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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Jun 15. 2017

3.4.1. 친구, 선배, 선무당

3.4. 주위 사람들

일과 규칙적인 외부활동이 없이 진로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고립되면 우울해지고 자신감을 잃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비슷한 처지에 있으면서 긍정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의 교류는 정보와 자극을 교환하고 진로를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된다. 조언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시기에 제한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비관적 조언에 거리를 둘 수 있는 낙관적 사고방식도 필요하다.
© 남효진

고립


익숙한 사람들과 내 일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살면서 외부와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찾지 못하면 고립된다. 내가 아니라 배우자의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해외로 이주한 경우, 배우자는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규칙적인 일과와 동료들이 주어지지만, 함께 이동한 나는 내 힘으로 내 세계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기회를 찾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데는 개인의 적극성도 필요하다. 그러나 언어가 편하지 않고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라면, 기회와 사람들을 찾는 데 한계가 있다.


아이가 어린 경우, 와이프는 많은 시간을 집 안에서 고립되게 된다. 이전에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해온 경우라도 낯선 환경에서의 고립은 사람을 위축시키고 소극적인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대기업을 10년 간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출장을 다녔던 민정 씨도 미국에 온 후 곧 출산을 하고 육아를 시작하면서 느낀 자신의 변화가 당혹스러웠다고 했다. “이곳에 와서 초반에 자신감이 되게 없었고 엄청 소심해졌어요. 출장 가서는 영어를 잘하든 말든 자신 있게 썼었는데,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고, 인간관계에 대한 자신감이 되게 없었어요. 어찌 보면 산후우울증일 수도 있는데, 내가 왜 이렇게 됐지? 출장 가서도 당당하게 영어 쓰던 사람인데 안 그래도 되는데 머리 속에서 영어를 되게 이상하게 쓰고 있었어요. 사람 만나는 거에 두려움도 있고. 이게 산후로 인한 걸까, 아니면 집에서 정말 머리 속이 이상해진 걸까. 이걸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원하지 않았음에도 어쩔 수 없이 고립되고 쉬어야 하는 시간은 사람들을 외롭게 했고 우울하게도 했다.


해외로 이주하면서 자신의 분야와 커뮤니티로부터 단절되는 것도 힘든 일이다. 내가 속한 커뮤니티는 내가 일과 역할을  통해 능력을 발휘하고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래서 직장과 자신의 커뮤니티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내는 동안, 자신의 열정을 쏟고 자기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경험을 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약사인 혜원 씨는 자신의 커뮤니티에서 멀어지고 나니 자신에게 그 커뮤니티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다고 했다. “제일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제가 소속되어 있는 공간이 없어서였어요. 제가 미국에 온 후 친구들을 만나고 영어수업도 가고 하지만, 제 커뮤니티가 없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제가 어떤 한 분야에서 필요한 사람이고 거기서 저를 필요로 하고 그런 공간과 사람이 없다는 게, 저만의 사람들, 제가 어딘가에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데가 없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새로운 친구들과 선배들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고립에서 빠져나오고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는 데 힘이 된다. 신분과 진로를 같이 고민하고 있거나 육아에 집중하면서 진로를 준비하는  경우, 이미 학교나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보다 비슷한 처지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공감대를 이루기 쉽다. 진로를 중단하고 가족과 떨어져 있으면서 임신과 육아라는 커다란 일을 헤쳐나가는 20~30대 여자들에게 같이 고민을 나누고 조언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와 선배의 의미는 크다. 민정 씨는 같은 또래의 와이프들과 가까운 친구가 됐다. “여기 동갑이 3명 있는데 서로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그중 한 친구도 2년 동안 육아만 하면서 되게 방황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가 저를 계기로 해서 학교를 가야겠다 마음을 먹고 있어요. 본인이 그랬어요, 너희를 자주 만나서 내가 자극을 받아야겠다." 혜원 씨는 자기가 정말 좋은 언니들을 만났다고 했다. “저는 이 언니들을 정말 좋아해요. 얘기하다 보면 배울 점도 많고 제가 모르는 것도 알려주고. 배울 점 많은 사람들과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냥 언니들이랑 대화하면 난 뭘 하고 있다 얘기를 굳이 안 해도 진짜 열심히 지내고 있는 게 느껴져요. 지금은 의대에 간 언니랑 얘기도 많이 하고 조언도 많이 들었어요. 쉬고 있는 동안 하면 좋은 것들에 대한 조언과 힌트도 알려줬고요. 그리고 그 언니가 영어를 잘해서 미국인과 어울리며 얻은 팁들도 알려줬어요.” 내 옆에서 같이 현재를 살아가는 친구의 존재는 힘과 자극이 됐고, 힘든 시간을 앞서 걸어갔던 선배의 경험은 현재를 살며 고민하는 나를 격려했다.


