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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Oct 31. 2024

You're All I want

오늘 밤 만큼은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원하는 거 다 해 줄게요

https://www.youtube.com/watch?v=BZ6D9SEvBHs



출처: 낸 골딘 

추천 위스키: Macallan 12y 


나는 술을 한 모금 마시다가, 문득 바 뒤편에 걸려 있는 사진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 낸 골딘 사진이네요?" 


나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사진 속 남자는 담배를 피우며 등을 돌리고, 여자는 침대에 누운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침묵과 담배 연기가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저걸 보니 생각나네요...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에서, 제가 저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어요.”    

 

바 주인은 천천히 위스키를 따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인가요?” 


그녀는 내 이야기가 이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섹스 후에 항상 담배를 피우던 친구가 있었어요...”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그녀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항상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반라의 상태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금발이 어깨 너머로 흘러내렸고, 은은한 불빛 아래에서 그녀의 곡선은 더욱 부드럽고 유려하게 빛났다. 강렬한 청색 눈은 깊은 바다를 응시하는 듯했고, 그녀의 하얀 피부 위로는 엉덩이에서 목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장미 문신이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장미는 가시가 돋친 줄기와 함께 피어 있었지만, 화려하게 만개하지 않은 모습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뒷모습은 섹시하면서도 동시에 슬픈 기운이 감돌았다.     


"둘이 어떻게 만났나요?" 

바 주인이 물었다.     

“틴더에서 만났죠. 사실 이 친구는 10년 넘게 사귀던 남자가 있었는데, 헤어졌나봐요. 지지부진 했겠죠. 뭐 대부분 그렇게 어플을 시작해요.”      

“그런데 틴더는 어떻게 사용하는 거에요?”

 

바 주인이 궁금한 듯 물었다.      


"간단해요. 마음에 들면 오른쪽으로, 마음에 안 들면 왼쪽으로 스와이프해요. 그리고 둘 다 마음에 들면 매칭이 되는 거죠. 아주 직관적이죠." 


나는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그날도 평소처럼 스와이프를 반복하다 그녀와 매칭이 됐어요. 별 기대 없이 메시지를 보냈죠.”     

"그래서? 만났어요?"

"둘이 처음 만났을 때는 동네 호프집에서였어요. 그날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는데 큰 노력은 필요 없었어요.  2주 정도 같이 있었죠."     

"짧지만... 긴 시간이었겠네요." 

"그런 셈이죠."


우리는 삶의 작은 순간을 함께 나누었다. 함께 요리를 하고, 마음이 닿지 않는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가끔은 침실에서 가볍게 연애를 나누었다. 그러나 그 섹스는 감정의 수평선을 넘지 않았다. 내 마음의 문을 완전히 열지 않았고, 그녀 역시 나에게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섹스에 대해 말하자면, 그저 피부만 닿는 것으로 충분했다. 우리는 키스를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마치 우리가 무언가를 찾는 것이 아닌, 단지 서로를 채우기 위해 만난 것 같았다.      


"두 분 다 서로에게 진심을 열지 않았던 거 아닐까요? 그 친구도 손님의 경계선을 느꼈던 것 같아요."   


바 주인이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맞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둘 다 진심으로 다가가지 않았어요. 그냥 서로를 채우려 했지만, 정작 무엇을 찾고 있는지는 몰랐던 거죠."     


어느 날 그녀는 파스텔 톤의 알록달록한 중고 LP판을 편지와 함께 깜짝 선물을 줬다.    

 

당시, 나의 집은 회색 벽지와 낡은 바닥, 그리고 끊임없이 피워댄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 그런 이유로 집 안은 마치 나의 마음처럼 무채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그 안에선 삶의 활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나의 일상에 색을 더해주고 싶어했던 것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편지 속에서 울렸다. 

"당신의 회색빛 일상에 이 알록달록한 LP로 새로운 색채를 더해주길 바라요."     


바 주인은 내 표정을 살피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여자분이 손님에게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한 것 같은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때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어요. 아니 알고 싶지 않았어요. 회피했죠.”     



봉골레 파스타를 해먹던 마지막 밤, 그녀는 수동적이었던 평소와 달리 잠자리에서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오늘 밤만큼은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원하는 거 있어요? 입이라던가, 항문이라던가?" 


