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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런치스토리팀 Oct 18. 2016

작가 인터뷰 13 - 손현

꿈을 이룬 작가들의 이야기

약 10년 전이었을까.

TV에서 유라시아 횡단 열차가 개통되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납니다. 횡단 열차가 지나가는 길에 꼭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아시아와 유럽을 가로지르는 엄청난 규모에 압도되어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타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열차를 타고 쉼 없이 달려도 19박 20일이나 걸리는, 얼마나 긴 거리인지 짐작도 안 되는 여정을 모터사이클로 다녀온 작가님의 이야기가 브런치에 연재되다는 걸 알았을 때, 처음 뉴스를 봤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오늘 작가 인터뷰에서는 개인적인 사심을 조금 담아서 손현 작가님의 유라시아 여정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작가님이 들려주는 긴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와 여정의 뒷 이야기를 함께 즐겨보세요.







#01

말보다는 글로 표현하는 사람

(c)Jenny Guzhva

소개를 하기 전에, 테렌스 맬릭 감독의 <트리 오브 라이프>라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할까 합니다. 이 영화는 중년의 건축가 잭이 반복적인 일상에서 어린 시절 동생을 잃은 슬픔, 엄격한 아버지에 대한 유년기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내용입니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게도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가 있을 텐데 과연 제 이야기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남들에게 흥미로운 것일까 말이죠. 그동안 다양한 도시를 여행하며 알게 된 사람들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꾸리는 것 같은데, 저는 남들과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그리 다양하지 못한 선택지 속에서 아등바등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어떤 이야기를 접할 때 그것이 좋거나 재미가 있으면 글로 쓰고자 하는 욕망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책의 어느 구절, 공연장의 어떤 장면이 마음에 들어오거나, 즐겁게 작업한 일의 결과물이나 여행 등을 통해 마주한 일상의 기쁨을 주로 글로 표현했습니다. 그걸 다른 이들과 나누고, 제 글이 창조적이며 긍정적인 기운으로 돌아왔을 때 더 큰 성장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누군가는 이 모든 걸 말로 전달하겠지만, 저는 말 주변이 부족하여 대신 글로 쓰곤 합니다. 그리고 유머 감각도 많이 부족한 것은 좀 아쉽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이지만, 훗날 제가 할아버지가 되어 손자 또는 손녀에게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블로그를 통해 이야기 들려주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내용이 변질되지 않을 수 있는 담백한 글을 지향합니다.




#02

바람을 맞으며 여행하고 싶다는 상상


모터사이클로 하는 여행 자체가 워낙 드문 경험이다 보니, 원래 모터사이클을 좋아했는지, 어릴 적부터 탔는지 질문을 종종 받았습니다. 우선 저는 모터사이클에 열광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자동차 운전 경험도 거의 없을 정도로 운전 능력이 취약하고 무엇보다 교통 정체를 싫어합니다. 대신 바람맞는 것을 좋아합니다. 온몸을 바람이 휘감으며 생각을 환기시키는 그 느낌이 좋거든요.


2012년 노르웨이 국립 관광 도로에 관한 전시를 보고 이 여행을 결심했습니다. 18개 코스에 설치된 전망대에 관한 건축 전시였는데, 그 전망대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참 근사했습니다. 그 길에서 바람을 맞으며 여행하면 좋겠다고 상상했는데, 그걸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으로 모터사이클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거기까지 달려서 또는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제 무릎과 엉덩이로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막상 모터사이클까지 장만하기는 했는데, 정말 실천에 옮길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4년 크리스마스 즈음, 모터사이클로 세계를 돌고 온 '정두용'님을 제주도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여행 중에 평생의 짝을 만나, 이제는 부부가 되어 제주 한동리에 집을 짓고 정착해 살고 있었습니다. 그를 만나 여행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 역시 모터사이클로 긴 여행을 떠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03

아직 진행 중인 나의 이야기

러시아 올혼(Olkhon) 섬에서.


3년 전, 노르웨이 국립 관광 도로에 관한 전시를 본 순간부터 상상하며 그리던 노르웨이의 풍경을 막상 마주하고 나니, 기쁨보다는 허탈함과 이후 여정에 대한 막막함 그리고 향수병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상상한 바를 너무 여정 초반에 이뤘다고 오만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비행기로 떠났던 여행이라면 모든 것을 접고 훌쩍 집으로 올 수 있었을 텐데, 제 모터사이클을 끌고 먼 북유럽까지 온 상태라서 정작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스웨덴 예테보리(Göteborg)의 숙소에서 무기력하게 저녁을 먹는 중에 프랑스 출신의 청년 소헤일(Soheyl)을 만났습니다. 그는 전에 함께 일했던 친구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그녀가 살았던 이 곳까지 뮌헨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했습니다. 안타깝게 자살로 생을 마친 친구를 위해 가족과 가까웠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생전 모습을 담은 그림을 전해줬다고 덧붙였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의 여정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게 됐습니다. 여정의 절정을 맛보았다는 허탈감 때문에 갈피를 못 잡던 저에게 각각의 여행에는 고유한 이야기가 있고, 나의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이라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04

