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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Oct 10. 2018

취향 조각을 맞추는 퍼즐 놀이

쇼핑의 디테일

이우시장


2004년 12월 즈음. 신문에서 우연히 중국 '이우 시장'에 대한 기사를 봤다. 상해에서 가깝다는 기사만 보고 지인을 수소문했다. 동생 친구의 아는 동생이 안테나에 걸렸다. 상해에서 버스로 4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고. 고맙게도 흔쾌히 동행해 준다 했다. 버스를 타러 새벽에 터미널로 나서는데 바로 앞에 걷고 있는 동생 뒷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불투명한 짙은 스모그. 하도 매워 호흡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우'는 상해에서 버스로 4시간 걸리는 비교적 가까운 곳이었지만 버스터미널의 첫 느낌은 꿈을 꾸는 것처럼 멀고 아득했다. 땟국물이 몇 겹 레이어 된 허름한 옷을 입고 며칠을 씻지 못 한 것 같은 사람들이 땅바닥에 무리 지어 있었고, 그들의 눈에서는 들짐승같이 날이 선 야생의 느낌이 났다. 되도록이면 눈을 부딪히지 않으려 애를 쓰며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에서 담배를 태우는 사람도 있었던 시절. 소란스러웠다.  


그렇게 도착한 이우. 큰 남대문 시장을 상상하며 방문했던 이우는 내 상상력의 한계를 깨 주었다. 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시장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 개의 행정구역이 한 가지 아이템의 도매 시장이었고, 도시 전체가 시장이었다. 거기서 원하는 상품을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였다. 다시 상해로 돌아와 동생들과 예원을 보고, 마라탕을 먹으며, 야시장을 쏘다니며 재미있게 놀았던 출장 겸 여행.


그 후에도 몇 번 방문했다. 이우시장과의 거래는 참 어려웠다. 파란 타월을 100장 주문하면 맨 윗 장만 파란색이고, 나머지 99장은 아무거나 들어있다던지, 기계를 주문하면 한 개만 쓸 수 있고 나머지는 다 쓸 수 없는 일이 종종 있었다. 중간에 상품을 QC 해 줄 에이전트가 필요했다. 몇몇 업체를 돌아보는데, 가이드 친구가 묻는다.

"왜 그렇게 큰 계산기를 갖고 다요?"

"잘 보이니까 빠르잖아요."

내 계산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가이드는 다음 날, 큼직한 새 계산기를 구해왔다.

"그렇게 큰 계산기를 갖고 다니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런데, 바꾸니까 정말 빨라요."

그녀의 세심한 관찰력과 빠른 실행력에 동지애를 느꼈다.


그 계산기의 수명이 다하고 몇 개의 계산기가 지나갔다. 영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아이폰의 등장에 힘입어 폰을 계산기로 쓰기도 했다. 별도로  계산기를 휴대하지 않아도 되는 강력한 장점이 있지만, 휴대폰 계산기를 쓰려면 전원을 켜고, 프로그램을 찾아 실행하고, 계산 버튼을 또 눌러야 했다. 그러다가 스치면 처음부터 다시. 오히려 프로세스가 번거로웠다. 꺼내자마자 계산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 아날로그가 더 좋았다.

무인양품 계산기, 파카45, 젠틀몬스터 안경, 조말론 향수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계산기

투덜거렸더니 남편이 출장길에 브라운 사의 흰색 계산기를 사 왔다. 아, 예뻐. 볼 때마다 심미적인 만족감을 주었다. 그러나, 선진국은 화폐 단위가 짧아서인지 digit이 모자랐다. 계산이 불편했다. 키보드 버튼도 작아 빠르게 누를 수 없었다. 꺼낼 때마다 아름다운 겉모습에 눈이 팔려 본연의 계산 업무에서는 효율이 떨어졌다. 예쁘고 실용적인 게 좋다. 예쁘기만 하거나, 실용적이기만 한 것은 내 소용과 맞지 않았다.


MBC에서 출연료로 상품권을 보내왔다. 늘 이런 건 허공으로 날아가기 십상이다. 오래 기억하려면 뭐가 좋을까. 일단 무인양품 매장에 들러 필요한 것을 몇 개 구입했는데 계산기가 눈에 들어온다. 요 녀석이 좋겠다. 준비되어 있는 디자인은 두 가지. 하나는 온통 흰색이고, 머리가 살짝 꺾어진다. 이것으로 해야지 집어 드는데 너무 가볍다. 버튼을 눌러보니 키가 비틀비틀 흔들린다. 안 되겠다. 옆의 다른 디자인이 눈에 들어온다.


알루미늄 바디를 하고 있어 느낌은 조금 차갑지만, 그립감이 단단하다. 버튼을 눌러보니 쫀쫀하고, 무게감도 딱 좋다. 같은 가격이라면 이걸로 해야지! 하고 가격표를 보니 두 배가 넘는 가격. 잠시 고민을 했지만, 가격표보다는 심미적 만족감을 주는 알루미늄 바디를 고르기로 한다.


 계산기는 TAX SET기능이 있어 10% 입력하고, tax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공급가를 표시해 준다. 그동안 소비자가에서 공급가를 계산하려면 나누기 버튼, 1 버튼,. 버튼, 1 버튼을 차례대로 눌러야 했다. 지난 15년 동안 버튼을 네 번 누른 것을 한 번만 눌렀으면 어땠을까. 직접 보고, 만지고, 눌러보고, 무게, 소리, 촉감도 확인하고 데려온 내 계산기. 이제야 완벽하게 마음에 든다. 쇼핑은 퍼즐처럼 취향 조각을 맞추는 놀이가 되었다.


http://m.yes24.com/Goods/Detail/85121544?pid=157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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