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로봇 전문가, 고경철 박사에게 듣는 로봇과 미래
미래 산업은 인공지능(AI)과 로봇공학의 기술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영테크놀러지는 2002년에 설립된 IT 기업으로 인공지능 기반 검사장비를 주축으로 한 중견기업이다. 고광일 대표이사와 함께 창업멤버로 기초를 다진 이가 고경철 박사다. 2003년 세계 최초로 3D 납도포 검사기(SPI, 인쇄 품질 검사 및 인쇄 공정의 검증 제어)를 출시했고, 2006년부터 3D SPI 부문 시장점유율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True 3D’를 사업모토로 AI로봇 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이룬 고영테크놀러지는 2008년 코스닥에 상장됐다. 고경철 박사는 기술고문으로 신사업 브레인 역할을 한다. 정부가 로봇 진흥을 본격화한 2000년대 초부터 정부 정책 기획에 깊이 관여해 온 고 박사는 한국 대표 로봇 전문가로서 고영테크놀러지의 기술 기획, 전략 수립, 미래 산업 예측 등을 총괄 지휘해 왔다.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학계 및 산업계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를 용인의 고영테크놀러지R&D센터에서 만났다.
한국 로봇의 대표 공학자
고 박사는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정밀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LG전자를 거쳐, LG산전연구소 로봇연구실장을 역임하면서 산업용 로봇 개발을 총괄했다. LG종합기술원으로 옮긴 뒤 지능형 로봇 기획을 주도하며, 로봇산업이 향후 제조업용 로봇에서 서비스 로봇 중심으로 확대돼 교육, 의료, 국방 등 산업 전반에서 요긴하게 쓰일 것을 전망했다. 눈앞에 온 로봇시대를 대비해 국가 로봇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연구 및 제안, 지능형 로봇 기획과 기술위원으로 활동해 왔다.
고 박사는 자율이동로봇을 위한 경로 제어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등 로봇 관련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세계 3대 인명사전의 하나인 미국의 ‘마르퀴즈 후즈 후 인더월드(Marquis Who’s who in the World)’ 2010년 판과 ‘마르퀴즈 후즈 후 사이언스 앤 엔지니어링(Marquis Who’s who in Science and Engineering)’ 2011~2014년 판에 5년 연속 등재된 바 있다. 지난 10월 기계로봇항공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매출 1조 회사와 모두에게 유익한 로봇시대를 견인하는 꿈
고 박사는 고영테크놀러지에서 15년간 사외이사로 활동하며 대학 강의를 겸하다가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기술고문 전무를 맡았다. 고영테크놀로지는 반도체 검사를 비롯한 산업용 기술과 정밀하고 실수 없도록 뇌수술을 돕는 의료용 기술, 두 부문으로 글로벌시장에서 경쟁 중이다. 450여 명의 임직원이 매출 2,500억 원을 달성했다.
고 박사의 안내로 견학한 R&D센터 연구실, 사무실, 실험실의 여러 공간에서 첨단 산업을 주도하는 진가를 볼 수 있었다. 반도체의 불량률을 제로로 만드는 검사장비로 세계 1위의 한국 반도체 품질을 견인하는 고영테크놀러지R&D센터의 위용은 대단했다. 창업 후 역대 대통령마다 수상한 산업계 훈장 수훈과 각종 수상으로 그동안 첨단 산업의 첨병으로 얼마나 큰 성과를 이뤄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제 꿈은 기업 가치 1조를 넘어 매출 1조의 회사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회사 규모를 키운다는 건 그만큼 회사의 안정성을 높이고 일자리 창출 효과도 커진다는 의미죠. 한국의 중소기업은 대부분 매출 1조 미만입니다. 독일은 매출 1조인 회사부터 중소기업으로 인정하죠.”
고 박사는 독일, 일본의 AI로봇과 경쟁하며 신사업 발굴이 필요하다는 전략을 세웠다. 10년 전 고영테크놀러지의 핵심역량인 반도체 검사 로봇 기술력을 발판으로 의료로봇 분야를 개척했다. 불량률을 잡아내는 AI로봇 기술력을 가진 회사가 의료용 로봇을 만들겠다는 건 쉽지 않은 발상이다. 그러나 고 박사는 “세계가 4차산업 혁명시대에 접어들며 숨 가쁜 속도로 과학기술이 혁신하는 현실에 제조강국 대한민국은 로봇인들이 더욱 기술혁신을 주도할 때입니다. 지금의 산업화 시대를 선대들의 노력으로 누려왔듯 우리 후세들이 시대를 주도하는 길을 AI와 로봇으로 열어주어야 합니다”라고 공학자로서 책임 있는 의지를 표명했다.
