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없는 새
https://www.youtube.com/watch?v=ClmJZASeG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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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없는 새라고 아세요?”
바 주인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네? 발 없는 새요?"
"네, 영화 아비정전에 나오는...”
”아! 그 발 없는 새.”
그제야 바 주인은 생각났다는 듯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발 없는 새... 발이 없어서 내려앉지 못하고 쉬지 않고 날아야만 하는 운명이라니... 참 슬프고 아름다운 이미지에요. 뭐랄까. 애처롭달까."
"맞아요. 제 삶이 그 새와 같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오해는 말아주세요. 제가 장국영은 아니거든요.”
바 주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웃는 걸 보니 마음이 풀어졌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몇 년 전, 한 친구가 저더러 '아비정전'의 아비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별 의미 없이 들었는데, 얼마 전 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어요.”
"어떤 점에서...?” 바 주인이 물었다.
나는 잠시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아마도... 제가 늘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모습이 아비와 비슷했나 봐요. 사랑을 찾아, 의미를 찾아, 끊임없이 방황하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바 주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영화 속 아비에게 '1분'이 있다면, 손님에게 1분은 무엇인가요?”
"제게 '1분'이라... 그건 아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찰나의 순간들일 거예요. 첫 키스의 떨림, 손을 처음 잡았을 때의 설렘, 아니면 그저 서로 바라보며 웃었던 순간... 그 짧은 순간들이 영원처럼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1분'은 바로 이 순간일지도 모르겠어요. 인생의 전환점에서, 낯선 바에 앉아 제 삶을 돌아보고 있는 이 시간...”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예쁜 여자를 보고 용기내서 다가가는 그 짧은 순간도 제겐 '1분'이었어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그 긴장감이 영원할 것 같았거든요.”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밤은 깊어갔다. 우리의 이야기는 사랑, 상처, 그리고 삶의 의미를 향해 흘러갔다. 바의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각자의 인생을 돌아보고 있었다.
나는 잔을 들어 한참을 바라보다 마시지 않고 내려놓았다. 대신 바 주인에게 담배를 피워도 되는지 눈짓으로 물었고,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나는 말을 이어갔다.
“저한테는 새장이 없었어요. 중학교 때 가정이 붕괴된 이후 평생을 떠돌아다녔죠. 그러다 늦은 나이에 군대를 전역하고 연남동에서 살았어요.”
바 주인의 눈이 반짝였다.
"아, 연남동이요? 저도 그 동네 참 좋아해요. 요즘은 많이 바뀌었지만, 예전의 분위기는 정말 특별했죠.”
"맞아요. 제게는 처음으로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었죠.”
나는 향수에 젖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 주인은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침묵했다가 말을 이어갔다.
“2000년대의 연남동엔 영화인들이 많았어요. 오래되고 맛있는 중국집들도 많았고... 그립네요. 문화와 예술, 그리고 술을 사랑하는 예술가들의 낙원 같았죠.”
"사장님도 연남동에 살아보셨나요?”
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 주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는 잠시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살진 않았지만 자주 갔었죠. 저도 한 때는 예술의 꿈을 품고 있었으니까요.“
"아, 그러셨군요. 어떤 예술을 하셨어요?"
내 목소리에 궁금증이 묻어났다.
"음악이었어요. 재즈 피아니스트였죠."
그녀의 눈에 옛 추억이 어렸다.
"하지만 인생이란... 늘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바 주인이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요즘 손님처럼 젊은 분들은 보통 어디서 서로 만나요?"
"?"
"데이트랄까 뭐 그런거.”
나는 부끄러운 듯 대답했다.
"사장님, 혹시 틴더라는 앱 알아요? 데이팅 앱인데...”
바 주인은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틴더? 틴더요? 들어본 적은 있는 거 같은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쓴다면서요?”
"네, 맞아요. 틴더로 여자들을 많이 만났죠."
바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처럼...사랑을 찾아 헤매던 시절이었어요.”
연남동에서 틴더를 처음 시작했을 때가 떠올랐다.
