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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말하면 발표에 여유가 생깁니다.

단순하게 말해도 청중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

by 한창훈

설득력 있는 표현의 핵심


전문가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입니다. 자신이 가진 풍부한 지식과 경험 때문에, 오히려 그 내용을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인지적 편향을 의미합니다. 이는 전문가가 청중과 소통할 때 발생하는 가장 큰 장벽이며, 아무리 훌륭한 내용이라도 전달 과정에서 그 가치가 희석되는 주된 원인이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프레젠테이션의 필수 발표 기법 (단문과 키워드, 대화형 표현, 인용, 부연 설명)을 알아보겠습니다. 모두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기법들입니다.


단문과 키워드 중심의 표현


인지 부하를 관리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바로 ‘덩어리화(Chunking)’라는 심리학적 원리입니다. 인지 심리학자 조지 밀러(George A. Miller)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작업 기억은 한 번에 약 4개(전통적으로는 7±2개로 알려졌으나 최신 연구는 더 적은 수를 제시)의 정보 덩어리를 처리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덩어리화는 관련 있는 작은 정보 조각들을 하나의 의미 있는 단위로 묶어, 뇌가 처리해야 할 개별 요소의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전화번호 ‘01012345678’은 11개의 개별 숫자이지만, ‘010-1234-5678’로 덩어리화하면 3개의 덩어리로 인식되어 훨씬 기억하기 쉬워집니다.


이 원리는 프레젠테이션에 직접적으로 적용됩니다. 간결하고 명확한 키워드 중심의 단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정보 ‘덩어리’입니다. 반면, 여러 개의 종속절과 수식어로 이루어진 장황한 문장은 5~6개 이상의 정보 조각을 담고 있어 청중의 작업 기억을 순식간에 과부하시킵니다. ‘단문과 키워드 중심’의 표현 방식은 단순히 글을 짧게 쓰라는 스타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청중의 뇌가 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저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인지 과학에 기반한 핵심 전략인 것입니다.


내용적 표현의 네 가지


앞서 살펴본 인지 과학적 원리들은 실제 발표 현장에서 네 가지 구체적인 표현 기법, 즉 ‘네 개의 기둥’으로 구현됩니다. 이 기법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메시지의 명료성과 설득력을 극대화합니다. 이는 단순히 네 가지 팁의 목록이 아니라, 인지 부하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통합적 시스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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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문과 키워드


복잡한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 전문가일수록 표현이 길어지고 장황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아는 것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긴장하면 더욱 심해집니다. 예시 문장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Before: "그럼 지금부터 본 솔루션의 특장점에 대해서 하나하나 말씀 한번 드려보도록 할 예정인데 그 중에서 첫번째부터 말씀드리면 이 부분을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문제점 분석: 이 문장은 청중에게 높은 인지 부하를 유발합니다. 불필요한 군더더기 표현(“~해보도록 할 예정인데”), 의미 중복(“말씀 한번 드려보도록”), 그리고 모호한 문장 구조가 가득합니다. 청중은 이 문장을 듣는 동안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불필요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After: "그럼 본 솔루션의 특장점,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번째"


변화의 핵심: 이 문장은 전환(특장점 소개)과 내용(첫번째)을 명확히 분리하고, ‘첫번째’라는 키워드를 신호등처럼 사용하여 청중의 주의를 집중시킵니다. 이는 정보를 명확한 덩어리로 제공하여 인지적 부담을 극적으로 줄여줍니다.



고급 기법: 키워드 테스트


발표자는 스스로에게 ‘이 문장의 핵심을 1~3개의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문장은 청중에게 전달되기 전에 발표자 스스로가 아직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다는 신호입니다. 이 테스트는 생각을 명료하게 증류하는 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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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Rapport)의 심리학 (대화형 표현)


많은 발표자들이 무대에 서면 갑자기 평소와 다른 ‘발표 모드’로 전환됩니다. 모든 문장을 딱딱한 ‘~다’ 체로 끝맺으며 청중과 심리적 거리를 만듭니다. 이러한 공식적인 톤은 진정성이 부족하게 느껴져 청중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 ‘~요’ 체를 사용하거나 질문을 던지는 대화형 표현은 단순히 격식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인간의 뇌는 일방적인 정보 수용보다 상호작용하는 대화에 더 익숙하기 때문에, 대화형 표현은 인지적 마찰을 줄여줍니다. 또한 발표자를 더 인간적이고 접근하기 쉬운 존재로 만들어 신뢰와 유대감을 형성합니다.

