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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yd 고종석 Jul 25. 2017

같은 듯 다른 꿈을 꾼 두 가수,
김동률과 이적

라이벌 열전(동상이몽) - 1회

라이벌 열전(동상이몽) - 김동률과 이적

프로듀서 이적+김동률, 작사. 작곡 이적+김동률. 김세황(G)과 한상원(G), 강수호(Dr), 이태윤(B), 김광민(K), 우순실과 정미영(Cho) 등 최고의 세션진과 스트링 파트가 함께 한 프로젝트 카니발(Carnival). 이적과 김동률의 만남은 카니발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한 결합으로 시작되었고, 그 결합은 수많은 운명으로 이어져 왔다. 

노래의 운명 거위의 꿈

퇴화한 두 날개로 바람을 가로질러 푸른 창공을 날아 오르겠다는 ‘오리과 물새’의 꿈을 담고 있는 노래 ‘거위의 꿈’은 이적이 ‘가수가 되겠다.’던 당시의 다짐을 노래하고 있으며, 김동률이 먼저 곡을 완성한 이후 이적이 20여 분만에 노랫말을 붙인 곡으로도 알려져 있다. 


‘거위의 꿈’이 발표되던 1997년 한국 사회는 IMF로 인해 전 국민이 비탄에 빠진 시기였고, 카니발은 침통한 국민 정서에 음악을 통해 희망을 심어주고자 이 노래에 더 심혈을 기울였다. 카니발의 데뷔앨범 속 ‘거위의 꿈’은 분명 ‘그 땐 그렇게’ 소소한 정서를 전하고 있었다. 이후 이 곡은 대중 사이에서 끊이지 않게 회자되면서 가수 인순이의 리메이크를 통해 다시금 조명을 받게 되었고, 그녀의 음악인생을 집대성하는 기운으로까지 전이되었다. 

또한 ‘거위의 꿈’은 공연, 뮤지컬은 물론 2009년 경인TV에서 특집 드라마의 타이틀로 사용될 만큼 반향이 컸던 노래로 카니발과 인순이 이외에도 김연아, 임정희, 라이밴드, 소향, 박지민, 노아, 이지혜, 제이홀리 등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해 나왔다. 


이적은 노래 ‘거위의 꿈’에 대해 “많은 가수들이 불렀고, 아프리카의 한 어린이 합창단이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노래의 운명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라고 한 인터뷰에서 표현한 적이 있다. 음악을 통해 서로 부둥켜안고 함께했던 ‘벗’으로서의 카니발, 그리고 1990년대 후반 대중음악계 최고의 화두이자, 섞일 수 없는 커다란 분모였던 이적과 김동률은 이렇듯 명곡 ‘거위의 꿈’을 통해 음악의 운명을 완성했고, 다시 분해되어 나아 왔다. 



김동률과 이적의 화학적 결합

스물세 살 동갑내기였던 두 사람. 두 사람의 만남은 그룹명 그대로 한국 대중음악사에 있어서 축제와도 같은 소중한 의미를 담는다. 1990년대 초반 대형 가수들의 연작 속에서 이렇다 할 신인 가수의 출현과 음악적 변화가 없었던 그 시기에 패닉과 전람회는 등장과 동시에 대중을 사로잡았다. 

록음악에 힙합과 펑키 리듬을 뒤섞은 패닉과 스트링과 브라스를 주로 한 발라드를 구사해 온 전람회의 결합. 김동률은 전람회의 음악으로 유재하를 잇는 고급스러운 발라드를 선보였고, 이적은 파격적인 비트와 리듬을 바탕으로 하는 봄여름가을겨울 스타일의 퓨전적인 록 음악을 구사해 나왔다. 이 두 사람이 음악적 접점을 찾았음은 타이틀 곡 ‘그 땐 그랬지’에서 여실히 엿보인다. 팝 발라드와 레트로 스윙의 조합이 이루어진 이 곡은 김동률과 이적의 각기 다른 물체의 화학적 결합이라 할 만 했다. 


