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소니안에서 1

talk about art in National Gallery of Ar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안 미술관은 21개다. 그 당시 미술에 심취해 있었던 나는 지하철을 타고 30분 정도 가면 어마어마한 명화가 걸린 미술관이 널려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거기다가 입장료도 내지 않으니 이 기회를 자주 이용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스미소니안 홈페이지에 들어가 'talk about art in National Gallery of Art'를 등록했다. 국립미술관에서 예술에 관해 얘기하다니, 가슴이 벌렁거렸다. 지금처럼 ‘길찾기’가 친절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수업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 위해 미리 몇 번 가보았다. 미국의 지하철은 아주 실용적이다. 딱 필요한 물건, 필요한 사람만 있다. 미국인은 동네에서는 모르는 사람과도 눈만 마주치면 하이 하면서 웃는데 지하철에 타면 모두 무표정하다. 집 근처 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미술관 가까운 역에서 내려 지도를 보고 찾아갔다. 미국의 수도는 넓고, 크고, 조용해서 지하에서 나왔을 때 망망대해 한 가운데 있는 기분이었다. 아이들 공부며 소소한 일상이 아직도 낯설고 두려웠지만, 근사한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trinka3_yoonrhie.jpg Trinka의 모사작품

미술관 소속 모사화가(replica artist) Trinka는 한쪽으로 딴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보풀이 일어난 셔츠에 다 떨어진 검은 가방을 들고도 예술가의 멋이 풀풀 났다. 미술관에서 명화를 베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화가이며 작품을 보는 법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다. 나는 나이 든 백인 아줌마, 아저씨들 틈에 끼여 강의를 알아들으려고 선생님을 바싹 따라다녔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선생님은 우리를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의 그림이 있는 방으로 데려가 두 개의 다른 스타일의 그림 중 어떤 것이 더 좋은지 서로 이야기하라고 했다. 렘브란트나 베르메르 그림을 보고 좋다 싫다 말하라니! 그동안 컴퓨터 화면으로만 보았던 명화가 눈 앞에 펼쳐지자, 나는 말문이 막혔다. 간신히 몇 마디를 했는데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닌지, 다들 너그러운 눈빛으로 들어주었다.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화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하면서 화가 선생은 그림의 윤곽을 대충 그린 스케치북을 들고 설명했다. 화가가 그림을 디자인할 때 고려하는 요소는 테두리(edge), 대상(object), 빛의 대비(contrast)다. 그림을 보고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색가(color value)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화가가 위의 3가지 요소 중 무엇을 중시했는지 살펴보면서 그림을 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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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비평하기 위해서 또 다른 명작 앞에 섰다. George de la Tour의 《회개하는 막달라 마리아》였다. 이 화가는 대상보다는 부드러운 테두리와 빛과 어둠의 대비를 강조해서 극적인 회개의 순간을 살렸다. 해골을 만지는 손은 비틀려 있고, 얼굴은 반쯤 가렸으며, 머리숱이 없어도 우리는 이 젊은 막달라 마리아를 아름답다고 본다. 테두리를 모호하게 하고, 음영이 선명해서 이 여자의 아름다움과 회한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오랫동안 묻혀있던 이 화가가 재조명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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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은 단독으로 있을 때와 옆에 다른 색이 있을 때 그 ‘가치’가 다르다. 이를 색가(color value)라고 한다. 같은 색이라도, 밝은색은 두드러져 보이고 어두운색은 멀리 있게 보인다. 인상파 이전, 색의 명암으로 원근감을 표현한 16세기의 한 작품을 보았다. 유명하지 않은 한 작가가 그린 약간 어색하고 불편한 신화 그림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발가락은 주황색이고 피부에 듬성듬성 푸른빛이 감돌아 시체처럼 파리하다. 양털 옷에는 보라색, 붉은색, 노란색 등 여러 가지 색이 숨어있어서 모사 화가는 이 그림을 베낄 때 같은 색을 찾을 수 없어 당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밝은 살색 인물은 앞에, 산은 멀리 보이도록 어둡게 그려 색의 명암은 확실하게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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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화가들은 선배들의 색을 연구하여 새로운 ‘색의 가치’를 창조했다. 명암뿐 아니라 순도, 채도, 색의 대비, 배치 관계에 따라 요술을 부리는 색으로 그들은 새로운 화풍을 열었다. 그 한 예시로 선생은 우리를 Renoir의 《dancer》가 있는 방으로 데려갔다. 밝은 배경색과 비슷하게 밝은색 발레복을 입은 어린 무용수는 명암과 관계없이 도드라져 보인다. 명암만으로 원근을 표현하지 않고 다른 색의 요소(순도, 채도, 색의 대비, 배치 관계)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흰색을 살짝살짝 덧칠한 검은색 벨벳 팔찌와 연분홍색 발레 슈즈가 우아하게 반짝였다. 소녀의 얼굴과 자태에 오만가지 색이 오묘하게 어울려 어린 발레리나의 자부심과 설렘을 읽을 수 있었다. 인상파 화가는 테두리나 대상보다도 색을 중요하게 여기고 연구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 낸 색의 마술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까이 원화를 보며 설명을 들으니 인상파 화가의 빛과 색의 세계가 더욱 신비하고 매혹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