그 순간, 그녀의 담담한 표정과 어딘가 쓸쓸한 눈빛이 교차했다.     


"아니. 난 없어. 딱히 원하는 성적 취향은 없어. 그런 거 안 해줘도 돼."

     

나는 그녀의 마지막 말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순간에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며칠 후 나는 영화제 때문에 홍콩을 가게 됐고 그동안 그녀와 나는 서로의 안부를 묻지 않은 채 무표정하게 지내고 있었다. 마치 우리의 만남이 곧 끝나리라는 것을 예감하듯이, 서로의 인스타그램을 차단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소통 수단이 되어 버렸다. 우리 사이에는 차가운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때 어떤 기분이셨어요?" 바 주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별 생각 없었어요.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허전함이 느껴졌죠.”     

 

나는 불쑥 궁금해졌다. 

"사장님. 정말 궁금한 게, 이 친구는 왜 저에게 연락을 안 했을까요?”     


바 주인은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말했다. 


"이럴 때는 직관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타로 카드 한 번 볼까요?"    


나는 놀라며 물었다. "사장님, 이런 것도 하세요?"     

바 주인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가끔이요.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관점을 얻는 데 도움이 되곤 해요."     

바 주인은 조용히 타로 카드 상자를 열어 천천히 카드를 꺼내 섞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놀림은 유려했고, 그 속에서 나는 약간의 긴장감을 느꼈다.     


"자, 그녀를 떠올리면서 카드 세 장을 뽑아보세요,"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뻗어 카드 세 장을 뽑았다.     


‘에이스컵, 파이브 컵, 나인 소드.’    


"첫 번째 카드는... 에이스컵이네요." 

바 주인이 카드를 살피며 말했다. 

"새로운 감정의 시작을 상징하죠. 그녀가 손님에게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LP와 편지가 그랬던 걸지도.“     

바 주인은 두 번째 카드를 뒤집었다. 

"파이브컵. 실망과 상실을 나타내요. 그녀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마지막 카드가 뒤집혔다. 

"나인소드, 내면의 고통과 불안을 의미하네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보낸 마지막 편지와 그날 밤의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야 모든 것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바 주인은 나를 조용히 바라보며 카드를 덮고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가 손님에게 마음을 열었을 때, 손님은 그걸 외면했네요.”     

나는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마신 뒤, 천천히 내뱉으며 말했다. 

"그래요? 사실, 내가 홍콩에 출장 간 사이에 그녀가 아마 전 남자친구랑 다시 만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 관계는 그저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을 뿐이라고..."     

바 주인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내 말을 가로막았다.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뭐가 아니에요?“     

"그녀는 손님을 진심으로 좋아한 것 같은데요? 손님이 눈치채지 못한 건 그녀가 한 말의 의미였죠. '오늘 밤만큼은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요'라는 말은 단지 육체적 관계를 의미한 게 아니었어요. 그녀는 손님과 더 깊은 관계를 원했던 거예요.”     

나는 바 주인의 말을 듣고 얼떨떨해졌다. 

"정말요? 난 그저 일시적인 탈출구였다고 생각했는데...”    

 바 주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손님은 그녀에게 탈출구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원했던 대상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손님이 그 신호를 놓친 거죠.”     


나는 조용히 담배를 내렸다. 그동안 내가 오해하고 있던 사실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랬구나... 난 전혀 몰랐어요. 그저 그녀가 나와의 관계를 끝낼 준비를 하고 있었던 줄로만 알았죠.”    

 

바 주인은 나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때론 우리가 스쳐지나가는 순간들이 더 깊은 의미를 가질 때도 있어요. 그게 사랑의 복잡한 부분이죠.”     


나는 다시 잔을 들어 한 모금을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진심이었다면, 내가 무심코 넘긴 그 순간들이 우리 둘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의미였을까.   


"사장님."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 와서 이런 걸 알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이미 지나간 일인데..."     


바 주인은 개구진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손님 생각보다 바보 같은데요?”     

그 말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사랑에 있어서는 특히 더요."    

바 주인도 함께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우리 모두 한 번쯤은 그런 바보가 되잖아요.”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엉덩이에서 목까지 올라간 장미를 생각하며. 그 꽃이 언젠가 그녀의 인생에서 활짝 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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