소속 그룹인 전람회와 패닉에서 각기 3장, 2장의 앨범을 발표한 이후 두 사람은 음악적 변화에 대한 필요성에 동감하며 카니발은 시작되었다. 김동률은 카니발의 출발에 대해 “별밤 콘서트에서 만난 이후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함께 기울이며 음악 이야기를 나누다가, 같이 노래를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일치했다.”고 전한다. “서로 다른 점도 많지만, 부족한 점을 상호보충하며 만들었다.”고 이적은 설명을 더했다. 젊은 나이에 이미 절정기에 다다랐던 두 뮤지션답게 카니발을 통해 두 사람은 클래식과 재즈, 펑키, 삼바, 빅밴드 스타일의 스윙 등 다양한 음악을 전람회와 패닉 고유의 화성과 리듬으로 조합시켰다. 

그럼에도 카니발의 음악적 화두는 역시 ‘어쿠스틱’과 ‘복고’에 있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한상원과 김광민, 그리고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인 댄 히긴스(Dan Higgins)와 제리 헤이(Jerry Hey) 등 재즈 파트의 색감이 분명한 세션진을 포함시켜 카니발의 앨범은 완성되었다. 

‘참 세상이란 정답이 없더군. 사는건 하루하루가 연습이더군’이라 담백하게 노래했던 두 사람에게 있어 카니발은 그 누구보다 당차고, 품격있는 시도를 보여줬다. 그리고 서로의 기취를 모두 빨아들인 두 사람은 단 한 장의 프로젝트 앨범을 남긴 채 자연스럽게 산화되었다. 그리고 김동률과 이적은 큰 공백없이 각각 솔로 데뷔와 소속 그룹의 3집 앨범으로 활동을 이어 나갔으며, 향후에도 계속해서 음악적 교감을 유지해 나오고 있다. 



듀엣으로 출발한 두 가수또 다른 듀엣을 통해 동상이몽

두 사람의 듀엣을 통한 동상이몽은 이소은이라는 신인 가수를 통한 활용도에서 차이점이 발견되는데, 두 사람은 각기 자신의 스타일에 맞춰 신인 이소은을 활용했다. 공통분모였던 이소은이 대입된 시기는 1998년이라는 동일한 시점이었다. 

이 해에 이소은은 윤상의 지원 아래 앨범 [소녀]를 통해 데뷔했고, 김동률은 솔로 데뷔작 [망각의 그림자]를 발표했으며, 패닉은 3집 [Sea Within]을 내놓았다. 먼저 김동률은 애절한 대화체 사랑가인 ‘기적’에서 전형적인 남녀 듀엣 방식으로 이소은의 맑은 보이스와 조화를 이뤘다. 김동률의 중성적인 이미지에서 좀 더 남성적인 형체로 감정이입된 이 곡은 결과적으로 김동률의 팬층이 보다 더 두텁게 다듬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반해 이적은 패닉의 ‘숨은 그림 찾기’에서 이소은의 재능을 색다르게 담아냈다. 이소은의 보컬을 인트로로 활용한 이 곡에서 이적은 자신의 거침없는 초기 보컬 스타일과 김진표의 랩, 그리고 펑키 비트와 국악기, 일렉 기타의 디스트 사운드를 이소은의 여린 보이스와 조화를 이뤄냈다. 특히 이 곡의 스타일은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의 진화된 패턴을 보여주며, 다소 테크니컬한 비중을 차지할 수 있는 전체 곡의 맥을 유연하게 다듬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김동률은 전람회 1집 [Exhibition]의 ‘세상의 문 앞에서’를 통해 신해철의 격한 감성을 아우르는 짙은 창법으로 많은 남성 팬을 사로잡았다. 또한 김동률은 2집 [Second Story 02 希望]에서 활동이 주춤했던 양파와 함께 이소은과 유사한 감정이입을 이루어낸 ‘벽’을 수록했다. 그리고 김동률은 같은 소속사 가수인 존박을 게스트로 출연시킨 경희대 콘서트에서 ‘세상의 문앞에서’를 색다른 감성의 듀엣으로 선사한 바 있다. 이 날 김동률은 “훗날 존박이 이 노래를 후배와 함께 불렀으면 좋겠다.”는 덕담을 남기기도 했다. 


