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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만 원 가질래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by 진솔

어느 부잣집 아이들 과외를 한 적이 있다. 그 집 한쪽 벽면에는 주황색과 검은색 명품 박스들이 가득 쌓여 있었고, 처음 만났을 때 남매 중 동생인 여자아이는 샤넬 로고가 박힌 크롭톱을 입고 있었다.


주황색과 검은색 명품 박스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_ChatGPT 생성 이미지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에 데려다주는 전담 기사가 있었고, 내가 아이들 방에서 수업하고 있으면 소리 없이 들어와 물건을 정리하는 청소 도우미도 있었다.


남자아이는 열세 살, 여자아이는 열한 살이었다. 둘 다 책 읽기를 싫어했다. 수업 태도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좋지 않았다.

처음 갔던 날엔 여자아이를 먼저 만났다. 읽어오라고 한 책을 읽지 않았으면서도 읽었다고 태연하게 거짓말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겠구나. 그런데 그날, 오빠인 남자아이가 내 심금을 울리는 바람에 이 남매를 계속 만나게 되었다.

한 번은 여자아이가 다짜고짜 말했다.


선생님, 1번, 2번 중에 골라보세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수업의 흐름이 끊겼고, 대충 넘기려는 마음으로 "1번"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이가 책상 서랍에서 지갑을 꺼내 오만 원을 내게 내밀었다.


여자아이 오만 원.PNG 아이 손에 들린 오만 원_ChatGPT 생성 이미지


왜 갑자기 돈을 주니?


내가 묻자 아이는 말했다.


선생님, 그냥 가지세요. 우리 집 돈 많아요.


이런 아이는 처음이었다. 돈의 위력을 뼛속까지 체득한 이 아이에게 도덕적 설교는 통할 것 같지 않았다. '네 방식은 알겠지만, 나한텐 안 통해.' 나는 그걸 분명히 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말했다.


선생님도 돈 많아.


그리고 아이에게 다시 돈을 집어 넣으라고 했다.


아이들은 나 말고도 과외 선생님이 여러 명이었다. 한 번은 여자아이 방으로 가려는데, 복도 피아노 의자에 다른 선생님이 앉아 있었다. 방 안에서는 남자아이가 또 다른 선생님과 수업 중이었고, 복도에 앉아 있던 선생님은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여자아이 수업을 마친 뒤 곧바로 남자아이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어느 날, 남자아이에게 왜 책을 못 읽었냐고 묻자, 아이가 울면서 말했다.


저 시간이 없어요. 매일 학원 가야 돼요. 주말에도 못 쉬어요.

남자아이.PNG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아이_ChatGPT 생성 이미지


이전에는 수업 중에 이명 증상을 호소한 적도 있었다. 텍스트 분량을 줄이고 짧은 글을 함께 읽기로 했지만, 아이는 수업 중 졸기도 했다.


이 아이와 처음 만났을 때, 다시 만나기로 마음먹었던 건 아이와 나눈 대화 때문이었다. 아이에게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뻔한 말 대신, 그저 나자신이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말했다. 그러자 아이가 물었다.


만약 평생 책을 못 읽는 거랑 아들이랑 못 만나는 거 중에 선택해야 된다면 뭘 고를 거예요?


나는 책을 못 읽는 게 엄청 괴롭겠지만 당연히 아들이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은 아들이 잘못했을 때 때리진 않죠?


나는 멈칫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니, 때리지 않아.


아이의 질문은 이어졌다.


아들을 때리는 게 정상이에요?


나는 분명히 말했다.


아니. 정상 아니야. 때리면 안 돼.


아이는 엄마가 자기를 때린다고 했다.


내게 아이 엄마는 여느 학부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당히 예의 있었고, 일정에 따라 수업 조율 연락을 하는 정도였다. 수업을 하다 보면, 엄마가 남매 중 한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 뒤로도 남자아이는 '엄마가 동생만 예뻐한다', '엄마가 화냈다', '때렸다' 같은 말을 했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이의 말 속 상황들이 너무 구체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집에 고용되어 간 사람이었다. 아이를 구출해줄 수도, 데려다 키울 수도 없었다. 내 역할의 한계는 명확했다. 결국 아이의 보호자는 엄마였다.

아이 엄마는 눈에 띄는 미인이었다. 아이의 얘기를 듣고 잠시, '이 아이는 친자식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지만 곧 접었다. 아이 얼굴이 엄마를 너무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동생보다도 더 닮았고, 그래서 잘생겼다. 언젠가 내가 아이에게 엄마를 닮았다고 하자, 아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싫은 티를 역력히 냈다.

아이는 불행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부유한 집에, 얼굴도 잘생긴 이 아이는 거의 다 가졌구나. 이런 환경이라면 뭘 하든 원하는 일에만 몰두하며 살 수 있을텐데. 하지만 아이는 고통스러워하며 내게 엄마가 아들을 때리는 게 정상인지를 거듭 묻는 거다.

아이가 질문할 때마다 나는 무력해졌다. 그리고 정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분명히 말하되, 주어는 뺐다. 물론 결국 같은 말이긴 하지만, 나는 어차피 아이 인생에서 스쳐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엄마가 나쁜 사람'이라고 다른 어른한테 확인 받는 게 먼훗날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아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런 행동은 비정상'이라는 사실만큼은 아이가 알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언젠가 스스로 뚫고 나올 수 있다.

공감하고 위로한다고 해도, 결국 나는 선생이었다. 책을 읽게 하고 글을 쓰게 하는 사람.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 유발자였다. 어쩌면 아이도 수업하기 싫어서 자기 얘기를 종종 꺼낸 걸지도 모른다. 이대로는 수업을 지속하는 게 무의미했다.

사실 그전에도 아이들의 의욕 부족과 태도 문제로 엄마와 상담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계속 수업해달라는 요청에 억지로 이어가고 있던 셈이었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나라도 빠져주는 일이라고. 아이에게 시간을 돌려주기로 했다. 엄마에게는 개인 사정이 있어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혹시 다른 선생님을 추천해줄 수 있는지를 물어왔다. 아, 내가 빠진다고 해서 그 시간이 비는 게 아니었구나.

내가 수업을 못한다고 하자, 조금 서운하게도, 남자아이는 너무 좋아했다. 화색이 도는 얼굴로 "언제가 마지막 수업이에요?"라고 물었다. 반면, 의외로 여자아이는 아쉬워했다. 사실 여자아이는 안 하려고 해서 그렇지, 머리는 좋은 아이였다.

요즘도 그 아이들 집 쪽을 지날 때면 혹시나 아이들이 보일까 흘깃 보게 된다. 하지만 그 뒤로 한 번도 만난 적은 없다. 가끔은 생각한다. 선생님이 아니라, 그냥 동네 어른으로 만났으면 어땠을까. 남자아이는 맥도날드를 좋아했고, 여자아이는 편의점 간식을 자주 사먹었다. 우연히 아이들을 다시 마주친다면,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이나 사주고 싶다.

그만둔 지 한 달쯤 됐을 무렵, 여자아이에게 문자가 왔다.


선생님, 잘 지내요?


생각해보니, 여자아이가 연락처를 물어봤던 적이 있었다. 나는 잘 지낸다고, 너도 잘 지내냐고 물었더니, 아이에게 다시 답장이 왔다.


그럼요.


어쩌면, 내 앞에서 울었던 날도 있었고, 새 농구화를 자랑하기도 했던 남자아이는 나를 잊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만 원 가질래요?"라며 당황시켰던 여자아이는 뜻밖에도 나를 오래 기억했다.


아이들은, 겉만 봐선 정말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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