로봇산업에서 의료산업의 성공 사례를 만들다
우리나라 로봇 혁신에 인생을 바치고 있는 그는 왜 의료분야에 집중했을까?
“저는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경영 기획에 많은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불량률 제로를 일군 로봇 검사장비 기술력이 핵심역량인 IT기업에서 의료분야 진출은 연관성이 없죠. 그러나 매출을 늘리는 회사로만 자리매김하기보다 인류에게 유익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공익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뜻을 같이한 대표님의 동의를 얻어 10년을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2020년에 지능형 정위 로봇 신경외과 가이드 시스템, 카이메로(KYMERO)를 출시했습니다.”
카이메로는 실수가 없어야 하는 정밀한 뇌수술을 돕는 AI로봇 의료장비다. 현재 국내외 여러 대학병원에서 도입하고 있다. 조만간 유수의 대학병원 신경외과 수술실에 카이메로가 들어가 사용될 예정이다. 독일과 일본이 주도하는 AI로봇 의료시스템을 한국의 고영테크놀러지가 대체하고 있다. 놀랍게도 카이메로는 뇌수술 성공의 기대치를 넘어 의대생의 진로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의대생들은 성형외과, 피부과 등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과에 지원하는 경향이 있죠. 그런데 게임을 즐기며 자란 MZ세대 의대생들은 카이메로를 사용해 어려운 신경외과 수술을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해내는 데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신경외과 지원율이 점차 늘고 있다고 합니다. 즉, 로봇 기술력이 해당 산업 종사자의 선택권을 변화시키는 일을 끌어낸 것입니다.”
하드웨어는 세계 최고인 K-기술의 한계
한국의 로봇기술력은 어느 수준일까? 고 박사는 한국의 로봇 하드웨어 기술력은 세계 탑티어라고 한다.
“이른바 K-팝에 비견해 K-기술이라고 할 만큼 발전 속도와 품질은 글로벌에서 인정합니다. 최근 전쟁 분위기에서 한국의 자주포 성능은 무기 선진국들을 압도합니다. 일제 로봇과 30년 격차에서 시작했지만 현재 우리가 정상급입니다. 하드웨어 기술력에서는 전혀 밀리지 않죠.”
한국은 아이티 강국으로서 하드웨어 인프라를 최대한 이용하고 있지만, 아마존, 페이스북,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기업은 콘텐츠와 소프트웨어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고 있다. 반편 한국의 인공지능과 로봇은 하드웨어 위주로 발전해 왔다. 소프트웨어의 AI 기술력은 중국에 역전당할 만큼 뒤처져 있다. 고 박사는 이에 대한 정부의 투자와 정책 변화, 로봇 연구자들의 연구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드웨어 기술만 앞선다고 로봇 선진화가 되거나 산업 응용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로봇기술이 세계 인류가 되는 데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좌우의 힘찬 날갯짓으로만 비상할 수 있다. 이미 디제이 정부부터 IT벤처기업 붐이 일며, 굴뚝산업은 위축될 것으로 전망했다. 소프트웨어 기술과 문화산업이 차세대 전략산업이라고 하면서 관련된 고급 인력은 어디 있을까?
“우리나라는 인재가 많아 미래가 밝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젊은 인재들이 중소기업을 외면합니다. 대기업 중심의 기술개발에서 못 벗어나고 있죠. 소프트웨어 기술은 벤처 스타트업 중심으로 발전하는데 우리나라 기업 구조가 재편되지 않으면 구글과 애플 같은 기술혁신 회사는 생기지 못할 것입니다.”
고 박사는 대기업 인력사슬의 공급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자가 성장할 공간이 없다는 문제를 들었다. 훌륭한 인재들은 S전자 아니면 글로벌 벤처기업으로 간다.
“결국 소프트웨어 발전 기술은 악순환됩니다. 고급 인력의 편중을 줄여야 하는데 외국으로 누출되는 현상이 반복되죠. 급여를 많이 주는 국내 대기업으로만 편중되면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의 인력 확보가 어렵습니다. 기술 산업 결승전에서 선수가 누출되면 중요한 전쟁에서 패하고 말죠. 대한민국의 미래는 소프트웨어 인재가 어디로 가느냐에 결정된다고 봅니다.”
