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연이 Aug 20. 2017

체코라는 이름의 동화

프라하의 봄

제대로 된 뜻도 모른 채 '봄'이라는 단어가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체코는 내게 낭만이었다. 보통 여행을 떠나기 전 기대를 가득 품게 되면 막상 도착했을 때 실망하기 마련인데 체코는 예외였다. 체코는 내 상상보다 훨씬 낭만적인, 동화 그 자체였다. 




아직도 프라하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도시 곳곳에 내가 사랑하는 파스텔톤 페인트가 묻어있었다. 사실 묻어있다고 하기보다 하늘에서 파스텔톤 물감을 부어버린 것이 더 가깝겠다. 




날씨는 또 얼마나 맑은지. 빛의 자비를 마음껏 누리며 도시를 거닐었다. 유럽은 그 점이 좋았다. 과거가 현재가 적당히 공존하고 있다는 점. 건물들은 하나같이 세월의 때를 간직하고 있었지만 전혀 촌스럽지 않았다. 길에 깔려있는 전차는 도시에 고풍스러움을 한껏 더했다. 속도도 느리고, 노선 읽기도 불편했지만 중세 시대로 돌아가는 타임머신같았던 전차가 참 좋았다. 문득 이 곳은 100년 전 오늘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았겠구나 생각했다. 이 생각은 유럽여행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부럽고 아쉬웠다. 




프라하는 큰 도시는 아니었다. 이 역시 유럽 여행을 다니며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나라만큼 수도가 큰 나라는 거의 없다. 서울은 지하철 노선도조차 열 손가락으로도 다 세지 못할 정도인데 프라하에서 웬만한 관광지는 다 걸어다닐 만 했다. 지하철을 타긴 했지만 열 정거장을 넘긴 적이 없다. 시계탑 아래에서 내려다보는 올드타운 시가지. 웅장한 멋은 아닐지라도 프라하의 색이 멀리까지 가득했다. 울릉도의 바다 아니면 고층 건물 가득한 서울 도심. 이렇게 극단적인 모습을 지닌 곳에 익숙했던 내게는 분명 생경한 전망이었다. 지평선을 가리지 않는 아기자기한 건물들과 그 너머 탁 트인 하늘이 함께 있는 풍경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특별할 것이 없어 더 특별한 순간이었다. 




시계탑에서 내려와 울퉁불퉁한 길을 걸으며 프라하의 핫플레이스인 까를교로 향했다. 경복궁을 걸을 때마다 옛 임금들이 걸었던 그 땅을 걷고 있다는 느낌에 오묘한 기분이 드는데, 유럽에선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밟는 돌길을 걸을 때에도 그 오묘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무심한 시멘트길과는 확연히 다른, 표면이 조금 깎였을지언정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냈다는 강인함이 느껴지는 길이었다.




그렇게 길을 걷다 다다른 끝에는 국가의 허가를 거친 공연 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악기의 우아한 선율이 여행객들의 추억에 배경음악이 되어주었다. 동화보다 더 동화같은 순간이었다. 빛을 가리는 높은 건물이 없어 해질녘의 따듯한 빛이 사방에 가득했다. 사람들의 얼굴도, 카를교 밑으로 흐르는 블바타 강도, 음악과 흐르는 시간도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이건 분명 출처를 알 수 없는 선물이었다.




해가 진 후의 프라하는 더 로맨틱했다. 길거리 가로등의 주황빛이 반들반들한 돌길 위로 반사되어 밤이 차갑지 않았다. 길에 퍼진 빛의 산란 때문에 꼭 물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프라하의 야경을 한껏 품고 비앤비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체코 대표 맥주인 코젤 흑맥주를 한가득 사갔다. 오전에 한인마트에 들려 산 라면도 끓였다. 식탁에 올려져있는 건 냄비 가득한 오징어짬뽕 3개와 코젤 흑맥주 뿐인데 그 맛이 3년이 지난 지금도 입에 맴돌 정도로 기가 막혔다. 뭐라고 명명할 수도 없다. 그건 프라하의 맛이었다. 




