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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May 22. 2017

3.2.2. 진로에 대한 불안

3.2. 진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은, 돈을 벌기 위한 경제적 수단뿐만 아니라,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성장하고 자신감과 만족감을 얻고 다른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도구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을 쉬면서 다음의 진로와 계획이 불분명한 경우 불안의 정도가 높아지고 진로에 대한 고민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렇지만 불안은 사람들이 고민 끝에 새로운 길에 대한 답을 찾도록 돕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진로가 불확실한 시간 우리들의 머리 속 (인터뷰 결과물 중에서) © 남효진


‘일에 대한 관점’이 주는 차이


일은 돈을 벌기 위한  경제적인 수단일 뿐만 아니라, 내가 독립적으로 살 수 있게 해 주고 자신감과 만족감을 준다. 따라서 장기간 일을 하지 못하거나 앞으로의 진로가 불확실한 경우 이런 긍정적인 감정들을 일상에서 느끼기 어려워진다.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을 때 사람들의 대답이 크게 둘로 나뉘었다. 한국에서 석사를 마친 후 남편과 함께 미국에 온 후 다시 학교생활을 시작하기까지 2년의 공백기를 가졌던 지현 씨에게 일은 늘 ‘당당함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였다. 일과 공부를 통해 자신에게 당당하고 부모님에게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있었다. 이와 달리, 미국에서 수의사 시험을 준비 중인 수정 씨에게 일은 일정 수준의 돈을 가져다주는 생활 수단이었다. 긴 시간 일을 해왔음에도 수정 씨는 일을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에 거리를 두길 원했다. 이런 생각의 차이로 인해, 비슷한 나이의 두 사람이 일을 쉬고 있는 시간 동안 느낀 불안의 정도가 크게 달랐다. 지현 씨는 자신의 일이 없던 2년 간 자기가 당당하지 못했고 자신의 존재가 너무 작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러나 수정 씨는 일을 하던 때나 쉬고 있는 지금이나 변함없이 즐겁다고 했다. 일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일을 쉬는 동안 느끼는 안정감과 행복감에도 차이를 만들었다. 


불확실한 진로가 주는 불안과 불행


이곳에서 만난 ‘미국 유학생 와이프’들 중 미국에 오기 전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늘 어딘가에 소속되고 할 일이 있는 삶을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땅에 와서 맞닥뜨린 자신의 불확실한 현실은 익숙해지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무리 남편과 가족들이 즐겁게 지내라는 격려를 해도, 자신의 방향성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은 마음껏 즐기기 힘든 난제였다. 인터뷰 분석 내용을 가지고 ‘미국 유학생 와이프’ 친구들과 얘기하다가 같이 깨닫고 공감했던 부분이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동안 목표가 있어야 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 그래서 목표가 사라지고 갑자기 취미생활과 여유만 즐겨야 하는 시간이 도무지 즐겁지가 않았다는 것.


인터뷰 참가자들에게 미국에서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고민의 시간과 암흑기를 거쳤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한 얘기가 있다. “처음부터 하고 싶은 것을 망설이지 말고 추진하면 좋겠다”, “그때에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최대한 누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는 힘든 시간을 이미 통과한 사람들의 아쉬움이었고, 자신이 불확실한 진로로 괴로워하는 시간에는 따르기 어려운 이상향이었다. 


진로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데 몰두하면서 고립되고 압박감에 눌려 자기만의 감옥에 갇힌 경우도 있었다. 박사과정 진학을 위해 영어 시험을 준비했던 지현 씨는 지나온 시간을 ‘감옥’에 비유했다. 확실한 일정도 갖지 못한 채 해야 할 일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시간을 자유롭게 쓰지도 못했다고 했다. “처음에 오자마자 좀 내려놓고 편하게 지냈으면 됐는데, 학교에 가야 된다는 압박감이 너무 심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놀고 미국 생활도 즐기고 미국 친구들도 사귀는데, 저는 그런 걸 딱 안 했어요. 나는 영어 점수부터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내가 그걸 할 정신이 없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혼자 고립되면서 더 힘들었어요.”


불안이라는 동력


하지만 진로가 불확실하고 그래서 불안에 시달리던 ‘암흑기’는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고 고민하고 탐색하게 했다. 대기업에서 10년간 열심히 일하다가 미국에 오면서 진로를 고민했던 민정 씨 역시 그랬다. “생활 패턴이 달라지고 내 입지가 일시에 달라지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이 생활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를 찾아야겠다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됐어요.” 그러나 
오늘 내가 불안해서 고민을 시작하면 내일 답이 모습을 드러낼 만큼 고민과 그로 인한 답이 단시간에 결론 나지는 않았다. 불안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은 불편해지고 급해졌다. 그러나 간절하게 고민의 답을 찾고 계획을 만들며 생각을 숙성시키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장기적인 계획 안에서 진학이나 취직과 같이 자신의 입장이 보다 확실해지면 미래에 대한 부담은 한결 가벼워졌다. 다시 현재의 시간과 단기적인 목표에 집중하게 됐다. 오늘이 즐거워졌고 미래를 기대하게 됐다. 새로운 목표에 따라 만든 계획을 일상에서 실행하며 비로소 ‘정말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불안의 시간을 벗어나면서 지나온 ‘불안의 시간’에 대해 아쉬움도 느꼈다. ‘사실 좀 더 여유롭게 해도 되었을 텐데’와 같은. 그렇지만 그 불안을 통과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이기도 했다. 취업을 준비하며 긴 시간 혼자 공부하고 자격증을 추가하고 프리랜서로 웹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취업을 준비해온 진주 씨가 말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런 과정들이 있어서 지금 이런 길이 정해진 것 같아요. 무조건 쉬고 놀았다고 이 결론이 나지는 않았을 거예요.” 사람들을 긴 시간 괴롭히던 불안은 사실 새로운 길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찾고 길을 찾게 만드는 동력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는 참고서' 목차 및 이전 글 보기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는 참고서' 소개
1. 배경

    1.1. 우리 안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

    1.2. 기대와 다른 현실

    1.3. 이상한 나라를 만드는 요인들
2. 다양한 경로와 이슈들

    2.1. 새로운 진로를 찾는 거대한 고민

    2.2. 현재 직장과 새로운 가능성 사이에서 고민과 저울질

    2.3. 나의 일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격동기

    2.4. 정해진 계획 안에서 살며 여유를 즐기는 시간

    2.5. 육아에 집중하며 향후 진로의 방향성 고민
3. 11명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들에게서 찾은 인사이트

    3.1. 준비와 실행

        3.1.1.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결심

        3.1.2. 좋은 하루를 위한 노력

    3.2. 진로

        3.2.1. 진로 재설정        

        3.2.2. 진로에 대한 불안

    3.3. 가족

    3.4. 주위 사람들
4.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기 위한 지침


월요일, 목요일마다 업로드 예정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인터뷰 참가자들의 이름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대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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