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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랑 Mar 05. 2017

#3 상실감과 함께 내게 다가온 것들.

새로운 인연이 오기를 기대하는 내 자신이 싫다.

作心三日.

직업적 글쓰기와 개인적 글쓰기를 병행하겠다던 결심이 며칠만에 무너졌다. 

사실 변명을 대라면 많이 댈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겁쟁이고 최소한의 자존감을 지키며 자신을 잃고 싶지 않은 에고이스트(Egoist)니까.


 가을이 이별의 계절이라면, 겨울은 멈춤의 계절이다. 잠시 겨울잠을 통해 다음 봄을 기다리기 위해 멈추는 계절.


마음 속 한켠을 지지하던 무언가가 갑자기 사라지는 상실감을 경험하고 오랜 시간 힘들어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이 아팠다. 차라리 나의 잘못된 언행으로 일어난 일이었다면 스스로를 책망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잘못한 사람이 없었다. 비난의 화살을 돌릴 곳이 하나도 없었다. 주어진 상황이 너무나도 절망적이었다. 더 슬펐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운명의 장난이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나보다. 더 이상 나에게 인연이란 없을 거라고 믿었다. 핑크빛으로 빛나던 내 인생은 검은색 회색도 아닌 아무 색도 칠해지지 않은 빈 종이로 바뀌었다. 매끄러웠던 그 종이의 질감이 한라봉보다 더 까끌가끌 우둘투둘해졌다. 



마음이 허하니 다른 것을 아무리 채워도 메꿔지지 않았다. 평소에 먹고 싶었던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 자리를 메꿔줄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말짱 도루묵이었다. 그보다 나의 마음에 더들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자꾸 생각이 날뿐이었다. 매일 밤마다 수건을 위에 깔지 않고서는 베개가 너무 축축해져서 도통 벨 수 없었다. 혹여나 울음소리를 가족 중 누군가가 들을까 소리내 울 수 없었다. 아무런 외침 없는 슬픈 곡소리가 매일 계속됐다. 


머릿 속도 온통 그 생각으로 가득했다. 일을 하거나 누군가를 만나고 영화를 보며 무언가를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여유 시간이 생길 때마다 내가 맞닥뜨린 상황에 눈물 흘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런 창조적인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생각하려면 할수록 자꾸 모든 결론이 그쪽으로 흘러가 버린다. 그럴 때는 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 의식하면 할수록 더 힘들어지니까, 아예 의식조차 하지 못하게 아무 생각을 안 하는 거다.


'공깨비(공유 도깨비)'의 주옥같은 대사와 슬프면서 따뜻한 눈빛에 힘을 많이 얻었다♡


이런 시간을 보낸지 어연 세 달 가량. 그동안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게도 신세를 좀 졌고,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별들의 도시도 거들었다. 곳곳에 등장하는 귀여운 피카츄도 잠시나마 위안이 됐고,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떠난 여행에서 발생한 우연과 인연이 잊고 있던 것들을 일깨워줬다. 


그러고 나니 조금은 정신이 차려진다. 폐인처럼 지내는 날들을 보내고, 스쳐가는 인연들을 보내고 나니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됐다.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기대를 하지 않게 된다. 모든 것은 에서 시작할 때 가장 마음이 편하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인연이 더 조심스러워진다. 기존에 알고 지내던 인연들이 더 소중해지지만, 기대는 버린다. 내가 무언가를 해준다고 그들이 나에게 무엇을 해줄거라는 기대를 버린다. 그러다보니 인간에 대한 기대도 사라지게 된다. 나에게 남은 건 더 비워야할 그릇뿐이다.


 '(언젠간) 좋은날이 올거야' 라니... 이런 식의 격려문구를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말이라도 의지하고 싶었나보다.


사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의식의 흐름대로 작성한 글이다. 많은 사람이 읽지도 않을 이 브런치에 그나마 쓰겠다고 마음먹는데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어쩌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고 자진신고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저 이 글이 다시 꾸준히 브런치에 글쓰는 계기가 되길 소망해본다.


March 5th,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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