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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암스테르담

꽃 축제, 꽃 시장, 디자인의 NDSM, 벼룩시장


  지금 모처럼 빗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윗동네는 비가 정말 오랜만이에요. 흙이 바스러져 날리던 메마른 땅에 넉넉하게 내리는 비가 반갑습니다. 빗소리가 이렇게 촉촉한 거였는지요! 새삼스럽습니다. 비가 떨어져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 고인 물에 떨어지는 소리, 고인 물 위를 차가 지나가며 내는 물소리, 빗소리의 간격이 가까워지며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빗소리 변주곡입니다. 저는 비 오는 날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기분이 한껏 좋습니다. 제가 세 번째로 들려 드릴 네덜란드 영감 여행도 신나고 싱그러워요.


  세 번째 날은, 따뜻하고, 눈 부신 날씨였어요.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오후 9시 38분에 글을 쓰려고 앉아도  밖이 환한 낯선 경험. 체감으로는 5월의 오후 5시가 5시간 동안 지속되는 느낌이었습니다. 해가 길어 일조량이 많고, 바닷가에 가까워 비가 자주 오니 암스테르담의 봄 여름은 식물이 자라기 좋은 조건 같아요. 어딜 가던 풀과 나무가 무성해요. 식물들을 자유롭게 방임하는 광경이 조금 낯설기도 합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로,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싱겔 꽃시장

  한 번은 잡초가 하도 미워, 싸구려 가위로 풀을 자르다가 손가락 피부가 다 벗겨졌어요. 피부가 직경 1.5센티 정도로 물집이 생겨 다 뜯겨 나갔는데도 모르고 분노의 풀매기를 했습니다. 그 손을 보니, 가위도 미웠어요. 그러고 나서, 좋은 가위를 보니까 손잡이가 부드러운 재질로 감싸져 있었습니다. 얼마 전엔, 선물 받은 꽃삽 손잡이 플라스틱이 뎅강 부러졌어요. 그럼 멀쩡한 삽날까지 버려야 합니다. 꽃삽을 알아보고 또 사고해야 하니까, 시간과 비용, 에너지를 더 쓰게 됩니다. 식물과 함께 살면서, 저는 예쁜 원예 도구, 가드닝 툴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매일매일 사용하니까요. 자주 쓰는 제품을 내가 구입할 수 있는 선에서 가장 좋은 걸로 구입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 많아요.


그래서, 싱겔 꽃시장에 예쁘고, 튼튼하고, 평생을 한 개로 쓸 수 있을 것 같은 원예 용품이 있다면 사가고 싶었었습니다. 그런데, 띠로리...... 싱겔 꽃시장은 그런 곳이 아니었어요. 튤립이나 히야신스, 백합의 구근, 각종 씨앗, 식물 모종과 함께 자석, 스노볼 같은 네덜란드 기념품을 주로 취급합니다. 원예 용품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기대가 무침하게 깨졌습니다.


  또 한 번의 좌절은 싱겔 꽃시장의 다양한 품종과 색상의 꽃 씨앗들과 구근들을 눈앞에 놓고서, 한국으로 가져갈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식물, 동물 류는 세관 검역에서 통과 안 됩니다. 정말로 안타까웠어요. 해충이나 질병이 옮아 오거나, 생태계를 교란할 우려가 있어서 그렇다고 해요. 그래도 제 입장에서는 참으로 아쉽습니다. 눈앞에 금은보화를 두고 떠나는 보물선 같은 느낌이에요.


  늘 식물과 함께 살다가, 식물이 하나도 없는 호텔룸으로 가니, 유리창이 열려 바깥공기가 통하는데도 불구하고 가슴이 답답했어요. 싱겔 꽃시장에서 꽃 한 단 사다 꽂아 두고 싶었는데 생화를 판매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결국 호텔 앞 슈퍼마켓에서 30% 세일하는 핑크 튤립 한 단을 3.5유로에 사다 꽂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구근들을 놓고 그냥 오는 기분... 슬퍼요.
질렌할 벼룩시장
 

  저는 벼룩시장 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연한 득템의 기회를 사랑하는데요, 2007년엔 생투앙 벼룩시장에서 포스터를 만났습니다. 포스터 속 주인공은 키가 약 2미터 정도 될 만큼 크고, 올리브같이 가늘고 긴 여성인데, 오렌지색 바탕의 동그라미 안에 일러스트처럼 그려진 포스터였습니다. 가격을 물었더니, 100 USD를 달라고 하길래, 흥정을 했어요. 그런데, 100 USD 아래로는 판매할 수 없다며 단호합니다. 그 큰 포스터를 구겨지지 않게 무사히 들고 올 방법도 생각나지 않아 포기했었어요. 그런데, 재작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갤러리에서 제가 포기했던 포스터와 비슷한 포스터를 만났습니다. 액자 옆에 쓰인 가격이 10,000불이 넘는 걸 보고 얼마나 배가 아프던지요! 그 후로, 벼룩시장에 갈 때마다, 눈에 힘을 주고 더 열심히 관찰하게 됩니다.  

  벼룩시장은 정말로 아는 만큼 보입니다. 저는 주로 직감으로 찍는 편입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동안 쌓인 경험이 직관으로 작용해 가끔 훌륭한 아이템을 찾아내는 날도 있습니다. 그날이 바로 그 날이었어요. 스테인리스 강으로 만든 독일산 가위와 1960년대의 KIENZLE 탁상시계를 찾아냈어요.


  가위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여전히 날이 서 있고, 무게와 질감에서 만족감을 줍니다. 가위 날을 열고 닫을 때 나는 소리도 마음에 쏙 듭니다. 함께 산 시계, KIENZLE 브랜드는 1822년에 설립된 독일 시계 브랜드입니다. 60년 전의 제품이 여전히 작동하는 걸 보며 생각이 많아졌어요. 튼튼하게 만들기도 했겠지만, 사용하는 사람도 어찌나 깨끗하게 썼는지, 표면에 흠집이 거의 없습니다. 60년 동안 하나의 시계로 사는 것. 그게 진정한 환경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어떤 사물을 만나면, 앨범이 몇 장 촤르르르 넘어가면서 지난날의 추억에 불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글이 술술 잘 써져요. 잃어버린 추억을 찾아서, 라는 제목이 그래서 나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벼룩시장에서 좋은 제품을 얻는 팁이 있다면, 일단 할아버지나 할머니 셀러를 찾아보세요. 그 편이 득템의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같은 가격이라면 금속 세공된 것이 더 귀한 편이고요.


NSDM

  벼룩시장 바로 옆에는 NDSM이라는 디자인, 예술가들의 레지던시가 있어요. 폐공장을 재생해서 쓰는 것 같은데, 각 스튜디오마다 개성 있는 공간으로 탄생했습니다. 공간을 꾸미는 것은 사진을 보고 따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람은 따라 하기 힘듭니다. 갖고 있는 사고방식대로 살아가고, 그 경험들이 모여 그 사람을 만드는 건데, 겉모습만 따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젊은 날, 나와 비슷한 사고와 감성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공간을 가만히 바라 보기만 해도 에너지가 차오르는 것 같았어요. 마침 Expo로 토르소 전을 하고 있어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회전하는 선풍기로 전자 기타를 연주하는 작품입니다. 중독성 있으니 주의하세요.

선풍기 연주에 놀라지 마세요!

http://modernmother.kr

http://brunch.co.kr/@modernmother

https://www.instagram.com/jaekyung.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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