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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살이궁리소 Nov 16. 2017

동창생 부부의 '고향에 살어리랏다'

서울에서 대학생 되어 우연히 만나 결혼한 중학생 동창 부부의 귀향 이야기

같은 중학교를 다녔고 각각 반장도 맡았기 때문에 서로 본 적은 있지만 만난 일은 없이 지냈었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어 우연히 서울에서 만난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자식을 셋 낳아 키우며 어느새 서울 사람이 되어 살아온 시간이 4 반세기.

농장이름 뜬돌은 고향인 부석면의 순 우리말 표현에서 가져왔다 (서산시 부석면 가사리 전경)

하지만 10대의 추억과 공간의 기억을 고스란히 공유하고 있는 부부에게 고향은 의식적인 자각은 없지만 한시도 벗어나지 않고 도시에서의 삶에 영향을 주면서 언젠가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는 둘 간의 암묵적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남편의 제안에 아내는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것을 느꼈다. 중학교 당시 전교회장을 맡을 정도로 사교적이기는 하지만 무뚝뚝한 성격의 남편은 이후로 대학생이 되어 만났을 때도 그랬고 결혼 후 지금까지도 그렇다. 

다른 사람 말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라 농작물을 바라보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시골생활이 잘 맞을 거라 생각했어요. 도시라는 곳은 혼자서 꿋꿋하고 정직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니까요


남편이자 친구인 그가 가볍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던 아내는 남편의 귀향 제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막상 결정을 하고 나서 돌이켜 보니 고향을 떠나 치열하게 살아왔던 서울 생활이었다. 

부부의 농장은 현재 표고 수확이 한창이다

두 사람이 서로 알지만 모르는 사람처럼 겉돌던 사이로 지냈던 중학교 3년의 열 배나 되는 30여 년을 살아왔지만 서울이라는 도시는 두 부부에게 그저 겉도는 도시였다.

하지만 시골생활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막상 귀향을 결정하고 나고부터 고민도 많아졌다.

“나중에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2012년에 내린 자신들 부모의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해 줄 것인가?” 스스로에 질문에 무언가 답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 다가왔다.

이후로 부부는 무슨 농사를 지을 것인가 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때로는 의견 충돌 과정도 겪으면서 부부가 내린 결론은 ‘나답게 살자’이었다. 

경제적으로 다소 궁핍하고 육체적으로 힘들더라도 내 생각과 마음이 풍요로운 삶을 기대

편리하고 윤택했지만 겉돌고 있었던 서울 생활은 바쁘기만 했지 ‘나’를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사는 그런 삶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자칫 아이들도 그렇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시골에서 농부로 사는 삶은 어쩌면 4시간 일하고, 4시간 나보고, 4시간 가족 보고, 4시간 주변 보는 삶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방식을 바꿀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서해안의 해풍에 실려온 미네랄 풍부하고 식감이 좋다는 뜬돌표고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결론을 내리자 이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두려움도 적어졌다. 모든 것이 내가 결정하고 실행하면 되는 것이기에 다른 것들이 개입될 여지는 적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 ‘나답게’ 살아가는 방식은 찾았지만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경제적 소득이 필요하다. 고향 친구나 지인들을 보더라도 농업으로 소득을 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내가 가진 경제적 기반과 나이, 체력,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가장 적합한 작물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선택한 것이 정부에서 지원하는 2개월간의 합숙형 귀농 교육 프로그램

2012년 당시 귀농교육 수료식에서 조복상씨(좌)와 필자(우)

필자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흐릿한 기억 속에 그와의 마지막 모습은 단이 좀 짧은 바지에 졸업 가운을 입고 수료식 때 인사를 하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로부터 5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난 11일 농업인의 날에 우리 학생들과 서산으로 딸기농장 현장 견학을 갔는데 농장주가 무작정 우리 일행을 안내한 곳이 ‘뜬돌 표고 농원’

뜬돌 표고 농장 전경 대지 2450평, 하우스 면적 11동 700평 규모이다

현장에 도착하자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이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들 부부였다. 만나고 나서도 한참을 놀라움과 반가움이 교차했다.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곧바로 고향으로 귀농한 이들 부부는 표고농사를 하고 있었다. 특히 최소한의 냉난방 가동으로 혹한기나 혹서기에도 재배가 가능한 독창적인 하우스 시설을 궁리해낸 이들 부부는 11동의 재배사에서 연간 10~12톤을 무농약 재배 방식으로 연중 생산하는 어엿한 농부로 우뚝 서 있었다. 

창업초기부터 무농약을 고집하고 있다

무농약 표고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서해안 특유의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표고는 고유의 향과 함께 부드러운 식감이 뛰어나 단골 구매자가 많다. 점차 이들 부부가 키운 표고의 품질이 알려지면서 3년 전부터는 전량 직거래하거나 지역의 판매장에 내고 있다. 힘들어도 무농약을 고집한 그의 우직함에서 신뢰를 얻었고 서해안의 지역적 특성과 독창적 기술로 고품질을 이뤄낸 결과이다.

무농약이라서 천연조미료로 최근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표고농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모양이나 크기가 상품 규격에 달하지 못하지만 식감과 맛은 오히려 더 좋은 작은 표고와 미처 판매하지 못한 잉여량에 대한 고민이었다. 

작은 표고 통째로의 식감과 입안에서 새콤한 맛이 감도는 표고 장아찌는 이 집만의 자랑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표고 장아찌이다. 음식에 일가견이 있는 아내의 손맛과 고향 어르신들의 조언을 들어 간장 국물을 베이스로 한 무화학조미료 첨가의 무농약 표고 장아찌가 지금은 소비자 반응 폭발이다. 농산물 행사장이나 농장을 방문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식을 하면 온통 시선을 빼앗는다. 그리고 슬라이스 건표고와 표고 분말로도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주 생산품인 생표고(좌)와 표고가루 및 건조표고

한편 부부가 도시를 떠나올 때 기준으로 삼았던 삶을 이루고 있는지 궁금해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농촌생활은 결코 하루 4시간만 일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오히려 도시생활보다 더 바쁜 날들의 연속이다. 365일 쉬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고 버섯이 한 창 나올 때는 밤낮이 없을 정도로 일해야 한다. 하지만 16시간을 표고 앞에 서 있더라도 표고를 바라보며 나를 보고 가족과 함께 일하고 고향의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졸업 후 농업을 목표로 하는 농대생들에게도 울림이 큰 방문이었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지만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시골살이는 왜 시골에 가서 살겠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이유 찾기’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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