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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Kwon Apr 20. 2019

뽕짝과 외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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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두 번 방문하던 어린 시절의 외갓집은 그야말로 시골이었다. 먼지를 뒤집어쓴 낡은 버스가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그 끝에서 맞이하던 곳. 낮이면 논이며 밭이며 온통 녹색빛 천지이다가, 밤이면 모든 것이 그 색을 잃고 깊은 수렁과 같은 어둠으로 변하던 곳. 드문드문 부유하던 불빛만이 어둠이 덮은 그 자리가 끝없는 허공은 아님을 말해주던 곳. 그곳은 나의 큰 외삼촌이 한평생 살다 간, 그가 알던 유일한 세상이었다.


2남 2녀 중 장남. 막내인 엄마보다 열 살이 많았던 그는 외할머니와 함께 농사를 지었다. 마당 끝자락에 있던 외양간에 여물을 쟁여놓는 것으로 시작했던 그의 아침은 틈틈이 막걸리를 마시며 밭일을 하는 오후로 이어졌고, 해가 머리 위에서 살짝 기울어질 때쯤 이른 저녁을 먹으면 금세 어둑한 밤이 찾아오는 식이었다. 물론 그의 하루가 늘 이와 같진 않았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닫혀 있는 방문 사이로 요란한 뽕짝 음악이 새어 나오기도 했고, 방문이 활짝 열려있기라도 하면 이불을 둘러감은 채 모로 누워있던 그의 뒤통수가 보이기도 했다. 작작 좀 마셔라! 때때로 참을성을 잃은 외할머니가 모처럼 보는 손녀들 앞에서 언성을 높이면 젊었던 엄마가 아유, 오빠는 정말, 하고 옆에서 눈을 흘겼다. 그런 와중에도 내 기억 속 외삼촌의 뒤통수는 꿈쩍하지 않았다.


어른이 된 형제들이 하나 둘 도시로 떠났지만 그는 그곳에 남았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그래서 부인도 아이도 없었으며, 늙은 집에서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외할머니와 함께 보냈다. 그런 외삼촌을 두고 엄마는 너무 숙맥이라 장가를 못 간다고 했고, 이모는 너무 순진해서 도시에서 살 사람이 못된다고 했다. 실없는 농담을 하고 사람 좋은 웃음을 가졌던 외삼촌.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이십 대 중반이 되기까지. 내가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에도 그는 늘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 같았다.


외삼촌이 어쩔 수 없이 그 시골을 떠나게 된 것은 외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였다. 거실에서 넘어진 외할머니가 병원에서 또렷한 기력으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는 잠이 들었는데, 그것이 결국 영원히 깨지 않는 잠이 되고 만 것이다. 형제들은 노모를 잃은 슬픔을 달랠 새도 없이 외삼촌의 거처를 결정해야만 했다. 살림은커녕 밥 짓는 법도 알지 못했던 그를 혼자 시골집에 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집으로 가요. 울음으로 빨간 토끼눈이 된 막냇동생의 한 마디에 그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농사를 지어왔건만 이젠 더 할 일도 남아있지 않던 터였다. 늙은 시골집은 몇 해 전 허물어져 양옥집으로 바뀌었고 마당 한 편의 외양간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돌아가 봤댔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마당의 잔디를 깎는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어느 날 우리 집으로 왔다. 몇 벌의 옷과 여분의 신발, 카세트테이프 서너 개. 외삼촌의 짐은 참 조촐했다. 그나마 깜빡 잊고 챙겨 오지 못한 낡은 카세트 하나만이 그의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아유 외삼촌, 요즘에 누가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는다고. 대신 내가 라디오 틀어줄게요. 


나는 아쉬워하는 그를 쉽게 외면했다. 뒤늦게 아무도 쓰지 않는 카세트를 구해왔지만 그가 부탁했던 '주현미 테이프'는 끝끝내 사 오지 않았다. 외삼촌은 내게 또 부탁을 하는 대신 몇 되지 않는 뽕짝 메들리를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고 또 들었다.


야, 쌩판 모르는 곳에 살려니까 꼭 감옥에 있는 것 같다. 나 여기 잠깐만 지내다가 내려가야지. 곧 집으로 갈란다. 


그는 이틀에 한번 꼴로 같은 말을 반복하며 엄마를 속상하게 했다. 사실 엄마의 속을 어지럽히는 것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외삼촌의 술버릇이었다. 늘 반주라도 곁들여야 했던 그는 종종 잔뜩 취하도록 마시고는 음악을 크게 틀거나 시끄럽게 주정을 하다 잠이 들었다. 가긴 어딜 간다고 그래!라고 되받아치다가도 그렇게 술이나 마실 거면 내려가요! 하고 말을 바꿔버리던 엄마는 본인의 마음이 진정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늙은 남매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날이면 나는 오래전 모로 누워 꿈쩍이지 않던 외삼촌의 뒤통수가 떠올랐다.


