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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May 25. 2017

3.2.3. 해외에서의 신분, 면허, 언어의 제한

3.2. 진로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로 인해 해외에 거주해도 한국의 가족 및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연락하고 한국의 TV와 인터넷 콘텐츠를 보면서 한국에서 살던 방식을 이어가게 된다. 그러나 해외 이주는 신분, 면허, 언어의 제한으로 이전에 하던 일을 바로 이어서 할 수 없는 제약을 준다. 더욱이, 배우자의 불확실한 진로와 일정은 자신의 진로를 계획하는 데 부담으로 작용한다.


때론 더 나아갈 수 없다. © 남효진


해외에서의 생활: 어쩌면 해외 속 작은 한국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 덕분에 해외에서의 삶은 더 이상 본국과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디에 있든 거의 같은 시간에 본국의 뉴스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라디오를 듣고 반응하는 삶이 가능하다. 가족과의 관계 역시, 떨어져 있어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의 가족 관계 그대로 멀리 있는 것과 상관없이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시차가 있어 불편함은 있지만 보고 싶은 드라마는 여전히 챙겨보고 가까운 사람과는 여전히 긴밀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해외에서 살면서 해외 속의 작은 한국 안에만 살 수도 있고, 날마다 해외로 외출을 했다 가족이라는 작은 한국 안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특히, 해외에서 가족과 함께 살며 따로 외부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 한국과 유사한 생활환경을 구축해가면서 오히려 작은 세계에 갇힐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단절과 고립은 자신이 원할 경우 즐거운 휴식이 된다. 그러나 내가 원치 않음에도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단절된 경우, 내가 사는 집과 가족은 원치 않게 내 세상의 전부가 된다. 외부 활동과 규칙적인 생활이 없으면 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영 씨도 미국 생활 초기에 집 안에 고립되며 불안정하던 시기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고민했었다고 했다. “그래서 제가 결정을 내린 게, 그럼 난 한국을 가겠다, 내가 이렇게 있을 봐에는. 이게 뭐냐, 하루 종일 집 안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오빠 밥 싸 주고 TV 보고. 난 이러려고 온 게 아니다. 한국에서 이보다도 더 나은 삶을 살았다. 여기 와서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다 버리고 왔는데 여기서 그보다 더 못한 삶을 산다면 난 한국을 가겠다!”


해외에서의 일: 신분, 면허, 언어의 제한 


해외로 이주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내 마음과 태도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직장을 찾고 다시 사회생활을 하고자 하는 경우, 내가 이주한 국가는 나에게 또 다른 얼굴을 내보인다. 신분의 제한, 면허의 제한, 그리고 언어의 제한이라는. 나를 당황하게 한 것은 신분의 제한이었다. 나의 경우, 그동안 이태리에서 공부하고 싱가포르에서 일을 하면서 해외에서 신분으로 인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경우가 없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나라는 내 바람에 없었기 때문에 비자에 대해 대비하지 못했다. 내 기대와 다르게, 미국의 회사들은 취업 허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취업 허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채용 대상으로 고려했다. 내 경력을 보고 접근한 회사들과 헤드헌터들은 내 신분을 보고 사라졌다. 신분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재미없어졌다. 아파트를 고쳐주러 오신 분이나 아파트 안을 날마다 청소하는 분들이 부러웠다. 취업 비자로 인해 괴로워하는 동안 새로운 도시 안의 예쁜 모습들은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해외에서의 비자 종류는 내가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일에 제한을 준다. 일을 이어가길 원하는 경우, 취업뿐만 아니라 취업이 가능한 신분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어렵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도 좋지만, 섣부른 희망에 앞서 현실적인 정보를 알아야 냉정한 계획과 가능한 방법들을 준비할 수 있다. 미국 생활의 현실과 한계, 자신의 영어 수준, 비자 별 제한 등 필요한 조건을 이전에 경험했거나 미리 파악하고 있는 경우,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다 현실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고 그만큼 시행착오도 적다. ‘미국 유학생 와이프’를 의미하는 F-2의 경우 법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 할 수 있는 활동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영주권을 미리 계획할 수도 있고, 미래 계획과 연결하여 가능한 활동들을 찾음으로써 취업이 금지된 시간에 나만의 경험과 고민을 이어갈 수 있다. 그 외, 교환 학생의 배우자인 J-2, 주재원의 배우자 L-2는 미국 입국 후 취업 허가를 신청할 수 있어 F-2에 비해 취업으로 가는 길이 보다 수월할 수 있다. 


해외에 오면서 전문직에 대한 다른 관점도 들을 수 있었다. 국가마다 전문직 면허에 대해 고유한 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받은 면허를 인정하여 자국에서 바로 일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면허를 취득한다 해도 언어 수준과 인종이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곳에서 만난 ‘미국 유학생 와이프’들의 다수가 경력단절에 대한 걱정 때문에 소위 ‘전문직’을 동경하고 있었는데, 전문직의 경우에도 해외에 이주하는 경우 국내에서라면 경험하지 않을 제약과 불이익을 겪을 수 있다. 


내 진로를 어렵게 하는 배우자의 불확실한 진로


일단 해외에 나와 생활한다고 해도, 상황에 따라 언제든 다른 나라나 본국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유학생 와이프’들은 혼자가 아니라 가족 단위로 이동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럴 때 남편의 불확실한 진로는 자신의 진로 계획에 부담이 된다. 그동안 만났던 ‘미국 유학생 와이프’ 친구들 중에 남편이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가면서 자신도 석사 입학을 기다리고 있지만 같이 귀국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남편이 한국 내 취업, 또 다른 해외 국가에서의 취업, 미국 내 진학 등을 두고 고민하면서 와이프 역시 석사 입학을 계속 진행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래 남편이 공부를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예상하고 와이프가 한국의 직장을 휴직했다가 가족이 미국에서 계속 살기로 계획을 바꾸면서 사직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남편이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후 과정을 위해 영국으로 이동하면서, 한국에서 사직을 하고 미국에 온 와이프가 계속되는 이동으로 인해 진로를 계획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배우자가 학업과 직장을 위해 해외이주를 하게 되는 경우, 옆에 있는 배우자의 진로는 흔들린다. 내가 아무리 경력을 잘 쌓아왔어도, 살다 보니 ‘내 일’과 ‘가족으로서의 삶’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순간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족이 먼저인지 일이 먼저인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앞으로 어디서 살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세상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능력과 스킬이 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는 배움을 얻었다. 그리고 유연성과 탄력성은 불확실한 시간에 넘어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 나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 덕목이었다.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는 참고서' 목차 및 이전 글 보기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는 참고서' 소개
1. 배경

    1.1. 우리 안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

    1.2. 기대와 다른 현실

    1.3. 이상한 나라를 만드는 요인들
2. 다양한 경로와 이슈들

    2.1. 새로운 진로를 찾는 거대한 고민

    2.2. 현재 직장과 새로운 가능성 사이에서 고민과 저울질

    2.3. 나의 일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격동기

    2.4. 정해진 계획 안에서 살며 여유를 즐기는 시간

    2.5. 육아에 집중하며 향후 진로의 방향성 고민
3. 11명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들에게서 찾은 인사이트

    3.1. 준비와 실행

        3.1.1.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결심

        3.1.2. 좋은 하루를 위한 노력

    3.2. 진로

        3.2.1. 진로 재설정        

        3.2.2. 진로에 대한 불안

        3.2.3. 해외에서의 신분, 면허, 언어의 제한

    3.3. 가족

    3.4. 주위 사람들
4.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기 위한 지침


월요일, 목요일마다 업로드 예정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인터뷰 참가자들의 이름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대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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