이십 대 후반, 작가이자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던 나는 또래 여자들에게 꽤 매력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경계인 같았다. 서울에 제대로 된 집 한 칸 없고, 사회가 정한 틀에 맞지 않는 직업을 가진 우리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떠돌고 있었다.
그때의 연남동은 우리 같은 경계인들의 안식처였다. 골목을 걷다 보면 작은 출판사와 영화사들이 눈에 띄었고, 카페 구석에선 항상 노트북을 펼친 프리랜서들의 모습이 보였다. 바에 들어서면 예술에 대한 진지한 대화와 웃음소리가 뒤섞여 흘러나왔다. 마치 19세기 말 파리의 몽마르트르처럼, 연남동은 꿈을 품은 방랑자들의 아지트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꿈을 나누며 살아갔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정한 삶 속에서 역삼각형 모양의 불완전한 사랑만을 나누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경계에 선 자들의 사랑은, 그 경계만큼이나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웠으니까.
신기하게도 나를 사랑해 줬던 이들은 비슷한 모습을 지녔다. 그녀들에게선 공통적으로 겨울 냄새가 났고, 충만한 보름달보다는 서글픈 초승달을 닮았다. 미소 짓는 얼굴에서 묘한 결핍이 느껴졌다. 그렇게 상처 입은 짐승들은 서로의 피 냄새를 맡았고 잠시나마 새 둥지를 그렸다.
사랑이 뭔지도 몰랐던 그런 결핍 있는 존재들은 서로의 각진 모서리끼리 부딪혔기 때문에 결국 둥근 원형을 만들 수 없었다. 내가 상대를 좋아하면 상대는 나를 좋아하지 않고, 상대가 나를 좋아하면 나는 상대를 떠났다. 안타깝게도 서로 비슷한 깊이의 사랑을 나눈 적은 지금껏 없었다.
“연남동과 틴더라..."
바 주인은 내 표정을 살펴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누군가를 쉽게 만나고 헤어지면 허무하지 않아요? 뭔가 잃어버릴 거 같기도 하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위스키 잔을 천천히 돌리며 말을 이었다.
"잃어버렸다기보다는... 조각난 것 같아요. 매 만남마다 나의 일부를 주고, 그들의 일부를 가져왔죠. 하지만 그 조각들이 제대로 맞지 않았어요. 결국 남은 건 이질적인 파편들뿐이었죠.”
느닷 없이 입 안이 깔깔해졌다. 마른 침을 넘기며 나는 잔을 들어 위스키를 한 잔 마셨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뭔가를 배웠어요. 사랑이 뭔지, 내가 누구인지... 아직 명확한 답은 없지만, 적어도 질문은 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바 주인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게 내가 찾던 '나'였을지도 모르겠어요. 사랑에 대해 질문할 줄 아는 사람."
바 주인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요. 사랑이란 게 늘 밝고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잖아요. 때론 달빛 아래 드리운 그늘처럼 어둡고 쓸쓸하기도 하죠."
그녀의 눈빛이 깊어지더니 오래된 추억을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손님의 경험... 그게 바로 사랑의 이면 아닐까요? 화려한 순간 뒤에 숨은 아픔과 그리움, 허무함까지. 그 모든 걸 겪으셨으니, 이제는 그 감정을 노래할 수 있을 거에요.”
그녀는 잠시 미소 짓더니 덧붙였다.
"개인적으로 궁금해요. 손님이 경험한 사랑의 그림자 속 이야기들을요. 괜찮다면 들려주시겠어요? 대신 술은 제가 살게요.”
우리는 함께 담배를 피웠다.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천천히 공중으로 흩어졌다. 내가 뿌린 크리드 어벤투스 향이 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지는 대신에, 나와 바 주인의 대화는 점점 더 깊어지기 시작했다. 바 중앙의 오래된 시계가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는 깊은 밤, 서로의 이야기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반짝 반짝 빛나는 당신의 눈
불꽃은 내게 떨어질 거에요
반짝 반짝 빛나는 당신의 눈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들어주지 않겠어요?
빛나는 당신의 눈을 위해
반작 반짝 빛나는 눈은
영원히 나의 것이 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