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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May 15. 2019

영감여행 INS+TRIP

꽃, 식물, 예술의 네덜란드

네덜란드


  네덜란드가 갑자기, 토토로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가 보고 싶어. 너무너무 궁금해.”

핀터레스트에서 꽃 이미지를 검색하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시작은 미세먼지였다. 먼저 식물을 가득 들였다. 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 어떨까. 나무를 가득 키워 숲 같은 공간이 되면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지 않을까. 만 3년쯤 지나니, 에너지를 덜 사용해도 늘 비슷한 컨디션을 유지하는 우리 집만의 식물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몸과 마음과 생각의 건강에 도움이 되었다. 나무와 풀들이 완전히 적응했는지, 덩치도 함께 자랐다. 이 집의 주인공이 우리 식구인지, 식물인지 헛갈릴 만큼, 식물 세상이 되었다.


  무성하게 자란 식물들은 공기가 통하게 가끔 숱을 쳐 주어야 한다. 더불어 모양을 예쁘게 다듬는 효과도 있다. 이발하는 것처럼. 잎을 솎아 내는 날엔, 싱싱한 가지를 수북하게 버리게 되었다. 아깝고 미안했다. 이걸 살려 쓰는 방법은 없을까?


  꽃을 배워 숱을 쳐낸 가지를 응용해 보면 어떨까? 꽃에도 눈이 가기 시작했다. 꽃을 공부해 화훼장식 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예상대로 초록에 꽃을 더하니, 정말로 아름다웠다.


  그런데, 꽃 중에도 내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었다. 나는 채도가 높고 명도가 낮은 빨간색이나 보라색 꽃을 만나면 마음이 차갑게 식었지만, 오렌지를 두 방울 더한 핑크색 꽃을 만나면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그려졌다. 꽃을 꽂는 모양에 따라서도 느낌이 천차만별이었다. 알면 알수록 미궁에 빠지는 식물의 세계다.


영감 여행


  일단, 좋은 느낌을 주는 꽃 이미지들을 모아 보았다. 모인 이미지들을 한 화면에서 보면 나도 모르는 나의 취향을 읽을 수 있다. 나는 장미나 작약처럼 형태가 동그랗고, 색상이 화려한 꽃을 좋아했고, 거침없이 꽂은 과감한 어레인지먼트에서 신이 났다.  강렬한 색상 대비가 간이 맞았다. 이 이미지들은 주로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스타일이다. 더치 플레미시 양식이라고 한다.


  17세기는 과학, 철학, 예술, 무역, 건축 등 분야에서 네덜란드가 세계를 선도하던 시기이다. 그림 속에서도 떨어지는 꿀이 느껴질 만큼 풍요로운 시대였다. 보스카 에르트 암브로시우스나 얀 브르겔의 그림이 가슴을 채웠다. 장미, 작약, 백합꽃은 얼굴이 크고, 선은 대담하고, 화병 하나에 100송이의 꽃을 꽂을 만큼 풍성하다.


  무의식의 세계에 있던 네덜란드가 의식의 세계로 자리를 이동했다. 전 세계 화훼 시장의 52%를 공급하는 나라. 자주 사용하는 블렌더의 필립스, 즐겨 보는 디자인 잡지 FRAME, 물류 회사 TNT, 히딩크의 나라, ‘해바라기’ 시리즈의 반 고흐, 렘브란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베르메르. 일기를 남겨 전 세계에 전쟁의 참상을 알린 안네의 생가가 있는 곳. 딕 브루나의 미피가 있는 나라. 유럽에서 가장 큰 벼룩시장도 그곳에 있었다. 원예, 화훼, 예술. 나의 관심사가 모두 있다.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2019년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럴수록 물리적으로 공간을 이동해 직접 느끼고, 생각하고, 숨 쉬는 그 순간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나는 과꽃을 볼 때마다 옛날 집이 떠오른다. 감각 기관에 기억된 정보는 평생 우려 마시는 티백과 같다.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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