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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미정 Dec 27. 2017

지금 이 순간

오랜만에 연주장을 찾았다. 좋아하는 후배의 연주다. 일정에 쫓겨 생각이란 게 없어져 버린 요즘, 꼭 참석해야 하는 일정도 놓치고 놓친 것도 모르고 지나갈 정도로 정신이 없다. 이제 나이탓도 피곤할 지경이다. 그런데 이번엔 꼭 가야지 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몇 주 전부터 날짜가 머리 속에 들어와 있다. 그날따라 앞뒤로 약속도 빼곡히 들어차는데 이상하게 그 시간만 피해간다. 


한 곡 한 곡 듣다보니 안정된 톤과 다채로운 색깔에 나도 모르게 쏙 빠져든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순간을 향하고 있었을 그녀가 그려진다.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일지도 모른다. 옷깃 한번 스치는데 오백생의 인연이 들어 있다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이라는 말의 무게가 새삼스럽다. 항상 처음인 것처럼, 그리고 이 순간이 다시 안 돌아올 것처럼 지나쳐 왔는데...


'지금'이란 것에, 짧게는 비현실적으로 살인적인 일정을 쪼개고 쪼개서 간절한 마음으로 이 연주를 준비했을 그녀가, 길게는 아주 어릴 적 음악을 시작하면서부터, 아니, 그녀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을 음악 속에 하나하나 소중하게 담아두는 모습이 언뜻 비치는 듯하다. 지금이란 게 이런 거구나. 살면서 느끼는 모든 것들이 마음에 기록된다더니 이런 건가보다. 그리고 그것들이 지금이라는 순간에 보여진다. 그래서 지금에는 그 오랜 시간이 함께 한다. 


그래, 항상 처음이다.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안 돌아온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거였다.


늘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고

늘 어딘가를 가야 할 것 같았던

그 생각들을 벗었다 생각했다. 

멈추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 멈추었다는 생각에 

멈추어 있었던 것이다. 


멈춤을 멈추니

멈춤이 움직임이다. 역동이다. 

그리고

그 움직임 속에는 '지금'이, '영원'이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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