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매 Oct 24. 2021

우리의 다음

<할머니의 사계절> 




언젠가 할머니는 뒷밭에 3층 집을 짓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막내 고모와 할머니가 농담 같이 또 가끔은 진담같이 해 오던 이야기다. 

"엄마, 우리 뒷밭에 3층 집 지어서 1층에는 언니랑 엄마 살고, 2층에는 오빠 살고, 3층에는 우리 가족 살면 좋겠네." 

할머니는 내게도 3층 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직은 계획보다는 소망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우리의 이야기. 하지만 할머니는 나보다 훨씬 더 구체적으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찾아뵐 때마다 멋쩍게 웃으며 3층 집 이야기를 하신다. 

"근데 우리가 3층으로 집을 지으면 뒤에 경찰서가 가린다고 안 좋아하지 않을라?"

"요새는 1층을 비워가지고 주차장으로 쓴다대?"

"이 집은 없어도 돼. 다 무너져가는 집을 고쳐 쓰느라 애먹었어." 

할머니는 평생을 보낸 지금의 집을 무너뜨려도 괜찮다고 하셨다. 아무리 그래도 어른들은 추억이 깃든 공간을 버리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우리 할머니는 꽤 신식인 것 같다.

 

시골집에 머무는 일주일간 매일 뒷밭에 나갔다. 뒷밭 자리는 지금의 집 면적만큼이나 널찍하다. 할머니는 올해 밭에 물이 차서 고구마며 땅콩이며 농사를 망쳤다고 했다. 골마다 물이 고인 밭을 이 쪽에서 저 쪽에서 보며 사진을 찍었다. 어느새 할머니의 꿈은 내 꿈이 되어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 꽃씨를 할머니에게 맡겨두고 왔다. 친구를 따라가서 주운 것인데 작고 앙증맞은 보라색 들꽃의 씨였다. 따로 담을 데가 없어 왼손에 꼭 쥐고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 꽃씨 가져왔어!" 하니 할머니가 깨끗한 신문지를 들고 와 내 손에 붙은 꽃씨를 털어 담는다. 내년 봄에 심어주겠다고 하며 신문지를 반듯하게 접는 할머니. 할머니 꿈을 이뤄드리고 싶다.  





이전 11화 할머니의 두 번째 육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