선무당의 비관적 조언


그런데 주위 사람들 중에는 걱정하는 나를 붙잡아주는 친구와 선배도 있지만, 걱정하는 나를 더 걱정시키는 이들도 있었다. 마치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에 나오는 선무당 같은 사람들.


실제 상황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자신의 제한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섣부른 조언은 위험하다. 내가 가게 될 환경에서의 삶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의 선입견과 부정적인 조언은 준비하는 사람에게 걱정만 더할 뿐이다. 혜원 씨는 미국행을 준비하며 주위 사람들의 걱정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제가 미국에 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되게 걱정을 많이 했어요, '우울증 걸릴 수 있으니까 조심해라'. 제가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 사람들 말을 들을 수밖에 없잖아요. '넌 잘할 수 있어', '기회가 많을 거다' 이런 얘기는 가족 말고는 안 했어요. 아무도 안 해줬어요. 그래서 되게 걱정이 많았어요.” 혜원 씨가 미국에서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주위 약사분의 조언 때문에 낙담한 적도 있다고 했다. "제 주위에 약사인데 미국에 와서 아기 키우시고 영어 공부를 같이 했던 분이 계셨어요. 제가 그분한테 조언을 구했을 때 그분이 '할 수 있는 것 없어'라고 되게 단정 지어서 말씀해주셨거든요. 그런 거를 제가 온라인으로 검색해도 찾을 수 없었고 같은 상황에 있는 주위 사람들한테 물어봤는데 안된다고 단정 지으니까 저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그분께서 다 알아봤을 텐데..."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인 앤절라 더크워스 Angela Duckworth는 그녀의 책 <그릿 GRIT>에서 “우리의 감정과 행동을 유발하는 요인은 객관적인 사건 자체가 아니라 주관적인 해석”이라고 말한다. 역경의 순간을 낙관적으로 해석하면 다시 새롭게 도전하고 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비관적으로 해석하면 아예 도전을 포기하고 불안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녀가 연구를 위해 만난 사람들 중 '열정과 집념이 있는 끈기'인 그릿을 가진 사람들의 주변에는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방식으로 목표를 높게 잡으라고 격려해주고,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자신감을 북돋아주며 지지해준 사람”이 있었다고 말한다. 비단 그녀의 책에 나오는 프로 미식축구 MVP나 유명한 코미디언이 아니라, 잠시 ‘미국 유학생 와이프’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낙관적인 격려와 조언이 필요하다. 그리고 '네가 우울할 수밖에 없고 상황을 바꿀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선무당들의 비관적인 조언을 그대로 듣지 말고 거리를 둘 수 있는 낙관적 사고방식이 있어야 한다.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는 참고서' 목차 및 이전 글 보기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는 참고서' 소개
1. 배경

    1.1. 우리 안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

    1.2. 기대와 다른 현실

    1.3. 이상한 나라를 만드는 요인들
2. 다양한 경로와 이슈들

    2.1. 새로운 진로를 찾는 거대한 고민

    2.2. 현재 직장과 새로운 가능성 사이에서 고민과 저울질

    2.3. 나의 일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격동기

    2.4. 정해진 계획 안에서 살며 여유를 즐기는 시간

    2.5. 육아에 집중하며 향후 진로의 방향성 고민

3. 11명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들에게서 찾은 인사이트

    3.1. 준비와 실행

        3.1.1.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결심

        3.1.2. 좋은 하루를 위한 노력

    3.2. 진로

        3.2.1. 진로 재설정         

        3.2.2. 진로에 대한 불안

        3.2.3. 해외에서의 신분, 면허, 언어의 제한

        3.2.4. 비우고 채우는 시간

    3.3. 가족

        3.3.1. 부부, 동반자 혹은 희생자

        3.3.2. 가족, 후원자 또는 상사

    3.4. 주위 사람들

        3.4.1. 친구, 선배, 선무당
4.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기 위한 지침


월요일, 목요일마다 업로드 예정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인터뷰 참가자들의 이름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대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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