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와 엑스레이
어느 비누공장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비누를 포장하는 기계가 가끔 오작동으로 비누가 들어있지 않은 빈 케이스가 출하되는 일이 종종 발생했습니다. 경영진은 이 문제를 외부 컨설턴트에게 의뢰했죠. 컨설턴트들은 사무실을 잡고 현장 라인을 둘러본 다음, 여러 가지 해결책과 리스크를 나열해 최종 해결책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들이 권고한 방법은 엑스레이 투시기를 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엑스레이로 빈 비누 케이스를 골라내는 거죠. 문제는 돈인데 컨설팅 비용 1억이 이미 발생했고, 엑스레이 투시기 구매에 6억, 인건비 7천 만원이 추가로 발생하게 생겼습니다. 경영진은 이 방안을 도입할지 말지, 도입한다면 비용을 줄일 수는 없는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현장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연락이 옵니다. 바로 현장으로 달려간 경영진은 그만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갓 들어온 신입사원이었고, 그는 집에서 선풍기를 가져와 포장 기계에서 나오는 빈 케이스를 날려버리고 있었습니다. 선풍기는 5만원짜리였죠.
우리는 종종 유행을 따르다가 본질을 놓치는 실수를 하곤 합니다. 아마도 컨설턴트들은 비누 케이스 속이 비어있는 것을 확인하는 일에 꽂혀서 그 주위를 빙빙 맴돌았을 겁니다. 그래서 엑스레이 투시기가 필요했겠죠. 반면, 신입사원은 '빈 케이스를 제거하는 것'이 본질이라 생각했습니다. 비누 케이스 속이 비어있다는 것을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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