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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영 Apr 05. 2020

코로나여도 모임은 하고 싶어

작지만 강력한 일상 나눔의 힘

취업은커녕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어려운 시점이라,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나도 지난 2월 계약직 조교 업무를 끝내고 재택알바를 하며 취준생으로 지낸 지 벌써 두 달째다.


꽤 오랜 기간 동안 사람에 치여 왔던 지라 사회적 거리두기 초반 까지만 해도 사태가 심각한 것은 걱정스럽지만 한편으로는 혼자 집에서 요양? 할 수 있는 변명거리가 생긴 것 같아 지금보다 긍정적인 기분이었다. 그러나 집에만 머문 지 한 달 정도가 지나면서, 계획했던 여행도 모두 취소되고 채용 시장도 암울해 보여 답답함과 우울감이 커져만 간다.


물론 혼자서도 충분한 열정과 꾸준한 원동력으로 목표한 바를 성취해 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 무언가를 독학하거나 혼자 준비하는 경우 쉽게 질리거나 해이해지는 경우가 많아 주제별로 꼭 스터디를 만들어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곤 한다.


게으르거나, 잘 미루거나, 감정 기복이 심한 경우 '함께 공부하기'는 효과적인 루션이 될 수 있다. 어쩌면 호기심만 많고 게으름이 하늘을 찌르는 내가 함께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물론 지금도 많은 성취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의 반 타의 반 굉장히 느긋한 삶을 살았을 것 같다. 또 이런 주기적인 모임은 정서적으로 매우 도움이 된다. '생활 공유', '일상 나눔'을 통해 장기간의 자택 체류를 스스로를 느리고 깊은 템포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계기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2-3월 '우다다', '회고 클럽', '브런치 글 모임' 세 개의 모임에 참여했다.


회고 클럽은 한 달 과정이라 지난달에 마쳤고, 이번 달부터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로 함께 영어를 공부하는 '영어 포올(English for All)'이라는 온라인 스터디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부터 이들 모임이 시사해 준 코로나(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ID19, 이하 코로나) 시기의 소셜 모임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1.

우다다(리는 양한 사상을 가진 양한 사람들)는 2018년부터 참여한 월간 모임이다. 유튜브, 모임, 디자인, 창업, 개발, 마케팅, 음악 등에 관심이 있거나 직업을 두고 있는 구성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공유하고 싶은 지식이나 활동을 나눈다. 모임 시작 전에는 늘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생활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고, 모임날이 아니더라도 온라인 카톡방에서 여러 가지 대화와 정보가 오간다.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듣고자 모인 사람들이라서 카톡방에서도 각자의 관심사를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나누고 토론할 수 있다.

카톡방에 공유된 링크들을 보면 마치 친구들로부터 짧고 개성 있는 뉴스레터를 매일 받아 보는 느낌이랄까?


2.

회고 클럽 1기는 우다다 구성원 중 마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개발자 친구가 주도적으로 조직한 모임으로, 말 그대로 '회고'를 좀 더 의미 있는 방식으로 시도하기 위한 모임이다. 노션 페이지에 마치 블로그를 쓰듯 매일 각자 일일 회고(짧은 일기)를, 한 주가 끝날 때에는 주간 회고를 남기는 간단한 활동이었다. 매주 토요일 저녁에는 행아웃으로 만나 주간 회고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회고 클럽은 가볍게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 모임이다. 처음에는 내가 일 벌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계속 새로운 일을 벌이고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는데 그런 경험들을 잘 기록해서 나중에도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으로 회고 클럽에 참여했다. 그런데 예고했던 것과는 달리 딱히 이렇다 할 프로그램이 제공되지 않아 의구심을 가진 채 매일 '남에게 보여주는 일기'라는 희한한 형태의 회고록을 작성해 내려가야 했다.


'남에게 보여주는 일기'는 일기지만 청자가 타자인 기록이다. 혼잣말이 아니라 대화인 셈이다.



