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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모 Dec 26. 2016

헬싱키행 티켓

하얀 산책 #01

Finn Air 탑승을 기다리며

다시 떠나는 날의 아침.

좌석 팔걸이로부터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미세하지만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한 기분 좋은 떨림.


한 달 동안 북유럽의 여러 도시와 자연을 만나는 것이 목표였다. 길게 떠나는 여행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준비 없이 이렇게 대충 떠나도 되는 걸까.'

다가올 앞으로의 여정이 기대되는 한편 걱정이 앞섰다. 괜스레 좌석 앞 주머니에 찔러두었던 탑승권을 다시 꺼내 들었다. 불안한 시선으로 좌석 번호와 도착시간을 확인하는 사이에 출발을 알리는 낯선 핀란드어 방송이 들려왔다.


기내는 쾌적하고 시원했지만 창 밖의 풍경은 난폭한 여름 그 자체였다. 8월의 햇살이 만든 후끈한 열기가 활주로 위에 어지럽게 피올랐다. 그 뜨거운 대지 위로 동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겨두고 떠나는 미련처럼 창 밖의 풍들은 뒤 편으로 서서히 멀어져 갔다.


엔진이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손을 더듬어 무의식적으로 안전벨트를 찾았다. 손에 와 닿는 금속의 차가운 느낌이 싫지 않았다. 항공유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비로소 또 하나의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 실감 났다.


인천에서 헬싱키까지의 거리는 7400km. 낯선 땅 위에 다시 내려앉기 위해 항공기는 쉼 없이 10시간을 날아가 했다. 소모되는 귀한 자원과 수많은 이들의 수고로움 덕분에 다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치러야 하는 대가에 걸맞은 의미 있는 여행이기를.



날아오르기 위해 흔들리는 동체처럼 내 마음도 떨렸다. 긴장된 눈썹을 문지르며 담요 속에 몸을 숨겼다. 길고 짧은 여러 번의 여행을 했었지만, 새로운 출발은 언제나 적당한 양의 설렘과 두려움이 동반된다.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웠다.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여행이라서.



3rd. Aug. 2016.

From Incheon

To Helsin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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