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자, 소원 빌어.
우리는 살면서 꽤나 자주 소원을 비는 순간을 마주한다. 생일 케이크 앞에서, 보름달 아래서, 새해 종소리를 들으며 자연스레 두 손을 모은다.
그럴 때마다 늘 고민이다. 뭐라고 하지? 일단 노력해서 해결할 수 있는 건 패스. 그렇다면 나의 능력에서 벗어난, 그야말로 내가 소망하는 것들을 생각해 본다. 건강, 행복 같은 것들. 아무리 애쓴다 해도 한 번 삐끗하면 어긋난 버릴 수 있는 것들.
소원을 비는 시간은 길게 주어지지 않으니 정리도 되지 않은 생각들을 줄줄이 읊는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주세요. 저랑 제 가족들이요. 제, 주위 친구들도. 아, 그리고 로또 당첨되게 해 주세요. 신이 있다면 팔짱을 끼고 눈을 흘길 게 뻔하다. 자기 소원을 빌어도 모자랄 판에 가족, 친구들까지 챙기냐며. 염치없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꿋꿋하게 같은 소원을 빌고 또 빈다.
올해 10월, 태국 치앙마이에 다녀왔다. 불교 국가답게 도시 곳곳에 사원이 많았고 나도 제법 많은 절을 방문했다. 그중 특히 화려한 절이 하나 있었는데, 그 한쪽에는 우물이 있었다. 중앙엔 사람들이 던진 동전이 수두룩했다. 서양의 트레비 분수 못지않았다.
자신의 십이지신 앞에서 소원을 빌고 동전을 던져서 정중앙에 들어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당장 주머니에 있던 동전을 꺼내 돼지 앞에 섰다. 뭐라고 해야 하지? 잠깐 고민했지만 결국 늘상 외던 그 내용들이다. 생일 소원이나 보름달 앞의 소원과 다를 것 없었다. 다만 이번엔 '부처님'이라는 분명한 대상을 떠올리며 동전을 던졌을 뿐이다.
동전이 물에 빠지는 경쾌한 소리가 났고 나의 동전은 정중앙에 안착했다. 주위의 모두가 나를 축하했다. 이렇게 한 번에 소원 성취라니. 아- 조금 더 구체적이고 많은 양의 소원을 빌 걸 그랬나.. 근데 여기 태국인데 부처님이 내 소원 알아들었을까?
부처님이 들으면 어이가 없을 생각들을 하며 조금 더 걸으니 태국어가 적힌 연등이 빼곡했다. 절의 한쪽을 채운 소원들을 보며, 아니 이게 다 얼마야-라는 자본주의적 생각과 동시에, 과연 이 소원들이 얼마나 이루어졌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등이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저마다 다르겠지. 바람이 불자 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모두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소리이길 바랐다.
아마 나는 올해도 내년에도 그 내년에도 비슷한 소원을 빌겠지. 건강과 행복. 참으로 단순해 보이지만 저 단순한 것 하나 해내기가 그토록 어렵다는 걸, 우리의 삶은 때때로 뒤통수를 친다는 걸 한 해가 가면 갈수록 깨닫게 되니까, 소원을 빌어서라도 이루어졌으면 한다. 내가 내내 빌었던 소원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때때로 행복한 순간들이 찾아오는 걸 보면 아예 실패하지는 않았나 보다 싶다. 다만, 조금 더 확실하게 이루어지길 바라본다. 기도빨이 부족했나. 다음엔 조금 더 성심성의 껏 소원을 빌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