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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희 Dec 04. 2019

새벽 두 시에 먹는 방어의 맛

유독 힘들었던 날엔 늦은 밤이라도 방어를 먹어요

그날은 밤 12시가 되도록 도무지 일이 끝나지 않는 날이었다. 다가오는 프로젝트를 코 앞에 두고, 마치 일밖에 모르는 것처럼 무자비하게 하루를 일에 쏟아냈다. 하루 이틀 정도면 괜찮았을 텐데 연이은 야근에 눈꺼풀도 감기고 허리도 뻐근하고 슬금슬금 짜증도 났다. 캄캄한 사무실에서 스탠드 조명을 켜고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이 지금 여기 두 명. 나와 동료였다.


결국 우리는 새벽 1시 반이 되어서야 노트북을 닫고 터덜터덜 퇴근을 했다. 너무 집에 가고 싶은데 정말 이렇게는 가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집에 가서 자버리면 내 하루가 일과 잠으로 밖에 이루어지는 것 같아 이 사이에 꾸역꾸역 무언갈 끼워 넣고 싶었다. 낮에 본 붉은빛 방어 생각이 났다. 그래 요즘은 방어 철이라던데.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툭, 하지만 진심을 담아 말을 꺼냈다. “우리 방어 먹고 들어갈래?”


뭔 소리야, 라며 이상한 눈빛을 보내긴커녕 내 동료는 한쪽 눈을 들어 올리며 “방어?”하고 말했다. 정말 나랑 통한다니까. 우리는 지금 이 시간, 오직 방어를 파는 가게를 미친 듯이 찾았다. 우리 이 시간에 방어 먹는 게 맞는 걸까? 하면서도 손은 방어 파는 횟집을 찾고 있었지. 막상 네이버에 영업 중이라고 떠있어도 방심은 금물. 직접 전화해서 영업 중인지 확인해봐야 한다. 안 그러면 낭패 볼 수 있거든. 시간은 벌써 2시. 이 시간에 회는 무리인가 하는 순간! 낙성대에서 심야 횟집을 발견했다! 기사님, 바로 낙성대역으로 가주세요!


우리가 찾은 횟집은 지하 1층에 있는 횟집이었다. 약간 후미진 곳에, 약간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며 괜스레 의심이 들었다. 입구에 들어가니 약간 비릿한 냄새가 나며 꽤 아늑하고 근사한 공감이 나타났다. 어둑어둑한 조명에, 혼자 회를 먹고 있는 여자분이 계셨고, 사장님은 오픈형 주방에서 달그락달그락 그릇들을 치우고 계셨다. 늦은 , 하루  마무리로 회를 먹기에  좋은 그런 . 우리가 찾던 곳이었다.


방어 한 접시, 새우튀김 그리고 오늘만큼은 달짝지근한 청하 한 병. 방어가 나올 때까지 각자 오늘 하루 얼마나 내가 힘들었는지를 토해냈다. 회사에서는 꾹꾹 눌러 담고 있던 말들이 거침없이 입 밖으로 쏟아졌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과 그걸 또 잘 해내고 싶은 우리의 마음이 충돌해서 몸이 너덜너덜해지는 거다 하고 토로했다. 꼴꼴꼴 맑은 소리를 내며 청하를 따르고 한잔 꼴깍하니 캬 장난 아니다.


주문한 방어가 나왔다. 붉은빛이 도는 방어 한 점 입에 넣으니 진짜 행복이 따로 없다. 오늘 하루 종일 먹고 싶었던 방어, 너야말로 나를 위로해주는구나. 방어 한 점. 청하 한잔. 방어 한 점. 청하 한 잔. 동그랗게 뭉쳐주신 밥덩이에 와사비 조금, 방어 한 점을 올려 초밥처럼 먹는 것도 별미다. 알싸한 맛이 나는 고추도 몇 개 올려서 먹으면 또 다른 맛이 난다. 새우튀김은 또 어떤가. 바삭바삭하고 따끈할 때 먹어야 맛있는 새우튀김. 이것도 시키기 잘했네.


혹시 IT 쪽에서 근무하세요? 사장님의 질문이었다. - 엇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 IT 쪽 사람들이 야근이 많더라고~

- 아..(씁쓸)

씁쓸한 마음에 청하 한 병을 더 시킨다. 내일 출근은 일단 모르겠고 청하를 꼴깍꼴깍 삼킨다. 딱 기분 좋게 취하니 이제 자도 될 것 같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도 뭔가 부족했던 그 찜찜한 기분은 사라지고 하루를 보람차게 보낸 느낌이 드디어 든다. 이제 집에 가도 될 것 같아.  상태로  잠들면 너무 기분 좋을  같아.


방어는 원래도 맛있지만 고된 하루를 보내고 먹은 방어는 참말로 맛있었다. 우연히 그리고 급작스레 간 곳 치고 뭔가 나만을 위한 심야식당 같았던 곳. 우리만 있는 것 같은 분위기, 맛있는 회와 튀김, 무엇보다 이런 느지막한 시간에도 방어를 파는 곳이 동네에 있다는  정말  위로였다. 약간 변태 같지만 이런 맛에 또 야근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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