이때 '남'은 생판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절친도 아닌, 서로의 회고를 공유하기 위해 만난 사람들이다. 때로는 함께 웃고 때로는 깊이 공감하면서 내 삶에 작게나마 타인의 자리를 만들고, 일상과 고민을 함께 나누면서 내 삶을 한 발짝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을 전개시켜 봤자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에 비해 실질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 것 같다. 나만 볼 것이기에 의식의 흐름대로 적는 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일기를 작성하면서 머릿속에 뒤엉킨 생각들이 조금씩 정리되어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보다 삶에서 소소하게나마 기록할 일들이 많다고 느껴져 회고도 길게 열심히 쓰게 되었다.


얼마 전 지인 추천으로 "죽고 싶지만 떡볶이를 먹고 싶어"라는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상담도 상담사와의 일상 대화를 통해 내 생각과 감정을 정리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대화를 하다 보면 생각보다 서로가 일상에서 공감할 거리가 많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지난 두 달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는데도 외롭지 않았던 이유는 작은 일상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이런 일상 공유 모임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3.

브런치 글 모임주 1회 브런치 글을 작성하고 서로 글을 읽어봐 주는 모임이다. 사실 이 모임도 처음에는 글 쓰는 습관을 기르고 피드백도 나누기 위해 시작했지만, 꾸준히 글을 쓰는 과정에서 그저 함께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기분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에 글을 쓸 때 사람들의 반응에 영향을 받게 된다고들 한다. 독자들의 생각을 듣는 건 언제나 즐겁고 감사한 일이지만 때로는 비판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비판을 딛고 나아갈 추동력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같은 시간에 각자의 자리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으니 고민이 생겼을 때에도 머리를 맞대고 함께 나눌 수 있다. 해결하기 어렵게만 보였던 고민을 함께 마주하면서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4.

마지막으로 현재 참여한 지 일주일 된 영어 포올 3기 참여하고 있던 비건 커뮤니티에서 소개를 받아 참여하게 된 영어 스터디이다. 이번 기수에서는 하루에 2분 분량씩 Before The Flood라는 다큐멘터리를 셰도잉 하고 인증하는 방식으로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공부를 소홀히 해 아는 것이 별로 없지만, 환경이나 비거니즘에 관심이 많은 분들 사이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보다 공감받는 느낌을 받는다. 말과 행동에 있어 유난 떤다던지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던지 등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편안하게 나로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터디가 끝나고 한 번 다 같이 만난다고 하는데, 새로운 비건 친구들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코로나 시기에 필요한 모임은 무엇일까?


물론 좋은 모임은 환경과 조건에 관계없이 늘 좋은 경험을 선사하겠지만, 음주가무 등 강렬한 놀이 모임이 장기적으로 불가능한 시기에 모임의 형태는 '나눔과 돌봄'이 적절할 것 같다.


하자책방 코로나 교환일기


지난 한 달 문을 닫았던 강남 클럽이 이번 주에 재개장을 하면서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참고기사: https://www.insight.co.kr/news/277449) 이 기사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나도 놀고 싶다" 싶으면서도 "저 사람들 미쳤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나도 노는 거 좋아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엄청 잘 놀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밤낮으로 일하는 의료진의 희생을 생각하면 놀고 싶다는 생각도 사치가 아닐까? 그리고 일단 한 번 그렇게 놀면 '한 번 놀았으니 이제 됐다'가 아니라, 당장 다음날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할 때 '코로나 때문에 또 못 나간다'라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즉, 누구 탓이냐는 잘잘못을 떠나 우리가 이런 상황에 적응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불가능한 쾌락을 원하게 될 것이고, 밖에 못 나갈 때마다 '코로나 때문에...'라고 탓하며 현재 가지지 못하는 것, 상실한 것을 상기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느리게 대화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지금 함께하고 있는 사람과 장소에 집중하면 서로에 대해서는 물론 스스로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된다. 이제 코로나로 보지 못한 봄꽃을 탓할 것이 아니라, 이 시기를 코로나 이전에 보지 못한 나와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는 즐거움으로 채워 보면 어떨까. 작은 일상 공유만으로도 당장 시작할 수 있다.




모임의 형태는 정말 다양할 수 있으므로, 일상 공유 방법으로 하자센터에서 진행하는 '코로나 교환일기'가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공유해 본다. 인스타그램 #집콕중 태그도 좋다. 게임을 좋아한다면 WHO에서 유해 매체로 지정했다가 코로나 발발 이후 갑자기 장려하고 있는 온라인 게임으로 온라인 소셜라이징을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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