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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꾸까까 Oct 08. 2024

[파리] 은은한 똥내, 귀여운 쥐

2024년 9월 18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가 매력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고르시오.


① 원래 고생한 여행이 더 기억에 남아. 미화된 기억이지.

② 극불 천지인데도 극호 천지여서 이상하게 자꾸 미련이 남는 그런 느낌?

③ 여행지가 어디였든 무슨 상관이야. 혼자한 여행 그 자체가 좋았던거지.



이것은 와인, 빵, 패션에 소비하지 않는 자의 파리 여행기


이것은 순간을 기억하는 방법이 사진이라기엔 수 천장의 사진이 저장된 작은 기계를 들고다니는 세상이 와 버려서, 회사에서 타자 수 이벤트를 할 때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느린, 멋진 단어 하나 기억해 내지 못하는 이과생의 단순하고 고집스런 일기에 대한 집착


이것은.. 가끔 찾아와 작가의 서랍을 뒤지며 그 때의 나를 계속 찾아가는 그 때의 나. 


Galeries Lafayette Haussmann



여행 준비를 위한 메모장을 보니 개탄스럽다.


완벽주의적 성향이라고 표현하던 장점이자 단점은 나이가 들수록 겁이 많아진 스스로를 표현하는 말이었다. 떠나기 직전까지 집착스럽게 찾아보고, 정리하고, 체크하던 나는 대비할 수 없는 미래가 두려웠을 뿐이다.



Etoile



여행 전날 스티븐에게 쓴 편지에 내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내가 혼자 여행을 떠나야 하는지. 그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보다 마음을 스스로 깨우쳐 급히 내려간 일기에 가까웠다.


올 해 얕고 가쁜 숨을 쉬는 나를 너무 자주 발견했다. 안타까웠고, 무서워도 미룰 수가 없었다. 새벽까지 폰을 부여잡고 무료 취소가 되는 숙소를 예약했지만 몇 일새 40만원이 올라버린 비행기를 구매할 용기조차 없었다. 갑자기 현금 50만원을 꺼내 들고와 손에 쥐여준 스티븐. 결국 비행기표를 구매한 그 순간 눈물샘이 터졌다.



Musee d'Orsay



매일 저녁 써내려간 일기에서 한 줄씩 가져오기


따스한 햇살 처럼 밝은 노란색을 사랑했던 반 고흐. 그림을 보자마자 뭔가 눈물이 났다.

연기(緣起)의 실타래. 노틀담으로 이어진 고등학교, 대학교, 20대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

파리 사람들 진짜 지멋대로 산다. 난 여기서 자전거는 못타겠다. 왜 다들 말랐는지 알겠다.

미리 맞이한 가을과 마음이 동했던 모나리자. 비가 내리면 더 아름다운 도시.

솔직히 엄청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 인생에 숙제처럼 남겨놨던 여행지를 왔고, 또 편지에 쓴 것 처럼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이서서 너무나 만족스럽다.


결국 다시 돌아온 인생의 한 문장

Je suis moi et je suis bien (Virginia Satir)







p.s. 그래서 은은한 똥내, 귀여운 쥐가 뭐냐면..


관광객으로 가득찬 루브르는 은은한 똥내 미스트로 채워진 듯 했다. 생미셸 성당의 화장실에서 충격과 공포를 맛보고 루브르로 왔지만 쉽지 않았다. 오르쉐에서 4시간을 내리 빠져있다 나온것에 비해 루브르에선 2시간을 겨우 있었다. 다음 날 유럽문화유산의날 기념 파리 시청사 내부를 방문. 지들(?) 실제로 쓰는 공간은 어마어마하게 화려하고 잘 꾸며놨더라.

Hotel de Ville

파리에서 (톰앤)제리를 세 번 만났다. 한 번은 아직 펜스가 쳐진 에펠탑 앞 광장을 헤매다 발견한 돌아가신 크고 징그러운 제리. 한 번은 에펠탑 앞 잔디밭에 누워 데이트를 하는 사랑스런 커플 뒤를 쪼르르 지나가는 귀여운 제리. 마지막은 식당 야외에 앉아 와인을 마시다 발견한 테이블 사이를 요리조리 지나가던 귀여운 제리.

Tour Eiffel



by 꾸꾸까까세계여행. 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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