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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멀스멀 Oct 04. 2018

여행 가서 즐기는 운동의 맛

제일 좋아하는 운동은 걷기

 어려서부터 무엇이든 궁금해하고 또 쉽게 질리는 아이였다. 많은 것에 빠졌고 많은 것에 흥미를 잃었지만 유독 운동에는 크게 심취하지 못했다. 동네를 뛰어노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던 때에는 나도 온 동네를 뛰어다니곤 했다. 겁이 많아 롤러스케이트나 롤러블레이드가 유행할 때 쉽게 도전하진 못했지만 자전거는 꽤 좋아했다. 김포공항으로 착륙하는 비행기들이 머리 위로 3분에 한 번씩 날아가던 신월동 구석의 낮은 아파트 단지에는 꼴탕길이란게 있었다. 아파트 동 뒤로 난 콘크리트 길인데 공사할 때 평탄화를 하지 않은 탓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위아래로 몇 번씩 요동치곤 했다. 그 길을 아이들은 꼴탕길이라 불렀고 그 작은 세상의 좁은 길을 내달리던 우리에게 매일매일이 신나는 모험이자 여행이었다.


 호주의 작은 도시에서 지내던 고등학생 때를 포함해 부품을 하나하나 구해 조립해 타던 20대 초반까지 하면 아마 가장 오래 즐긴 운동은 자전거 타기겠다.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운동을 꼽으라면 걷기였다. 걷기가 무슨 운동인가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눈이 좋지 않아 구기종목도 젬병이었던 나는 애당초 활동적인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음악 듣기 좋아하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기를 좋아하니 걷기 만한 게 없기도 했다. 더위를 심하게 타고 땀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편한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 나가다 여유가 생기면 몇 정거장 먼저 내려 걷곤 했다. 속이 시끄러운데 딱히 풀 약속도 없을 땐 버스를 타고나서 정처 없이 한강도 건너고 공원을 걷다 맥주 한 캔 기울이기도 했으니 나로선 꽤 즐기던 운동이다. 이런 날은 걷다 보면 어느새 10~20킬로미터가 넘게 걷곤 했으니 이 정도면 운동 아닐까.


 눈에 갖고 있는 작은 문제 등으로 나는 현역이 아니라 공익으로 복무했다. 공익들은 논산 훈련소에서 4주간의 신병훈련을 하는데 상당한 거리의 교장을 이동하는걸 힘들어하던 동기(훈련소에서는 전우라고 부르라 했지만)들과는 달리 나에겐 수월하고 가끔은 즐거운 일이었다. 잘 걷는단 이유로 소대장은 주야간 행군 때 대대 첨병을 시켰는데 결국 너무 잘 걷는다는 이유로 맨 뒤로 옮겨졌고 맨 뒤에서 동기들을 밀어주며 걸어도 거뜬했다.


 내가 아는 한 동생은 남성성으로 대표되는 한 대기업 건설사에 다닌다. 그곳에서 받는 모든 스트레스를 크로스핏이란 힘든 운동으로 풀어내는 듯 그의 SNS엔 운동하는 영상이 8할이다. 얼마 전 연락에서 체육관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거 아니냐 농을 던지자 단백질 보충제 값도 벌기 위해 다닌다고 답하더라. 그 친구가 오랜만에 홀로 태국 여행을 떠났는데 세상에 방콕의 유명한 체육관을 도장깨기 하듯 돌며 매일 운동을 하더라. 나뿐만 아니라 많은 친구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프로 선수도 아닌데 왜 굳이 힘들게 여행 가서 놀고 즐기진 못할망정 힘들게 운동하나 싶어 지는 것이었지만 생각해보니 여행에서 각자의 경험을 하는데 정답은 없으리라.