‘달팽이’와 ‘왼손잡이’를 통해 이질적이고 독특한 창법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던 이적은 유희열과 김현철, 정원영 등의 작곡가가 함께 한 이문세의 10집 [花舞]의 타이틀곡 ‘조조할인’을 통해서 최상의 보컬을 선보였다. 

이적과의 듀엣으로 이문세는 서른아홉에 이르러 제 2의 전성기를 열 수 있었다. 이적은 2013년 5집 앨범 [고독의 의미]의 수록곡 중 ‘비포 선라이즈’에서 더욱 단아해진 자신의 창법에 정인의 하이톤을 녹아내렸는데, 이 곡이 이채로웠던 점은 김동률식 듀엣 스타일을 선보였다는 점이다. 

이 외에도 이적은 1990년대의 대표적인 여성 록커였던 삐삐밴드의 이윤정과 패닉 2집에서 ‘불면증’을, 그리고 자우림의 김윤아와 함께 솔로 2집 중 ‘어느날’을 함께 듀엣으로 발표했다. 이 두 곡은 모두 기괴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띄는데, 이적이 듀엣곡을 통해 음악적 시도를 다시 한 번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이적은 2009년 LA에서 벌어진 한인의 날 행사에서 태연과 함께 ‘거위의 꿈’을 듀엣으로 함께 노래하기도 했다. 한편 김동률은 전람회의 서동욱과 이적을 맞이해서 ‘조조할인’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는 ‘내 오랜 친구들’을 자신의 솔로 앨범에 수록하기도 했다.  



같은 듯 각기 다른 두 사람의 음악적 가치

김동률은 대학교 재학 중 서동욱과 함께 만든 2인조 듀엣 전람회로 1993년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해 대상과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최고의 레이블이었던 대영 AV의 유재학과 신해철이 제작을 맡은 1집 앨범 [Exhibition]에서 ‘기억의 습작’이 히트를 기록하며 김동률 신화가 열리기 시작했다. 미니 앨범을 포함해서 1장의 앨범을 더한 김동률은 이적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카니발을 결성했다. 

김동률은 전람회 당시부터 이승환 4집의 ‘천일동안’과 ‘다만’, 장혜진의 ‘1994년 어느 늦은 밤’ 박효신의 ‘동경’, 김원준의 ‘쇼’ 등을 작곡하면서 작곡가로서도 역량을 넓혀 나왔다. 감성, 그것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에 이르는 젊은이들이 느끼는 그 뜨거운 감성에 있어 김동률만큼 섬세하게 표현했던 뮤지션은 흔하지 않았다. 

특히 김동률은 남자들이 느끼는 이성과 진로, 사회 속 현실을 음악으로 소통하며 천재에 가까운 결과물을 꾸준하게 보여줬다. 그의 솔로 앨범 [망각의 그림자]가 발매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물 다섯이었다. 김동률의 보컬 스타일은 이미 고도를 달리고 있었으며, 가사의 깊이는 그 어느 음악보다 심도있는 감정을 담고 있었다. 김동률은 2000년 2집에서 ‘벽’, ‘희망’을, 2001년 3집 앨범에서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사랑한다는 말’을, 그리고 3년 만에 발표된 4집에서 ‘이제서야’, ‘욕심쟁이’를, 2008년 5집에서는 ‘다시 시작해 보자’ 등을 히트시키며 대중가요계를 대표하는 싱어 송 라이터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김동률은 동시대의 유사한 뮤지션이자 유명 작곡자, 그리고 보컬리스트인 유희열과 정석원이 갖지 못했던 독창적인 보컬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적 스타일은 솔로 초기 작품에서 런던 교향악단을 참여시키는 등 스케일 큰 사운드 메이킹을 진행했고, 철저하게 클래식과 스윙 재즈를 도용한 흔적이 강하다. 이 모든 점은 ‘유재하의 재림’이라 할 만큼 큰 값어치를 지닌다. 