대안은 무엇일까?
“민간 부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로봇 소프트웨어 기술 육성 정책을 보완하고, 로봇 인재들의 해외 기업 선호 마인드를 바꾸기 위한 장기 계획이 필요하죠.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교육과 산업을 전환해 국가가 나서 인력 양성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해야만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소 예민한 주제이긴 하지만 R&D 예산 삭감에 대한 고 박사의 의견을 물었다.
“과학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당시, 과학기술에 투자를 많이 했습니다. 지금 K-기술이 이끄는 경제 강국의 지위를 누리게 된 것은 국가 미래를 위한 투자 때문이었죠.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가 이뤄져야 20~30년 뒤 대한민국을 밝게 전망할 수 있습니다. 기업들은 현재 잘 팔고 있는 제품으로 먹고사는 데 문제없지만, 미래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기업의 미래는 R&D에 있습니다. 기업의 미래가 없다면, 국가의 미래는 없죠.”
대학 강의와 기업 업무를 병행하며 로봇공학자로서의 예측
고 박사는 대학교수와 회사 기술고문 역할 둘 다 즐겁다고 한다.
“기업인은 과거의 노력에 대한 결과물이고, 학생들을 만나는 일은 그들에게 앞으로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무기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교육은 기술 전쟁 후방에서 미래 산업 전사를 육성하는 일이죠.”
고 박사도 대학 3학년에 접한 <로봇공학의 이해>라는 수업으로 당시 로봇공학이 생소한 중에 로봇공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고 박사가 존경하는 롤모델 또한 모교 스승인 로봇공학자 박영필 교수다.
고 박사가 로봇 기술에서 가장 성과를 내고 싶은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AI에는 3대 난제가 있습니다. 물체 인식 기술(사물을 보고 파악하는 능력), 위치 인식 기술(어디 가서 무엇을 하게 할 때 ‘어디’에 해당) 그리고 핸들링 기술(물체 조작 기술로 정교한 동작으로 인간을 보조)입니다. 이 3대 난제는 AI 기술을 접목해야만 풀 수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모든 로봇공학자가 3대 난제 해결을 목표로 삼고 있죠.”
인간은 태어나서 스스로 훈련해 걸음마를 해낸다. 인간처럼 로봇도 스스로 이동하고 관찰하고 사물을 파악해 학습하는 고도의 기술을 갖출 것이다. 그에 따른 AI 악용 범죄와 그 파괴력으로 인류 공존과 멸망의 주제에 관해 궁금해졌다.
“지난 50년의 기술 발전 속도라면 지금의 로봇이 인간 수준에 근접해 인격을 갖출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계 문명으로 인류가 멸망할지 모른다는 상상력에 기반해 기계 문명을 거부해야 할까요? 과거에 자동차를 막고 말만 몰자는 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문명의 이기를 취하면서 더욱 인간다운 삶, 여가를 누리는 삶을 개척해 왔죠. 지금 구글이 새로운 AI 기술을 발견할 때마다 네이처지에 공개하는 것은, 기술을 독점하며 일어나는 사태를 지양하고 인류 전체에게 유익을 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우리는 문명의 흐름에서 모두를 위한 공공선을 찾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 것입니다.”
대중들과 소통하기를 즐기는 그의 소망
“로봇을 쉽게 풀어서 대중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1980년에 본 미국 다큐멘터리 <코스모스>가 기억납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천문학을 대중에게 쉽게 풀어 흥미롭게 소개했죠. 윈스턴 처칠은 회고록 《제2차 세계대전》으로 노벨평화상이 아닌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대중에게 자기 경험을 알리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는 로봇공학자가 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인공지능의 핵심 기술을 공부해 보니 기초는 수학과 물리였습니다. 소련의 과학기술이 미국보다 앞섰을 때 미국은 과학교육 전체를 수술해 사이언스붐을 일으켰죠. 그 결과 미소 우주 경쟁에서 우선권을 가져왔습니다. 후배들이 과학을 멀리하지 않고 흥미롭게 여기며 미래를 준비하는 학문으로 여기면 좋겠습니다.”
고 박사는 대학 시절 흥미롭게도 '운사'라는 서클에서 민주주의를 배우는 동시에 그룹사운드 '라이너스' 2기로 활동했다. 그 밴드 활동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그의 자녀는 현재 음악을 하며 살아간다.
_글 황교진 / 연세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