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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Oct 18. 2016

맛의 천국을 탐독하다

박용민, <맛으로 본 일본>

옛날에는 일본 여행을 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빠의 출장 사진에 있던 삐죽한 일본 기와를 보며 예쁘다는 생각 보다는 사무라이가 먼저 떠오르는 거부감을 느꼈고,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성진국' 같은 단어들도 제게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었으니까요.


일본의 매력에 처음 눈을 뜨게 된 건 아마도 3년 전 도쿄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3박 4일의 첫 일본 여행을 다녀왔을 땐가 봅니다. 도심보다는 한적한 동네에 주로 머무르면서 하나 건너 꽃집이 있고, 그날 팔게 떨어지면 오후 서너시에도 가게 문을 닫아버리고, 몇백년 된 전통이 현재에 들어와 있는 일본의 정취에 흠뻑 빠져버린 겁니다.  


게다가 신랑은 일본을 너무나 사랑하는 일본통이었어요. 일본에서 2년 동안 지냈던 경험이 있는 신랑은 일본어에 능통할 뿐 아니라, 비행기값만 들고 가서 현지 장사를 통해 2천만원의 거금을 남겨온 능력자이기도 하더랍니다. 도서관에 가면 매번 빌려보는 것은 일본 추리소설들이요, 저에게 심심찮게 틀어주는 영화가 특유의 잔잔한 감성을 가진 일본 영화들이니 이전에 비해 일본과 저의 심적 거리가 훨씬 가까워진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최근 본 일본영화 <앳홈>.  <냉정과 열정사이>의 준세이도 나이를 먹는군요
조금더 전에 본 일본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 바다 끝에 커피점이 있지요.


저희 부부는 1년에 1~2번씩 일본 여행을 갑니다. 지난 오사카 여행에서는 '식도락의 도시' 오사카의 갖가지 맛있는 음식들을 먹었어요. 그동안 먹었던 초밥을 인스턴트로 만들어버렸던 현지인들의 초밥집, 찾아서 간 것도 아니고 사람이 어느 정도 차 있길래 들어간 것 뿐인데 주방장이 올려주는 덴뿌라 하나하나를 먹을 때마다 놀랐던 새로운 맛의 세계! (일본 사람들은 맛에 대한 집착이 강하기 때문에 몇 시간씩 기다려 그날의 식사를 하는 것이 예사 일이라고 하지요. 다시 말하면, 줄 서 있는 가게는 맛집이라는 소리입니다.) 너무 부드러워 씹을 새도 없이 꿀떡 삼켜버렸던 고베 스테이크... 분명히 배불리 밥을 먹고 나면 다른 먹을 건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맛있는게 가득한, 더 맛있는게 많을게 분명한 이 도시에서는 먹고 돌아서는 순간 다시 허기짐을 느껴야 했습니다.


오사카 우메다 근처의 현지인 맛집 <카메스시>
아케이드 내 위치한 덴뿌라집 <마키노>
고베 <스테이크랜드>. 얼마나 부드러우면 꼭 두부를 써는 것처럼 스테이크가 쓱쓱 썰립니다.


일본에 대한 경험과 애정을 얘기하려다 보니 너무 서설이 길었지요? 오늘 소개할 <맛으로 본 일본>이라는 책은 두 가지 면에서 빠져들어 읽었던 책입니다.


박용민 저, <맛으로 본 일본>


첫번째는 담백하기 그지 없는 문체에요. 대학교 <기사작성기초> 수업 때, 기자 출신이셨던 존경하는 교수님이 수습 기자일 때의 일화를 들려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한껏 멋을 부려 작성한 기사를 제출했는데, 돌아온 종이에는 커다란 X표와 함께 선배 기자의 단 한 마디가 적혀있었다고요. "나도 한때는 문학 소년이었다!" 담담한 문체를 강조하신 교수님의 영향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미학적이고 감각적인 문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저는, 이 책의 군더더기를 뺀 담백한 말투가 그렇게 마음에 들 수가 없습니다.


글을 쓰면서 가급적 삼가려고 애쓴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우선 "한 입 먹었더니 봄바람에 교태를 부리는 사쿠라 꽃잎처럼 싱그러운 맛이 침색을 자극했다"는 식의 음식 포르노그래피는 피하고 싶었다. 내가 자극하고 싶은 부위는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관장하는 대뇌 전두엽이지 침샘이 아니었다. - <책머리에> 중


이 분의 글에 빠져든 저는 저자가 현직 외교관으로서 영화, 여행 등 다른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도 글을 썼다는 소개를 보고 서점에서 다른 책들도 찾아보았지만 재고가 없는 책들이 많아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 책도 어디의 홍보글을 보고 알게된 것이 아닌,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하게 된 책이므로 이 책 하나를 다른 사람들한테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요? (이미 여러 명에게 얘기했지만요.)


두번째는 이 책이 일본 음식의 종류, 조리법, 역사, 본인이 가본 일본 여러 지방의 맛집 등 일본 음식의 사회문화사적인 내용에 대해 전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지적인 충족감을 주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이지요. 어쩌면 그것은 앞에서 말한 지은이의 '글빨'에 기댄 면이 클텐데, 이 책을 읽다보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나의 뇌를 자극 시키고, 그로 인해 가슴이 뛰어오르는 흥분을 경험하게 돼요. 예를 들면 이런 내용들이에요. 일본 음식은 '무엇'을 조리하는가가 아닌 '어떻게' 조리하는가로 설명되는, '조리방식'을 따 음식 이름이 붙여지는 세계에 유례없는 방식을 만들어내곤 하는데, 그것은 오므라이스나 돈까스처럼 모든 것을 '일본화' 시켜버리는 일본인들의 특성에 기인한다는 것.


또한 우리가 즐겨 먹는 스시는 일본에서 무려 1,200년 동안이나 육식이 금지되어 있었던 탓에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곡물과 생선을 같이 발효시켜 만든 음식이었고, 식초를 섞어 시큼한 맛을 내게 된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는 것. 공식적으로 나라에서 육식을 금지하게 되었던 동기와, 1,200년 후 육식을 다시 권장하면서 오랜 금기의 세월이 다소 허망하게 풀려버린 경위에 대해서 파고들어가는 작가의 탐구도 아주 재미 있지요. 이 외에도 감동적인 이야기 '우동 한그릇' 일화의 비화, 일본 여러 지방의 맛집 탐방기도 알차게 소개되어 있으니 책을 읽는 동안 지루하지 않으실 거라 장담합니다.

   

11월이면 신랑과 삿뽀로에 갑니다. 지금까지의 일본 여행에서 보아왔던 익숙한 일본 거리와 아케이드로 가득찬 일본 도시가 아닌, 설경이 펼쳐질(삿뽀로엔 10월부터 눈이 내린대요!) 광경과 삿뽀로에서 먹어볼 이름난 먹거리들에 벌써 설레이고 신이 나네요. 올해의 마지막 휴가를 기대하며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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