던 식사 시간에서 벗어나 여유롭고 고급스럽게 식사를 했다. 아이 옷이 아닌 내 옷을 사러 돌아다녔다. 책이 한 장 한 장 우악스럽게 찢기는 모습을 보지 않고서도 조용하게 독서를 할 수 있었으며, 오랜만에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 웃고 떠들며 술을 마셨다. 이 하루를 위해 2주 동안의 독박육아를 견뎌낼 수 있었다.
내 얘기를 들은 어떤 엄마들은 ‘24시간 프리데이’를 부러워하면서도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했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럴 땐 생각을 바꿔 아빠에게도 오롯이 아이를 들여다보고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생각해보자. 그래도 아이가 자꾸 생각나고 심심하기까지 해서 도대체 내가 뭐 때문에 나왔는지 모르겠다면? 그럴 땐 아이를 낳기 전에 뭘 하며 시간을 보낼 때 가장 행복했는지를 떠올리면 된다.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거나 운동을 하거나 흥미로운 강의를 들을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재미있게 놀자.
엄마의 놀이를 끝내고 아이에게 돌아가면, 아이가 훨씬 더 사랑스러워진다. 엄마들이 가끔씩 집을 나가는 것은 아이의 정서에도 나쁘지 않다. 레나타 살레츨의 책 <불안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라캉은 ‘아이에게 불안을 야기하는 것은 어머니의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어머니가 늘 곁에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 어머니가 늘 아이 곁에 있어 숨 막히게 하면 아이에게는 욕망이 발달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 노는 엄마가 좋은 엄마다!



송채경화  

결혼 안 한다고 큰소리치다가 서른넷에 결혼했다. 아이를 안 낳겠다고 떠들다가 결혼한 지 1년 만에 아이가 생겼다. ‘평생 자유롭게 살겠다’던 20대의 꿈은 잠시 접어두고 하루하루 모성애를 탐구하며 보내는 서른일곱 초보 엄마. 2008년 <한겨레>에 입사해 사회부, 정치부를 거쳐 <한겨레21> 정치팀에서 일하다 현재 육아휴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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