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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 비옥한 땅의 비밀

지리산 자락의 전설, 방광리의 유래를 아시나요?

by 진솔

좌석버스 안 오른 쪽 여덟 번째 좌석에 앉아 있던 그는 한 시간째 다리를 꽉 꼰 채로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옆에 앉은 여자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되도록 천천히 고개를 창가 쪽으로 살짝 돌려 낮은 날숨을 내뱉었다. 오른쪽 다리를 내려놓고 왼쪽 다리를 올려 다리를 꼬았다. 그런데 더이상은 참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이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 한계점에 다다랐다.


그는 옆좌석 여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한데 잠시만.”이라고 하며 몸을 일으키는 시늉을 하자 그녀가 무릎을 왼쪽으로 틀어 길을 내주었다. 그는 지금 인생 최대의 도전을 하려는 중이다. 이 버스는 삼심 분쯤 뒤에 휴게소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승객들이 십오분 동안 화장실에 갔다오거나 요깃거리로 허기를 달래거나 한 뒤 다시 두 시간 즈음 달려서 목적지인 순천에 도착할 것이다.


동사무소 직원인 그는 평생을 소심하게 살아왔다. 출근한 그가 반짝이는 미소로 상사에게 인사했는데 상사가 무표정이라거나 후배 직원이 자신에게 대답할 때 뒷말을 흐리며 ‘요’를 제대로 안 붙였을 때 그는 항상 지나치게 의기소침해졌다. 무표정한 상사에게 일부러 쓸데없는 업무 이야기를 하거나 후배 직원에게 말을 다시 걸거나 해서 미소 또는 ‘요’자를 받아내야 비로소 그의 마음은 편안해지곤 했다.


그는 자기 앞 좌석들을 지나쳐 기사에게로 가고 있었다. 식은땀이 났다. 좌석에 빼곡히 앉아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 했다. 그의 옆 얼굴과 뒷통수가 뜨거웠다. 하지만 그는 가야 한다. 그는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게 죽을 만큼 두려웠지만 방법이 없었다.


사실 버스 기사는 룸미러를 통해 어떤 남자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두 손을 핸들에 얹어놓고 앞만 주시하고 있는 그는 이번에도 단호하게 대처하리라 마음 먹었다. 어디 한 두번인가? 그는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큰 일이 난 적은 여태까지 한 번도 없다. 그는 무조건 삼십 분 후에 휴게소에서 모든 승객들에게 십오분 동안의 자유를 허락할 것이다.


남자가 그에게 다가와 몸을 숙이며 속삭였다.


-저기.. 죄송한데 지금 좀 ..

-뭐요?

-죄송한데 제가 지금 좀 ..

-네?

-그게 아니고 좀 급해서 그런데 죄송하지만

-뭐요?

-좀 내릴 수 있을까요?

-네? 여기서요?


버스 기사의 냉랭한 대응에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다시 몸을 틀었다. 자리로 돌아가는 길 또한 죽을 것 같다. 옆좌석 여자는 다시 무릎을 왼쪽으로 돌려 길을 내준다.


“죄송합니다.”


그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앉는 순간 방광에 자극이 왔다. 그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상체를 숙이고 잽싸게 다리를 꼬았다. 그는 울기 시작했다. 혹시 눈물을 배출하면 요의가 좀 사라질까. 눈을 질끈 감고 흐느끼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눈물이 양 쪽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하자 창가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남자의 나이는 서른 다섯. 직업은 공무원인 이 남자는 차라리 그냥 순천시까지 걸어가는 게 낫겠다 싶다. 입술을 꽉 깨문다.


오 분 뒤 그는 옆좌석 여자에게 다시 양해를 구한다.


“정말 죄송한데.”


여자는 이번엔 좀 짜증스러운 듯 그에게 눈을 한 번 흘기고는 얕은 숨을 내뱉으며 무릎을 옆으로 돌린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방광에 힘을 주고 겨우 일어섰다. 다시 최선을 다해 버스 기사 쪽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발걸음을 뗀다. 버스 기사는 또 걸어오는 남자를 보고 화가 치밀어오른다. 남자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무심히 전방을 주시하고 있던 버스기사가 고개를 살짝 돌려 말했다.


“손님, 여기 내려서 볼 일 보실 데도 없고요. 이제 십오분이면 휴게소 도착해요. 조금만 참으세요.”


남자는 눈썹을 찌푸린 채 입을 달싹거린다


”저... 죽어요.“


버스 기사가 룸미러로 그의 얼굴을 쳐다본다.


”십 분 안 돼요?“


그는 이제는 대답도 할 수가 없다.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온힘은 방광에 쏠려 있다. 버스 기사가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하 진짜 십 분 있으면 도착하는데.“


이 남자가 심각하긴 하구나. 버스 기사는 생각했다. 버스 기사가 다시 앞을 보는 순간 앞 차와의 간격이 너무 좁아 급 브레이크를 밟아버렸다. 그 순간 터졌다. 남자의 방광이 터져버렸다. 그 지점. 남자의 방광이 터져버린 그 위치가 바로 방광리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방광리는 사방으로 터진 남자의 오줌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땅이 그렇게 비옥하다는 썰이 전해 내려온다.






*전남 구례군 광의면에 '방광리'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방광리'라는 재밌는 지명을 듣고 어떻게 이런 이름이 붙여졌을까를 상상하며 '방광리 탄생기'를 픽션으로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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