예시를 보면, "이 기술은... 기대되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라는 표현은 청중이 소리 내어 답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뇌를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시킵니다. 이는 수동적 듣기에서 능동적 사고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매우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권위와 감성 빌리기 – 인용의 수사학적 힘


프레젠테이션에서 인용은 단순한 장식이나 내용 채우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수천 년간 검증된 강력한 수사학적 도구입니다. 잘 선택된 인용은 다음과 같은 힘을 발휘합니다.



신뢰도(Ethos) 구축: 청중이 존경하는 전문가나 기관의 말을 빌려오면, 그들의 권위와 신뢰도가 발표자의 메시지에 자연스럽게 전이됩니다. 예를 들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라고 시작하면, 이어지는 내용의 무게감이 달라집니다.


감성(Pathos) 자극: 때로는 발표자의 말보다 시나 문학 작품의 한 구절이 청중의 감성을 더 깊이 자극할 수 있습니다. 감성적 연결은 메시지를 단순한 정보가 아닌, 기억에 남는 경험으로 만듭니다.


논리적 간결성(Logos) 확보: 위대한 사상가나 리더의 말은 복잡한 개념을 정수만 뽑아낸 논리적 패키지와 같습니다. 이를 활용하면 장황한 설명을 압축적이고 기억하기 쉬운 형태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인용 방식을 선택할 때는, 원문의 표현 자체가 매우 강력하거나 재치 있을 경우 직접 인용을 사용하고, 원문이 너무 길거나 전문 용어가 많을 때는 간접 인용(자신의 말로 바꾸어 전달)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간접 인용을 직접 인용("일정 준수가 우선이다!")으로 바꾸면서 약간의 연기력을 더해 톤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청중에게 ‘지금이 중요한 순간’이라는 신호를 보내 메시지의 각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지식의 저주 타파하기 – 부연 설명


부연 설명은 ‘지식의 저주’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직접적이고 필수적인 전략입니다. 발표자는 자신의 지식 수준에서 벗어나, 청중의 입장에서 잠재적인 혼란 지점을 미리 찾아내고 그 간극을 메워줄 의무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발표자는 자신의 발표 내용을 체계적으로 ‘감사(Audit)’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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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표현법 응용하기


네 가지 기둥을 개별적으로 이해했다면, 이제는 이를 통합하여 프레젠테이션의 결정적인 순간에 어떻게 적용할지 알아볼 차례입니다. 기술의 숙달은 개별 기술의 합이 아니라,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엮어 시너지를 창출하는 능력에서 비롯됩니다.


구조와의 시너지: 1S1M과 내러티브 흐름 증폭시키기


‘1 슬라이드 1 메시지 + 연결어구(1S1M + 연결어구)’는 프레젠테이션의 뼈대를 만드는 거시적 구조 설계 원칙입니다. 하지만 이 뼈대를 채우는 살, 즉 각 슬라이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언어가 바로 미시적 기술인 ‘내용적 표현’입니다. 만약 한 슬라이드의 단일 메시지가 장황하고 복잡한 문장으로 표현된다면, 1S1M 구조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특히, 슬라이드와 슬라이드를 잇는 ‘연결어구’는 단순한 전환 신호가 아닙니다. 이는 ‘대화형 표현’의 한 형태로, 청중의 사고를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안내하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원인을 살펴보았습니다. (슬라이드를 넘기며) 그럼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요?"라는 연결어구는 청중에게 수동적으로 다음 정보를 기다리게 하는 대신, ‘해결책’이라는 주제에 대해 능동적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합니다. 이처럼 내용적 표현은 프레젠테이션의 논리적 흐름과 청중의 심리적 흐름을 일치시키는 접착제 역할을 합니다.


결정적 순간의 표현법: 강력한 도입부와 마무리 설계하기


심리학의 ‘초두 효과(Primacy Effect)’와 ‘최신 효과(Recency Effect)’에 따르면, 청중은 발표의 시작과 끝을 가장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따라서 이 두 순간에 내용적 표현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것은 발표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전략입니다. 이는 단순히 내용을 기억시키는 것을 넘어, 발표 초반에 신뢰도(Ethos)를 구축하여 발표 전체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고, 마지막에 행동을 촉구하여 발표의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는 감성적 프레이밍(emotional framing) 과정입니다.


