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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이 최신 아이폰을 쓰는 이유

정말 모방하기 힘든 것이 있습니다

by 현실컨설턴트

"저거 보여?"

선배의 손끝이 가르치는 곳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거기에는 지하철의 표지판이 있었어요. 어떻게 봐도 특별할 것 없는 '잠실나루'라 적힌 평범한.

"그냥 표지판 아니에요?"

"보기에 따라…"

뭔가 찾아보라 재촉하는 정적이 잠시 흘렀습니다. 그리고 선배는 이렇게 덧붙였어요. ‘드디어 읽는 사람이 발음하는 대로, 들리는 대로 표기가 되었다’고. 그러고는 영문 표기를 자세히 보라고 했습니다.

'Jamsillaru'.

"뭐가 이상한데요?"

" 'n'이 'l'로 바뀌었잖아.“

외국인의 입장에서 만든 잠실나루의 영어표기

그제야 보였습니다. 'Jamsilnaru'가 아니라 'Jamsillaru'이더군요. 얼마 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중음악 편집하는 이야기였어요. 좋은 소리를 만들려면 좋은 장비가 필요하잖아요. 악기도 스피커도 엄청 비싸고 좋은 걸 사용합니다. 그런데 그 비싼 장비들로 가득한 편집실에서 숨소리, 미세한 소리 한 자락까지 신경 쓰며 편집을 마치고 최종 테스트를 할 때에는 흔히 구할 수 있는 싸구려 스피커로 들어본다는 거예요. 싸구려 스피커로 들어도 좋은 음악이어야 진짜 좋은 음악이라는 거죠. 원음을 생생히 재현하는 고음질이 아니라 대중이 듣는 저음질이 진짜라는 겁니다. 우리가 평소 대중음악을 접하는 환경이 음악 감상에 최적화된 건 아니잖아요. 노트북 스피커로 듣거나 스마트폰 스피커로 듣고 스마트폰 패키지에 들어 있는 번들 이어폰으로 듣고, 카페나 술집에서 웅성웅성하는 소음 사이로 듣죠. 프로그래머로 처음 회사라는 곳에 들어왔을 때, 한 선배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프로그래머는 가장 저사양의 컴퓨터를 사용해야 한다.’

그때는 썩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 시절만 해도 신형 컴퓨터가 나오면 팀장부터 바꾸고 줄줄이 내리 사랑하던 시절이었거든요. 아마도 후배에게 가장 나쁜 컴퓨터를 주는 게 미안해서 그런 말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의미는 아주 짜릿합니다. 그 시절만 해도 좋은 사양의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돌려 조회하는 시간과 저사양의 컴퓨터로 조회하는 시간에 차이가 꽤 있었거든요. 그렇다 보니 고사양의 컴퓨터로 테스트할 때 속도가 나쁘지 않았는데 현업에서 느리다고 아우성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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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투구하지 않는 직장 생활과 글쓰기를 지향합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삶은 고행입니다. 즐겁게 컨설팅하고 기쁘게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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