프라하에서 버스로 3시간 거리인 체스키 크롬로프도 들렀다. 분명 체코 사이트에서 예매한 버스였는데 탑승객 90%는 한국인이었다. 블로그의 힘이겠지. 우리 민족의 정보력은 정말 대단하다. 세계지도에서 우리 땅의 크기가, 대한민국의 인구 수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유명한 곳에는 언제나 한국인이 있었다. 물론 지구 반 바퀴나 돌아온 그래서 낯선 설렘이 가득한 이 곳에서 한국인 그득한 버스 안에 있다는 사실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여기가 지리산 관광가는 버스 안인지, 체스키 크롬로프를 가는 버스 안인지 내부만 봐서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버스에서 내린 직후 본 모습은 블로그에서 본 것과는 너무 달랐다. 팅커벨이라도 나올 것 같았던 요정같은 도시였는데, 웬걸 하늘에는 먹구름이 그득했다. 허탈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밥도 못챙겨먹은 채 버스에 올라타 허기가 졌다. 날씨고 뭐고 밥부터 먹자는 심경으로 레스토랑을 찾다가 트립어드바이저에서 평점이 높은 곳을 발견했다.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그 레스토랑은 꽤나 오랜 역사를 간직한 듯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한국인이 있었다. 한국말을 듣기 전부터 그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등산복을 입고 계셨기 때문이다. 단체로 동유럽 관광을 오신 어머님 아버님들은 마치 오래 알고지낸 친구의 부모님처럼 그 분들은 우리의 신상을 거침없이 물어오셨다. 나이는 몇이냐, 어느 지역에서 왔냐, 학교는 어디냐.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무의미한 시간을 폭풍같은 질문으로 가득 채워주신 덕분에 기다림이 지루하진 않았다. 요리는 환상이었다. 음식 사진은 잘 찍지 않는데 지금 생각하니 조금 아쉽다. 한국에서는 다들 먹기 힘든 요리들이라 그 때 그 맛을 다시 떠올릴 기회가 많지 않은데. 이제 음식도 사진으로 잘 남겨 두어야겠단 다짐을 한다.





식당을 나서니 먹구름이 눈치껏 자리를 이동했다. 내가 사랑하는 푸른 하늘이 밥은 잘먹었냐며 챙겨주는 든든한 남자친구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배도 채웠고, 하늘도 푸른색으로 채워졌겠다 여행을 재개했다. 후식으로 체코 전통 빵인 뜨레들로를 뜯어먹으면서, '이거 한국 가져가서 아이스크림이랑 같이 홍대 이런데서 팔면 장사 진짜 잘되겠다' 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골목골목을 누볐다. 한 30분쯤 걸었을까 울퉁불퉁한 돌길에 지친 발목을 달래려 그늘 아래 우거진 잔디밭에 벌러덩 누웠다. 나는 잔디밭에 눕는걸 좋아한다. 돌아보면 피곤할 수 밖에 없는 일정이었다. 일정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짜기 위해 새벽 버스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밤맥주의 낭만은 우리에게 빼놓을 수 없는 필수요소이므로 포기할 것은 잠 뿐이었다. 우리는 그 잔디 밭에서 조금 쉬다가 다시 프라하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참이었다. 그 무렵, 사람들은 우리를 거쳐 자꾸만 길 위를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위에 뭐가 있길래 이 땡볕에 저 오르막을 올라가는걸까 궁금했던 나는 계속 쉬겠다는 친구 둘을 남겨두고 오르막 족에 합류했다.




올라올만 했다. 꼭대기에 도착해 이 풍경을 보고 있으니 애들을 불러와야겠단 생각이 번뜩 들었다. 다시 내려가서 '니네 이거 안보고 가면 진짜 후회한다' 협박해 귀찮음에 몸부림치던 친구들을 데려왔다. 오르막의 끝에 후회는 없었다. 블로그에서 보던 그 요정같은 동네가 눈 앞에 펼쳐져있었다. 성냥갑같은 조그마한 집들이 주황색 꼬깔 지붕을 머리에 이고 강가에 올망졸망 모여있는 모습이라니. 마지막까지 예쁜 모습을 눈에 담게 해준 고마운 체코였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도시를 뒤로 하고 이제 헝가리로 떠날 차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