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
엔초비 오일 파스타를 두 번 더 해 먹어야 한다. 여름날씨에 냉장고도 속수무책 당해버릴 수 있기 때문에 하루 한 끼는 엔초비를 먹기로 한다. 어제는 세 마리를 꺼내 썼고, 아직 여섯 마리가 더 남았다. 오늘도 세 마리를 꺼낸다. 내일이면 엔초비에 대한 부담감을 덜 수 있겠다.
요리 과정은 어제와 같았지만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프라이팬에 마늘과 엔초비를 미리 볶는 시기를 놓쳤다. 하지만 어쩔쏘냐, 엔초비 개수를 세다가 프라이팬 불을 올리는 걸 깜빡해 버린 걸.
이미 냄비의 파스타 면은 끓고 있었다. 불을 켜는 순간부터는 모든 게 다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던 나의 야매 요리사의 말을 머릿속에 뿌리 깊이 새기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미 침착하긴 글렀다. 사실 면을 물에서 분리해두고 오일을 좀 뿌려 둔 뒤, 웨이러 미닛 해줬으면 됐다. 프라이팬에 적당히 재료를 볶고 면을 투하하면 될 일이었지만. 나의 편도체는 이미 비상 활성화 되어버려서 그냥 하지, 뭐 하고 3분도 덜 볶은 팬에 면을 넣어주었다.
팬에서 오래 가열하면 되겠지 하며 면수도 어제보다 한국자 더 세 국자를 넣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늘 면은 어제의 스파게티 면이 아닌 링귀니 면인걸! 링귀니 면은 스파게티 면보다 납작하다. 링귀니는 좀 퍼져도 나름의 식감이 있다는 나의 주관적인 견해로 합리화했다. 팬에서 재료들을 합치고 익혔다. 마늘은 노릇해질 기미가 없었다. 이미 면수도 부었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볶는 것보다는 삶아지는 것이다. 그럼 마늘향이 오일에 배기는 어려워진다.
양이 많아 보인다. 파스타를 해 먹는 일반인의 숙명이랄까. 맥주를 곁들여 먹었다.
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