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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틀렸던 게 지금은 맞을까

한겨레 프리즘

by 이완 기자

“중국은 폐쇄적이고 다른 시장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여기서 성공하지 못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 못 할 거 같다.”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국내 제조 대기업의 한 직원은 한국이 중국 산업 경쟁력을 쫓아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국 제품만을 애용하는 ‘애국주의 소비’만 강할 줄 알았는데, 와서 보니 중국인들이 가격 대비 성능을 따져 합리적으로 제품을 고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중국 휴대전화·자동차 등 첨단 제품의 수준이 높아, 다른 나라에서 경쟁이 붙어도 이기기 어렵다는 고민이었다. 예를 들어, 중국 전기차의 성능은 운전 중에 ‘저 앞의 건물이나 자동차가 뭐야’라고 물어보면, 차량 내부의 인공지능이 이를 파악해 운전자에게 설명을 줄줄이 들려줄 정도로 기술력이 높다. 올 초 중국 스타트업이 내놓은 인공지능 ‘딥시크’가 준 충격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는 “테슬라·비야디보다 뛰어난 자율주행차들이 도로 위에 있고, 두 발로 걸어다니는 로봇이 행사장에서 악수를 청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중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중국이 사람 축구는 못해도, 로봇 축구 월드컵을 하면 우승할 판이다. 더 무서운 건 기술력이 높은데도 더 싸게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산업팀장으로 지난 2년 동안 지켜본 중국 산업의 발전은 놀라웠다. 조 바이든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까지 미국은 계속 중국으로 첨단기술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지만, 중국 기업들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높은 기술력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아이티(IT)업체 화웨이는 미국의 첨단기술 제재에도 2023년 8월 삼성·애플의 5세대(5G) 스마트폰과 비슷한 성능을 내는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를 출시했고, 자체 개발한 스마트폰 운영체제(OS) ‘훙멍’도 만들어 구글 안드로이드의 영향력에서도 벗어났다.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칩 어센드도 있다.


이 어센드를 쓴 것으로 알려진 중국 인공지능 모델 ‘딥시크 충격’은 올 초 전세계를 강타했다. 중국 개발자들이 만든 딥시크의 성능이 선두주자인 오픈에이아이(AI) 인공지능 챗지피티와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미국 엔비디아의 비싼 인공지능 칩을 쓰지 못하는 하드웨어의 부족을 소프트웨어 능력으로 넘었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산업도 중국이 잠식하고 있다. 한국 업체는 고성능의 엔시엠(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로 중국과 차별화하는 생존 방식을 찾았지만, 중국 업체는 값이 싼 엘에프피(LFP·리튬인산철) 배터리의 성능을 더 높여 격차를 줄였고 한국을 코너로 몰고 있다. 자국 업체에만 엄청난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 대표 기업을 육성한 뒤 내보내니, 다른 나라 기업들이 당해내기가 어렵다. 부정확한 회계와 감춰진 부실 등 위험 요소가 잠재되어 있지만, 중국 산업은 추격자가 아니라 주도자로 변신했다.


막대한 기술 인력 규모, 선진국에서는 어려운 규제 회피, 권위주의 정부의 강력한 추진 등 중국만이 가능한 산업정책이 만든 결과다. 이에 대항해 미국도 바이든 행정부 때는 보조금, 트럼프 행정부 때는 관세 등 당근과 채찍으로 외국 기업의 공장을 유치하는 산업정책을 쓰고 있다. 다른 나라도 뒤질세라 뛰어들면서, 미국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낸 자료를 보면, 세계 각국이 2022년 시행한 국가 산업정책 수는 2010년에 견줘 15배나 늘었다.


1일 한겨레는 새 정부 출범 뒤 산업통상자원부가 첨단 산업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하는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추진한다고 단독 보도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국가 인공지능 강화를 위해 이전보다 더 많은 기업인 출신을 발탁해 산업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했다. 과거 같았으면 재벌에 세금 몰아주기와 이해상충 비판부터 생각날 일이었다. 예전에 틀렸던 게 지금은 맞을까. ‘이제 중국을 추격해야 한다’는 인식 전환은 깊은 물음을 던진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057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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