2008년 발표된 5집 [Monologue]는 동년 상반기에 출시된 음반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 앨범을 통해 김동률은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 수여하는 작사상과 골든 디스크, 그리고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음반에 선정되었다. 이후 김동률은 애시드 재즈 밴드 롤러 코스터의 멤버 이상순과 프로젝트 베란다를 결성해서 [Day Off]를 발표했고, 조원선, 하림, 루시드 폴 등과 음악적 교류를 이루기도 했다. 2011년 김동률은 겨울을 테마로 한 6집 앨범 [KimdongrYULE]을 발표했고, 2014년에 [동행]을 내놓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적은 음악적으로나, 탤렌트적인 부분에서나 모두 스마트하다. 동물원의 김창기는 이적을 가리켜 ‘똘똘이 스머프’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왜냐는 질문에 김창기는 “그 어느 대중음악가보다 이적은 대중이 원하는 음악과 자신의 이상을 잘 접목한다는 점에서 만화영화 ‘개구장이 스머프’의 똘똘이 스머프를 연상시킨다.”고 전한다. 

이적은 데뷔이후 지금까지 변신의 변신을 거듭하며 승승장구의 길을 걸어 왔지만, 외로움과 슬픔 사이에서 음악적으로 적잖은 방황의 모습도 보여 나왔다. 그리고 최근의 이적은 그의 음악에 녹아내려 있던 분노를 따뜻하고 포용력 높은 음악으로 변화시켰으며, 데뷔 당시 포스트 서태지로 각광을 받았던 것에 걸맞게 거인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적의 음악 인생이 시작된 패닉 1집은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개화에 가장 큰 공헌을 남긴 그룹 들국화의 최성원이 프로듀서로 참여하면서 오버 지향이 아닌 순수 음악에 중심을 잡고서 출발되었다. 이 앨범에서 이적은 리드 보컬과 랩, 어쿠스틱 기타, 키보드,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 멀티 플레이어 역할을 담당하며 뮤지션 사이에서도 큰 화제를 일으켰다. 


패닉이 데뷔하던 당시 가요계는 박미경의 ‘이유같지 않은 이유’와 박진영의 ‘날 떠나지마’,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등의 비트있는 곡들과 신승훈의 ‘오랜 이별뒤에’, 녹색지대의 ‘사랑을 할거야’ 등의 사랑 노래가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 사이에서 패닉의 ‘달팽이’는 일상에 젖은 정서를 파고드는 개성있는 가사로 PC 통신 내에서 인기를 얻으며 대중들은 패닉의 음악에 쉽게 동화될 수 있었다. 당시 10대 위주였던 팬들은 이제 어엿한 사회의 중심이 되었고, 그들은 이적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그의 음악과 함께 성장했다. 

이적은 ‘달팽이’ 열풍으로 불렸던 그 시기 달팽이를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나왔고, 후속곡 ‘왼손잡이’를 통해서 사회적 의식을 지닌 인텔리전트 뮤지션으로까지 인정을 받았다. 대중성을 다소 버리고 한층 강렬한 비트가 주도했던 패닉의 2집 [밑]은 얼터너티브와 펑키, 힙합 등의 장르를 가미하고 신랄하고 독설에 찬 가사로 기존 팬 일부가 떠나갔지만, 결과적으로 패닉 매니아들의 결집을 강화시켰다. 이적의 라디오 방송 진행으로 김진표가 솔로 앨범 [열외]를 발표하자, 음악에 갈증을 느끼던 이적은 김동률과 프로젝트 그룹 카니발을 결성했다.  


카니발 이후 유희열, 김동률과 함께 가장 돋보이는 싱어 송 라이터로 손꼽히던 이적은 패닉의 타이틀을 걸고 1998년 3집 앨범을 발표했다. 그러나 패닉이 다시 잠정적인 활동 중단에 들어가면서 이적은 자신의 솔로 앨범인 [Dead End]를 내놓지만, 이적은 음악적으로 큰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중 정원영, 한상원, 강호정, 이상민, 정재일과 함께 6인조 펑큰롤 밴드 긱스(Gigs)를 결성했고 그는 보컬 파트를 담당했다. 