외삼촌이 말한 '쌩판 모르는 곳'에는 그가 가족 외에 유일하게 알고 지내던 시골 동창이 하나 있었다. 적적하지 않으니 차라리 잘 되었지,라고 긍정의 한 표를 던진 아빠와 달리 엄마는 그놈의 술이 문제지, 라며 난색을 표했다. 아니나 다를까. 동창과 어울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어버린 그가 취하는 날이 잦아진 건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어느 날 엄마는 술에 취해 잠든 외삼촌의 지갑을 빼서는 어딘가에 숨겨버렸다. 


아이고, 그러게 술을 어지간히 마셨어야지. 지갑까지 잃어버리고. 

잠에서 깨 지갑을 찾는 외삼촌을 보고 엄마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여기가 시골이랑 같은 줄 아나. 무서운 줄 모르고 그렇게 기억도 안 나도록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면 어떡해요. 시무룩하게 앉아있는 큰오빠를 향한 막냇동생의 훈계는 끝이 없었다. 기회를 잡은 김에 술버릇을 끝내주겠다는 심산인 듯했다. 


엄마의 계획은 효과적이었다. 외삼촌은 며칠 동안 술을 마시지도 않고 외출도 하지 않았다. 문제는 너무 효과적이어서 그런 그의 모습이 슬퍼보인단 사실이었다. 그는 축 처진 어깨를 하고는 거실 베란다 너머를 구경하는 것으로 하루를 대신했다. 어느 날 갑자기 평생 살던 곳을 떠나 아무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삶이라니. 평소 좋아하던 술을 마시는 것 말고 외삼촌이 그 많은 시간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에게 도시의 하루는 시골의 그것보다 아주 천천히 흘렀을지도 모르겠다. 


외삼촌, 우리 오늘 둘이서 저녁 먹을까요? 나 고기 먹고 싶은데. 

나는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니야. 글쎄 내가 술이 취해서 지갑을 잃어버렸잖아. 너희 엄마 아직도 화가 났어. 

그는 이미 온 가족이 다 아는 사실을 엄청난 비밀인 냥 소곤거렸다. 

그러니깐 적당히 좀 드시지. 오늘은 고기에 소주 몇 잔만. 딱 그렇게만 먹고 와요, 우리. 

반주가 그리웠던 외삼촌이 예의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고 나는 그와 팔짱을 꼈다. 마지못한 척 따라나서던 그가 말했다. 

야, 내가 아가씨랑 팔짱을 다 껴보네.


그것이 외삼촌의 마지막 술자리였다. 위암 말기. 급속도로 살이 빠지고 안색이 나빠진 그가 병원에서 받은 진단이었다. 형제들은 그에게 병명을 알리지 않기로 하고 입원 수속을 밟았지만 병원에서도 딱히 손쓸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외삼촌의 몸 안에 숨어 있던 암은 그 정체가 탄로나자 무섭게 돌변했다. 퇴원하면 집으로 돌아가련다. 매일마다 기력을 잃어가면서도 그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던 그에게 어떤 말을 하는 것이 정답이었을까. 내가 외삼촌의 딸이었다면 그의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 


그래요. 빨리 나아서 퇴원하면 그렇게 해요. 내가 주현미 테이프도 사다 줄게. 


외삼촌이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낸 시간은 5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 시골집으로 돌아가겠다던 그는 막냇동생의 집으로도 돌아가지 못한 채 병원에서 마지막을 맞았다. 급하게 치른 장례식에는 그에 걸맞은 영정 사진조차 없어 작은 증명사진을 확대해야 했다. 엄마는 작은 외삼촌, 이모와 함께 다시금 빨간 토끼눈을 하고 자리를 지켰다. 그 좋아하는 술 그냥 마시라고 할걸. 그렇게 짧은 시간을 함께할 줄 모르고 타박만 했다고, 암 말기가 되도록 옆에서 눈치도 못 챘다고, 엄마는 펑펑 울었다. 오빠, 오빠. 큰 오빠를 보내는 것이 서러웠던 막냇동생은 어린애처럼 펑펑 울었다. 




언젠가 엄마와 함께 주현미가 나온 가요무대를 본 적이 있다. 엄마는 어느새 큰오빠보다 늙은 막냇동생이 되어 그녀가 부르는 구슬픈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 가락 사이로 어린 시절 보았던 외갓집의 풍경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벌레 우는 소리, 소가 여물을 먹는 소리, 마당의 수도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귀를 기울여야 들리던 그 모든 소리들을 덮어버리는 뽕짝 소리. 작작 좀 마셔라! 외할머니의 높은 언성이 향하는 곳에 무심하게 누워있던 외삼촌이 시끄러운 뽕짝 소리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랬던 어느 날의 풍경. 지금도 시골에 가면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만 같은 생생한 기억. 문득 그들이 있던 어린 시절의 외갓집이 그리워졌다. 


다들, 잘 지내고 계시죠. 




** 표지 사진 출처: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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