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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얼마 주면 먹을 수 있어요?

영화 『기생충』이 건드린 감정

by 진솔

충정로역 6번 출구로 나가던 길이었다. ‘<기생충> 촬영지’라는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먼저 도착해 있던 친구에게 “여기가 기생충 촬영지야?"라고 물었다. 이 근처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는 익숙한 듯 손가락으로 언덕을 가리켰다. “위쪽으로 가면 나와.” 나는 비탈진 언덕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여기 살면 헬스장은 안 다녀도 되겠네.”


tempImagelNUUay.heic 영화 <기생충> 속 동네. 왼쪽엔 슈퍼, 멀리엔 기택네로 향하는 계단길이 보인다.


알고 보니 <기생충>에 나왔던 슈퍼와 기택네 동네 계단길은 마포구 아현동에서 촬영한 것이었다.


<기생충>은 ‘계급 갈등’이라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문제를 정면 돌파한 영화였다. 친구는 그 영화가 불쾌했다고 말했다. “나는 예술이 가난한 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친구는 영화가 가난한 사람들을 안 좋게 묘사한 데에 불편함을 느낀 듯했다.


실제로 <기생충>은 가난한 인물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이기심과 위선, 폭력성까지 낱낱이 드러낸다. ‘가난한 사람 = 착한 사람’이라는 공식은 영화 속에서 완전히 무너진다. 그런데 오히려 나는 그 점 때문에 영화가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어쩐지 불편한 감정이 남아 있었다.


복숭아 알러지로 쫓겨났던 가정부 '문광(이정은)'을 기억하는가? 비오는 밤, 그녀는 자신이 일했던 그 집의 초인종을 누른다.


tempImagejjCkYQ.heic 비 오는 밤, 초인종을 누른 문광의 얼굴


젖은 파마머리에 멍든 얼굴. 그녀는 그 집 지하실에 숨어 사는 남편(박명훈)에게 음식을 전하기 위해 다시 그 집을 찾은 것이다.


두손 모은 문광.png 젖은 파마머리, 멍든 얼굴. 두 손을 모은 문광


그녀는 사채업자에게 쫓기던 남편을 자신이 일하는 집 지하실에 숨기고 돌보며 지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해고 당하면서 남편과의 연결이 끊겼다.


지하실에 사는 남편은 괴이한 눈빛으로 천장을 올려다본다.


tempImageavIfsi.heic 지하실 어둠 너머, 눈만 보인 채 떠오른 남자의 실루엣


비 오는 밤 지하실에서 눈을 부릅 뜨고 나타나는 장면, 센서등 스위치를 이마로 쳐서 피를 흘리는 장면, 대낮에 칼을 들고 정원으로 걸어가는 장면은 모두 섬뜩했다.


tempImage1RCmMr.heic 얼굴에 피를 뒤집어쓴 채, 정원으로 걸어 나가는 남자


봉준호 감독은 그 장면들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자 한 걸까. 그들을 괴물처럼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 관객은 그 장면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껴야 했을까.


그 장면을 보며 오래된 기억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tempImage6X161I.heic 기억 속 리어카 떡볶이를 닮은 떡볶이


나는 그런 존재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대학생 시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리어카 떡볶이 집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조부장 떡볶이’였다. 딱 회사 부장님처럼 생긴, 네모난 안경을 쓴 아저씨가 진한 고추장 양념의 길쭉한 가래떡 떡볶이를 팔았다.


그 시절 대부분의 떡볶이가 주황빛 밀떡이었지만, 그 집은 빨갛고 쫀득한 쌀떡이었다. 떡볶이는 양념이 속까지 잘 배어 있었다. 가래떡 하나에 천 원. 겨울 저녁, 그 리어카 앞을 그냥 지나친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날도 나는 떡볶이를 주문하고 리어카 옆쪽에 서 있었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키는 꽤 컸고, 행색은 초라했으며, 어딘가 돌발 행동을 할 것 같은 기운을 풍겼다. 그는 눈짓으로 떡볶이를 가리키며 조부장에게 물었다.


이거… 얼마 주면 먹을 수 있어요?

평소 씩씩하고 친절했던 조부장 아저씨는 순간 굳은 표정을 지었다. 복화술을 하듯 “천 원이요.”라고 말하는데, 팔기 싫은 기색이었다. 남자가 그냥 지나가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남자는 오른쪽 주머니에서 백 원짜리 동전을 한 움큼 꺼내 왼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동전들을 일렬로 세워가며 하나하나 세기 시작했다.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이럴까 싶어, 내가 대신 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나를 주목하고 쳐다볼까 봐 두려웠고, 혹여나 내 얼굴을 기억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천 원으로 무슨 거창한 호의라도 베푸는 것처럼 보일까 봐 민망하기도 했다. 몰래 조부장에게 천 원을 건넬 수도 없었다. 어쨌든 마음이 무척 불편했다.


내가 망설이는 사이, 그는 결국 백 원짜리 동전 열 개를 내밀었고, 조부장은 마지못해 떡볶이를 건넸다. 그가 떡볶이를 허겁지겁 먹었는지, 천천히 음미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얼마나 떡볶이를 간절히 원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의 눈에 띄지 않고 대신 내줄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그 순간만큼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는 “떡볶이 얼마예요?“가 아니라
“이거... 얼마 주면 먹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아직도 그 말을 떠올린다.


그런 기억이 또 있다. 좁은 통로에서 산발 머리를 하고 벽을 보고 서 있던 남자, 동네에서 '미친년'이라 불리던 여자 노숙자. 남자 옆을 지나가야 했을 때는 식은땀을 흘렸고,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소리를 지르던 그 여자는 피해 다녔다.


‘조부장 떡볶이’의 남자와 통로의 남자, '미친년'이라 불리던 여자와 <기생충> 속 지하실 남자. 그들은 모두, 내가 보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이었다. 사회의 경계 밖에 있는 것 같은 존재들. 나는 그들을 사람처럼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과 마주한 나 자신에게서도 눈을 돌리고 싶었다.


친구는 <기생충>이 가난한 사람을 나쁘게 그려서 불쾌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가정부와 그의 남편을 괴물처럼 느꼈다는 사실이 불편했고, 혼란스러웠다.


노숙자나, 몇 년은 씻지 않은 듯 행색이 지저분한 사람, 소통이 불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을 보면, 지금도 나는 피하고 싶어진다. 그건 분명 어떤 종류의 혐오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것이 혐오인지, 공포인지, 나 자신의 나약함 때문인지, 혹은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무력감 때문인지를.






*다음Daum 지식토스트에 게재한 글입니다.

https://v.daum.net/v/5CMZy0iB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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