이후 군복무를 마치고 정재일과 하림, 빅마마, 김진표, 김윤아 등이 참여한 솔로 2집 [2적]을 발표했다. 2005년 12월 이적은 김진표와 함께 패닉 4집을 발표하며 패닉 활동을 재개했지만, 김진표의 이혼으로 활동은 다시금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2007년 이적은 어쿠스틱 사운드가 돋보인 앨범 [나무로 만든 노래]를 통해 한국 대중 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최우수 팝 노래, 최우수 팝 음반 부문을 수상하며 최고의 시기를 보냈다. 최근까지 이적은 솔로 앨범 [사랑]과 [고독의 의미],  [강승원 1집 만들기 프로젝트] 등을 순차적으로 발표해 나오고 있다. 최근 이적은 올해 겨울 4년 만에 신보 발매를 예고했다. 



기타 활동

김동률은 지금까지 130여 곡에 가까운 곡을 작곡해서 자신과 자신이 소속되었던 그룹, 그리고 기타 가수들에게 선사해 나왔다. 그는 신해철이 영화음악을 담당했던 ‘정글 스토리’에서 현악 파트의 편곡을 담당하는 등 기존 가요에 브라스와 스트링 효과를 제대로 접목시킨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그와 작업을 이룬 중견급 가수들은 ‘마치 유재하의 재림을 보는 듯 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때문에 그는 대중가요가 아닌 클래식 연주자들과의 교류도 활발했다. 김동률은 가수 활동 외에도 전람회 해체 이후 6개월 동안 KBS 라디오 프로그램 ‘김동률의 인기 가요’를 진행했으며, 버클리 음악 대학에서 영화 음악을 전공했다. 드라마 ‘가을 소나기’에 수록된 ‘잔향’처럼 향후 김동률의 마력은 드라마와 영화, 기타 OST에서도 기대된다 할 수 있겠다. 

이적은 뮤직션으로서의 활동 외에도 유독 라디오와 방송을 통해 많은 역할을 담당해 나왔다. 이는 이미 패닉의 데뷔 앨범부터 대중들에게 쌓여온 지적인 이미지가 큰 작용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패닉 2집 이후 MBC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인 ‘별이 빛나는 밤에’를 시작으로 ‘이적의 FM+’, ‘이적의 Dream On’, TV 프로그램 ‘이적의 음악 공간’을 진행했다. 

이외에 이적은 약 3년 여간 자신의 블러그에 공개해 나오던 판타지 단편 소설을 모아서 소설 ‘지문 사냥꾼’을 내놓았으며, 이 책의 단편 중 하나인 ‘제불찰 씨 이야기’는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확실히 이적은 방송과 인연이 깊었다. 123부작으로 기획된 MBC의 드라마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 출연하며 연기를 시작했고, 2013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우리들의 일밤-아빠! 어디가?’ 시즌1에서 내레이션을 맡았으며,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방송의 적’에 출연하면서 인텔리전트 뮤지션으로서의 인지도를 여전히 유지했다. 



새로운 동상이몽을 기대하며 

김동률은 “어렸을 때는 너무 넘쳐서 문제이던 자신감이 앨범을 한 장 한 장 낼수록 점차 수명이 짧아지는 것 같아 큰일이다.(중략) 이제는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혹은 누군가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며 겸손어린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이적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는 뮤지션이 된 비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여성분들은 김동률씨를 좋아하고, 웃긴 걸로는 유희열씨를 따라갈 수가 없고, 예능에는 존박이 있고, 항상 저는 메인으로 빛을 보지 못했어요. 패닉 1집 판매량이 60만 장인데, 그때도 톱10에 못 들었으니 그때조차 톱스타가 아니었죠. 톱이 아닌 상태에서 꾸준히 가는 것에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라며 아직까지도 모두 드러나지 않은 자신의 매력을 언급했다.


라이벌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두 사람의 동상이몽은 같은 회사에 소속되면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김동률과 이적은 과거 이적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카니발 2집을 한 차례 언급한 적이 있다. 당시 카니발의 재결합에 대해 김동률은 찬성, 이적은 보류의 의견을 보였다. 당대 최고의 두 뮤지션이 함께하며 각자의 꿈을 꾸어왔던 지난 시간을 뛰어넘는 결합이 다시 이뤄질 그 날을 우리는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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