임팩트 있는 도입부 설계



인용으로 시작하기 (기둥 3):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과 다름없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른 미래를 만들어갈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 주제의 중요성을 권위에 기대어 제시합니다.


대화형 질문 던지기 (기둥 2): "여기 계신 분들 중, 회의가 끝나고 '그래서 우리가 뭘 결정했지?'라고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 청중의 경험과 직접 연결하여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키워드로 핵심 제시하기 (기둥 1): "오늘 저는 '명확성, 간결성, 그리고 실행' 이 세 가지 키워드로 그 해답을 제시하겠습니다." -> 발표의 로드맵을 명확히 하여 인지적 안정감을 줍니다.



명확한 행동을 이끌어내는 마무리



키워드로 요약하기 (기둥 1):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논의한 세 가지 핵심은 '명확성, 간결성, 그리고 실행'이었습니다." -> 핵심 메시지를 다시 한번 각인시킵니다.


명확한 행동 촉구 (Call to Action): "그래서 저의 요청은 간단합니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각 팀은 이 세 가지 원칙에 기반한 개선안을 한 페이지로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간결하고 구체적인 대화형 언어로 명확한 행동을 요구합니다.


마지막 인용으로 여운 남기기 (기둥 3):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작은 실행이 측정 가능한 변화를 만들 것이라 믿습니다." -> 영감을 주며 발표를 마무리합니다.


이러한 전략은 발표자가 리허설 시간을 배분할 때, 단순히 내용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도입부와 마무리 부분의 ‘표현 방식’을 집중적으로 연습해야 함을 시사합니다. 이는 대부분의 발표자들이 간과하는 실질적인 성공 전략입니다.


Q&A 세션


Q&A 세션은 발표자의 전문성과 신뢰성이 가장 혹독하게 시험받는 무대입니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나 공격적인 질문은 발표자를 당황하게 만들어 장황하고 방어적인 답변을 유도하기 쉽습니다. 이때 내용적 표현의 네 가지 기둥은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과 명료함을 유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듣고, 요약하고, 확인하라 (기둥 4 - 부연 설명): 질문을 받으면 즉시 답변하려 하지 말고, 먼저 질문의 요지를 자신의 언어로 바꾸어 되묻습니다. "말씀을 정리해보면, 저희 제안의 예산 현실성에 대해 우려하고 계신다는 말씀이시죠. 제가 정확히 이해했습니까?" 이 과정은 세 가지 효과를 낳습니다. 첫째,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게 됩니다. 둘째, 생각할 시간을 법니다. 셋째, 질문에 담긴 공격적인 뉘앙스를 제거하고 논점 중심으로 대화를 재구성하여 주도권을 가져옵니다.


두괄식으로 답하라 (기둥 1 - 단문/키워드): 핵심 답변을 먼저 간결하게 제시하고, 필요하다면 부연 설명을 덧붙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산 내에서 충분히 실행 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기존 자원 활용 극대화, 둘째, 단계적 투자 계획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이는 청중의 궁금증을 즉시 해소하고 답변을 명료하게 만듭니다.


대화의 톤을 유지하라 (기둥 2 - 대화형): 공격적인 질문자 앞에서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차분하고 존중하는 대화의 톤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는 발표자의 자신감과 전문성을 보여주며, 상황을 악화시키는 대신 이성적인 논의의 장으로 이끕니다.



표현이 주는 영향력


탁월한 내용적 표현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인지 과학에 기반한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훈련의 결과물입니다. 이 모든 노력은 하나의 목표를 향합니다. 바로 ‘신뢰를 통한 행동 유발’입니다. 명료한 표현은 청중의 인지 부하를 줄여주고, 이는 메시지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어집니다. 깊은 이해는 발표자에 대한 신뢰를 낳고, 그 신뢰는 결국 청중이 발표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됩니다.


따라서 다음에 발표를 준비할 때,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영향력을 원하는 리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청중이 온전히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나는 이 메시지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단순한 발표를 설득과 영향력의 예술로 승화시키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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