여행가서 무슨 사서 고생이냐 싶다가도, 그건 그의 여행이니까


 함께 몇 번의 여행을 떠났던 동생 S는 지난 북해도 여행에 러닝화와 운동복을 챙겼다. 마라톤에 나설만치 열심히 하진 않지만-마라톤 풀코스 도전을 항상 꿈꾸며-내킬 때면 홍제천을 따라 남가좌에서 한강으로 달리고, 또 한강을 달리다 다시 홍제천을 달리는 그이다. 그는 고민 끝에 결연한 표정으로 이어폰을 끼고는 스스키노에서 토요히라 강변을 수 킬로미터 내달렸다. 스키를 타기 위해 떠나는 스키여행에서나 본연의 목적에 맞는 스키를 탔으면 탔지 애써 땀 흘리지 않는 나도 돌이켜보면 매번 여행에서의 걷기로 큰 만족을 얻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여행가서 달리는 사람들은 많다. 서양 사람들이 더 많은듯 싶기도 하다.


 동남아시아 같이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곳에선 당연히 많이 걸을 수밖에 없다. 물론 뚝뚝을 타거나 택시 등의 대체재가 있는 곳도 있지만 도심을 벗어나 시골로 갈수록 두 발을 제외한 선택지는 급격히 없어진다. 그런 곳에 갈 때면 걷기 좋아하는 게 참으로 다행이다. 집 앞에 나서면 편의점과 식당이 즐비한 것도 아니니 시원한 맥주 한 병을 할래도 걸어야 하고 쌀국수 한 끼, 커피 한 잔을 할래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생각보다 참 많이 걸어야 해서 굳이 맥주를 마셔야 하나 싶어 지지만 걸음 끝에 만나는 건 무엇이든 더 달고 맛있으리라.


30도 중반의 기온에 가장 가까운 맥주집을 향해 이날 약 1시간20분 정도 걸었다. 이날의 비어라오는 특히 달았다.


 그렇다고 교통편이 많은 곳에서 걸을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일본 대부분의 도시는 교통비가 어마어마해서 버스, 지하철, 기차 등을 계획 없이 타다 보면 하루에 생맥주 몇 잔 값을 교통비로 써야 하는지 모른다. 나처럼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에겐 1일 패스 같은 것도 주로 맞지 않아 웬만한 거리는 두 발에 의지하는 게 여러모로 속 편하다. 호기롭게 배낭 하나 들쳐 매고 일주일 동안 마음대로 기차를 탈 수 있는 내일로 여행을 떠난 청춘들은 또 어떤가. 젊기에 돈이 없으니 마음껏 탈 수 있는 기차를 제외하곤 버스나 택시는 사치라 합석할 일행을 찾곤 한다. 무거운 배낭은 역무원들에게 맡겨두고 맛집을 물어 걸어서 주변을 탐험한다.


 대체재가 없는 것과 교통비가 비싼 것 말고도 새로운 여행지를 걷는 게 좋은 이유가 또 있다. 차를 타고 지나가거나 목표한 지점들만 찍는 여행에서 발견하진 못하는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아기자기한 골목 안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때론 지도에 나오지 않는 맛집들을 마주치기도 한다. 꽃이나 나무는 물론 하늘도 한 번 바라볼 수 있는 여유도 생기니 여행에선 필히 걸어보시기를. 생각에도 없던 예쁜 벽돌이나 타일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어느새 현지인들 사이에 섞여 이름 모를 음식을 즐기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


호치민여행의 마지막날 한 골목에서 발견한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들. 비싼 식당보다 맛이 좋았던 1,000원짜리 분짜.


 결국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맛있는 음식을 찾게 된다는 결론인 것 같지만 아무튼 여행 가서 운동해야 하는 이유는 여행자의 수만큼 다양하겠다. 여행지에 도착해 힘들게 캐리어를 끌며 숙소에 가는 길,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인가 싶어질 때면 여행 내내 먹어댈 스스로를 위해 평소 하지 않던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다가올 자책감을 줄여보자. 어차피 다가오는 살을 피할 길은 없겠지만 기분이라도 좋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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