길 위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인연은 노르웨이 노르카프 근처 호닝스버그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유렉과 루시 부부입니다. 부모님 연배의 이 두 사람은 폴란드 출신으로, 당시 핀란드에서부터 차를 렌트해서 스칸디나비아 북부를 여행 중이었습니다. 헤어진 뒤로도 유렉과 루시는 여러 차례의 메일을 통해 제 안부와 동선을 물어봤고,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폴란드 남동부에 위치한 공업도시 제슈프로 초대했습니다.


약 두 달만에 다시 만난 그들은 제가 저도 모르는 새에 입양된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극진한 대접을 해줬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유렉은 저만한 자식이 있다며 지갑에서 자식들 사진을 보여줬는데, 나중에 제가 사진 속 세 남매 중 두 명을 만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일주일을 함께 하는 동안 지갑 속 사진에 있던 막내아들과 둘째 아들을 만나 같이 요리를 하고 조깅도 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데, 저는 이들에게서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이상적인 부부와 가족의 모습을 재발견한 느낌이었습니다. 예순다섯 나이의 유렉은 루시 앞에서는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소년이었고, 퇴근 후에는 집에서 루시와 함께 식사를 하고 늘 동네를 함께 산책했습니다. 결혼 또는 학업으로 이미 분가한 자녀 셋과는 너무 소원하지 않을 정도로 만남을 유지했고요. 우리는 여전히 메일을 통해 소식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유렉은 며칠 전, 제가 보낸 (비록 한국어로 되었지만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의 사진이 담긴) 책을 잘 받았다며, 책 사진과 지난 2월에 태어난 자신의 손자 사진을 함께 보내주었습니다.




#05

깊은 꿈을 꾸다가 깨어난 기분


지난 여행이 제게 큰 영향을 준 것은 맞지만, 사실 저는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깊은 꿈을 꾸다 깨어난 것처럼 현실은 여전히 고민과 선택의 연속입니다. 대신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달라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욕심이 생겼다면, 살면서 책을 세 권 정도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책의 주제는 DUST, 먼지처럼 자유롭게 여행하던 시절의 이야기로 미메시스 출판사를 통해 지난 9월 10일 출간된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가 이에 해당합니다. 두 번째 책의 주제는 RUST, 일하면서 서서히 녹슬어가는 과정과 실패에 대한 기록입니다. 마지막은 ASH, 다시 재로 돌아가기 전에 지나온 생을 반추할 기회가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06

여행의 끝, 그리고 또 다른 여행의 시작


전에 심리학을 공부한 분에게 들은 기억이 있는데, 자신이 어릴 적 살던 곳에 다시 방문하면 그동안 한 번도 떠올리지 못했던 어떤 기억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약 기회가 된다면 유년기를 보냈던 파나마에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제 첫 기억은 파나마에서 머물던 4살 무렵이고 그곳이 어떻게 변했을지, 어떤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줄지 궁금합니다.


물론 그걸 핑계로 북미와 남미를 모터사이클로 다시 여행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그런 다짐과 결심을 함부로 밖으로 드러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모터사이클 초보로 유라시아를 몸성히 다녀온 것만으로도 운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당분간 긴 여행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일상이 계속되면 언젠가 또 바람을 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겠지요.




#07

모터사이클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c)Jenny Guzhva


모터사이클 여행은 스스로의 내면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꽤 근사한 방법의 여행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모터사이클을 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왕이면 스스로의 주변 상황이 복잡하지 않을 때, 그리고 체력이 좋을 때 출발하기를 권합니다. 저의 경우, 워낙 초보자이다 보니 별도로 도로 주행과 오프로드 교육 등 개인 교습을 따로 받았습니다. 10년 넘게 꾸준히 조깅과 수영을 해왔지만, 그 체력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여행 출발 반년 전부터는 퍼스널 트레이닝을 통해 별도로 근력 운동도 했습니다.


가죽재킷을 입고 모터사이클에 올라탄,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모습에 현혹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장시간 그 진동을 견디기 위해서는 몸의 근력과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몸을 앞세워하는 여행이기에 도중에 불의의 사고로 여행을 도중에 포기하고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막상 그런 이야기는 금세 사라집니다. 모터사이클 보호 장비와 더불어 부디 안전하게, 그리고 꼼꼼히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출발하면 절반은 성공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길에서 만나게 될
좋은 풍경과 사람들이 채워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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