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 리조또
성시경끄상, 다나카를 지명해줘서 고마워
위에 적은 문장은 얼마 전 가수 성시경 씨 유튜브 영상에서 본 인기 댓글이다. 노래보다 먹방 영상 조회수가 많이 나오기 시작한 시경이 형의 유튜브에 요즘 가장 핫한 인물인 다나카 유키오가 나왔다. 나몰라패밀리 핫쇼 채널에서 활동하는 그는 일본 도쿄 가부키쵸 출생의 호스트다. 할아버지 때부터 호스트를 가업으로 잇고 있지만, 일본에서 인기가 없던 그는 한국에 와서 수년 만에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성공에 많은 한국팬들은 매번 그가 나오는 채널에 감사 댓글을 달고 있다. 다나카 유키오는 가상의 캐릭터다. 코미디언 김경욱 씨가 연기하는 부캐로, 90년대에서 2000년대 사이 우리가 만났던 일본 문화의 특징을 모두 모아놓은 존재다.
다나카와 함께 인기를 끌고 있는 존재가 있다. 바로 애니메이션 슬램덩크다. 극장판으로 제작돼 대중에게 선보인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특히 나와 같은 30대와 40대들이 N차 관람을 이어가면서 영화를 계속 보고 있다. 곰곰이 보면 다시 보고 싶어만 하는 것 같다. 그 작품을 봐야만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군 생활이 지옥 같았더라도 “그때가 좋았지.”라고 말하는 여느 아재들의 변명처럼.
지구를 지키는 아이들, 낭만이 가득한 청소년
일본 애니메이션에는 마징가Z부터 철인 28호와 같이 로봇이 나오는 메카닉 장르나 후뢰시맨과 같은 전대물 시리즈, 다간, K-캅스 등의 용자물 시리즈 등이 유명하다. 그리고 이들 장르는 1970년대에서 1990년대, 2000년대에 10대 시절을 보낸 이들의 마음속에 ‘정의감’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새겨넣었다.
공교롭게도 이들 로봇 개체를 움직이는 주체들은 모두 10대나 그보다 어린 아이들이었다. 그레이트 마징가를 만들어 악과 싸우던 쇠돌이도, 다간을 불러내던 가면 쓴 장민호도, 데커드를 보고 울부짖던 K-캅스의 최종일도 모두 아이들이었다. 전대물도 마찬가지다. 후뢰시맨의 주인공들 역시 부모님을 찾기 위해 지구를 찾은 청소년들이라는 설정으로 극이 진행된다.
여기에는 2차 세계대전부터 청소년들을 학도병이라는 이름으로 전쟁터로 밀어 넣던 어른들의 사악한 이야기가 숨어 있지만(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넘어가자. 전쟁이 없는 시대, 가상의 적들과 싸워야 하는 시기가 왔을 때,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이 나서서 세상을 지킨다는 스토리는 감옥과 같은 학교와 지옥같은 학업에 치이던 학생들에게 한 줄기 희망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세상은 우리가 지켜야 해’라는 생각을 가슴 속 깊은 곳에 간직한 채 성장한다.
그러다 중고등학교, 대학생이 되자 로봇 만화나 용사들이 나오는 전대물을 보는 게 마뜩잖아졌다. 그 시기 학생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축구, 그리고 골대를 향해 공을 던져넣는 농구만화였다. 슬램덩크는 용사와 전사들에게 지구의 운명을 맡기고 돌아온 아이들이 농구 코트로 모이게 했다. 스포츠를 하면서 승리를 향해 나아가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누군가의 우상이 되는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그렇게 그 시절 아이들은 누군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우상이 되며, 경쟁에서 승리하는 강하면서도 낭만이 가득한 세기말의 기사도를 배워갔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총과 대포가 나오면서 기사들이, 돈키호테처럼 괴짜 취급을 받으면서 사라진 것처럼, 그 시절의 아이들은 철이 들었고, 냉정하고 현실적인 어른이 되었다.
슬램덩크는 남성 중심적인, 시대착오적인 작품입니다
얼마 전에 한 문화 평론가가 언론사에 기재한 칼럼 제목이었다. 정확하게 그 평론가 성함이 기억나진 않았지만 모바일을 통해 읽은 기억에는 ‘여성 인물이 아주 단편적이고, 전형적인, 그리고 전근대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남성 중심 서사만 가득하다’라고 혹평했다. 어떤 이들은 이 글에 분노하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은 분노하는 사람들을 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며 필자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의견 모두 공감한다. 슬램덩크는 주인공이 남자이고, 남성 농구를 다뤘고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서사가 만화의 중심이 된다. 강백호를 농구로 입문하게 한 채소연은 갈수록 캐릭터의 비중이 줄어들고 그 존재감이 약해진다. 이를 주로 본 대상이 그 시절의 남학생들이었고, 그들이 성장하는 것이 만화를 관통하는 테마였기에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내가 이노우에 다케히코였어도 한번 흐름을 타기 시작한 '남자+청소년+스포츠+학원' 만화에 다른 요소를 넣는 건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20대, 40대 남성들은 자의든, 타의든 이런 서사에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들은 이끌던 가슴 속 원동력 중 하나이기도 했다. 어릴 적에는 영웅이 되고 싶은 욕망과 치기 어린 마음으로 세상과 싸웠다. 머리가 쑥 커버린 어느 날 봤던 농구 만화는 키 작은 아이들에게도 저 높은 골대를 향해 공을 던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안데르센이 차별받던 진저(Ginger), 붉은 머리 여자 아이들을 위해 인어공주의 머리 색을 붉게 표현한 것도, 가상의 왕국 와칸다가 흑인들의 자부심이 된 것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모두를 만족할 수는 없어도, 누군가에게는 한때의 소중한 추억이자 가슴속에 작은 위안을 주는 동기를 마련해준 존재들.
30대와 40대 남성들 가운데 키덜트(Kidult)가 많은 이유도, 마블과 DC의 히어로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다만 그 대상이 어릴 적 나와 같았던 아이에서 성인으로, 다간을 소환하던 민호에서, 아이언맨 슈트를 입은 토니 스타크로 그 대상이 바뀐 것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익숙한 과거의 모습, 자신들이 한때 동경했고, 여전히 가슴속에 살아있는 가상의 존재에게 환호한다.
다나카 유키오도 그랬다. 자신들의 10대와 20대를 보낸 90년대 말, 2000년대 초 세기말의 혼란 속에서 피어난 듯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게 아닐까 싶다. 일본 락커의 반팔티와 청바지, 샤기컷과 울프컷 그사이의 헤어스타일, 그리고 앞서 우리가 사랑했던 일본의 모든 콘텐츠가 응축된 존재 다나카에 환호를 보내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을지 모른다.
다나카는 그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심지에 불꽃 하나를 붙였다. 인기가 올라가면서 함께 발표한 노래 ‘와스레나이(忘れない)’가 그랬다. 마치 X-Japan의 토시가 절규하던 그때의 감성으로 돌아간 느낌. 다나카를 보면서 오늘도 박장대소를 하고 미소짓기도 한다. 그들은, 아니 나는 그 시절에 머무는 그 남자를 보면서 웃고, ‘잊지 말아줘’라고 외치는 과거의 나를 향해서 인사하고 싶은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